마블 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 <어벤저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저스2>이 1,000만 관객을 넘보고 있다. 특히 이 영화엔 서울이 20분 가량 등장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본 외국인들이 한국을 보기 위해 물밀 듯 찾아올까?
먼저 이와 관련된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은 5월11일(월) 미국-영국 관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전했다. 에 따르면 <어벤저스2>를 본 뒤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외국인은 17.5%에 그쳤다. 반면 58.7%의 응답자는 “한국에 오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는 내심 <어벤저스2> 촬영 기대효과를 노렸던 한국 정부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해 3월 한국관광공사(이하 관광공사)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촬영 및 대한민국 관광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관광공사는 양해각서 체결 소식을 전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했다.
“영상물 로케이션 유치에 의한 관광 활성화는 대표적 사례인 영화 <반지의 제왕>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반지의 제왕>의 촬영지인 뉴질랜드는 이전의 낙농국가 이미지에서 영화 흥행 이후 일약 ‘영화관광’의 대명사로 변모했다.”
▲영화 <어벤져스2>의 한 장면. ⓒ스틸컷 |
관광공사 측 어조엔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애초 기대했던 장밋빛 기대효과와는 동떨어진 광경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 마디로 담당부처 공무원의 몰이해 때문이다. 영화 촬영지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사례는 많다. 관광공사가 예시한 뉴질랜드가 대표적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였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도 빼놓을 수 없다. 잘츠부르크는 진작부터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를 두루 돌아볼 수 있는 당일 여행 상품을 개발해 관광객들을 유치해왔다. <미션 임파서블3>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이단 헌트(톰 크루즈)와 악덕 무기상 오웬 데비언(필립 시무어 호프만)이 치열한 난투극을 벌였던 중국 시탕(西塘) 역시 영화의 흥행돌풍 덕에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이곳은 일찍부터 저우장(周庄) 퉁리(同里), 우전(乌镇) 등과 함께 중국 4대 수향으로 이름났던 곳이었다. <미션 임파서블3>은 시탕의 ‘지역적’ 경계를 넘어서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 [기자는 지난 2008년 시탕을 찾았다. 당시 이곳은 전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영화 흥행이 관광수익으로 직결되지 않아
그러나 영화의 흥행이 관광수익으로 직결된 것은 아니다. 관건은 영화 연출자가 촬영지를 어떻게 묘사하느냐다. 리엄 니슨을 액션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 <테이큰>의 무대는 파리다. 사람들은 ‘파리’하면 얼른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개선문 등 명승지를 떠올린다. 프랑스 출신 뤽 베송이 제작한 <테이큰>은 기존 파리의 이미지를 산산조각낸다. <테이큰>이 그리는 파리는 관계당국의 공공연한 묵인 하에 철없는 10대 소녀 관광객들을 노린 인신매매가 벌어지는 환락의 도시다.
영국 런던은 어떨까? 런던은 타워브리지와 근위병 교대, 런던탑, 다이애너비가 결혼식을 올린 세인트 폴 성당으로 유명한 도시다. 그러나 제임스 맥어보이 주연의 액션영화 <테이크 다운>(원제 : Welcome to the Punch)는 런던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이런 명승지들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로케이션은 런던의 신흥 산업, 금융 중심지인 캐너리 워프에서 이뤄졌다. 연출자인 에란 크리비는 현대 런던의 상징인 캐너리 워프를 비열함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채색한다. 이런 솜씨는 영화 <블랙 레인>에서 일본의 고도(古都) 오사카를 현대판 사무라이들이 모터 사이클을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초현실적 공간으로 변모시킨 리들리 스콧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어벤져스2>의 한 장면. ⓒ스틸컷 |
다시 <어벤저스>로 되돌아가보자. 마블 스튜디오와 양해각서 체결 당시, 관광공사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어벤저스> 속편의 주요 촬영지는 서울의 마포대교, 세빛둥둥섬, 상암 DMC, 강남대로 일부, 청담대교, 의왕시 계원예술대학교 인근 등이며 영화를 통해 한국이 긍정적으로 노출될 경우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효과 등 2조원이 넘는 부가적인 경제효과가 기대된다”고 적었다. 또 조현재 문체부 제1차관은 “이번 촬영은 한국의 영화산업이 내적 성장과 함께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번 촬영을 통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어 한국을 다시 한 번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또 서울을 배경으로 한 태국 영화 <헬로 스트레인져>의 예를 들며 “이번 영화를 통해 국내 관광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영화산업에서도 국내 스태프 일자리 창출, 선진 영화제작 노하우 경험, 향후 국내 촬영 활성화 계기 등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얼핏 듣기엔 그럴듯하다. 그러나 단순히 블록버스터에 등장한다고 해서 2조 경제효과 운운은 한참 오바다. <어벤저스> 전편은 수퍼 히어로들이 지구에 침공해오는 외계 종족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다. 로케이션이 이뤄진 뉴욕은 영화에서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된다. <어벤저스> 1편을 보고 뉴욕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관련부처 공무원들이 양해각서 체결을 준비하면서 <어벤저스> 1편만 꼼꼼히 챙겨 봤더라도 “<어벤저스2> 서울 로케이션에 따른 2조 경제효과” 따위의 ‘설레발’은 없었을 것이다.
공무원들의 몰이해는 더욱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 영화진흥위 집계에 따르면 5월16일(토) 현재 <어벤저스2>가 한국시장에서 거둬들인 돈은 837억 여 원에 이른다. 제작사인 마블 스튜디오는 이외에 한국 정부로부터 39억 원을 따로 챙겼다. 한국에서 영화촬영을 할 경우 제작비의 일정금액을 현금 지원하는 ‘외국영상물 로케이션 인센티브 제도’에 따른 조치다.
이를 두고 국부유출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