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가 "동양종교와의 만남에서 신관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학계 내 주목을 모으고 있다. 그는 최근 열린 2015 춘계한국종교학대회에서 ‘종교다원 시대의 신학’이란 제목의 발표를 통해 종교다원 시대 현대인들과 소통 가능한 신학의 길을 모색했으며, 자구책으로서 그리스도교와 동양종교와의 본질적 만남에서 기대할 수 있는 새로운 신관 정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길 교수는 먼저 동양종교와의 진지한 대화와 만남을 위해 두 가지 선결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로 "신학 방법론과 신학을 하는 자세 내지 정신에 관계된 문제로서, 앞서 언급한 신학의 두 유형 가운데서 대화적 신학, 역사와 문화적 상황을 중시하는 대화적 신학, 열린 신학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타종교들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에 입각한 종교다원적 신학이어야 한다"면서 "여기서 '종교다원적'이라는 말이 '종교다원주의적'이라는 말로 이해될 필요는 없다. 종교다원주의적 신학은 종교다원적 신학일 수밖에 없지만, 종교다원적 신학이 반드시 종교다원주의적 신학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하여 길 교수는 대화적 신학이 동양종교들과 만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신관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몇 가지 밝혔다. 그는 첫째로 "그리스도교가 그리스 철학을 만나 서양 고·중세를 주도하는 형이상학적 신관을 형성할 수 있었듯이, 이와 유사한 가능성을 동양종교들과의 만남에서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어 둘째로 "동양종교의 시각에서 볼 때, 신을 인간에 준해 생각하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인격신관은 조잡한 신인동형론적 사고를 조장하고 신을 인간처럼 유한한 개체로 보게 만들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 이 점에서 동양의 탈(초)인격적 실재관이 유일신신앙의 인격신관이 지닌 문제점을 극복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주목해 볼 문제다"라고 역설했다.
셋째로 길 교수는 동양종교의 자연주의가 유일신신앙의 신관의 문제점을 극복할 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먼저 "유일신신앙의 신관이 전통적으로 세계와 인간에 내재하는 신의 내재성보다는 신의 초월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러한 초자연주의적 신관이 서구에서 근대과학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신을 상정하지도 않고서 얼마든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무신론적/유물론적/기계론적 자연주의(naturalism)를 낳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양적 자연주의는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초자연주의적 신관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스스로를 정립한 일이 없다"며 "서구의 무신론적/유물론적 자연주의와 달리, 동양적 자연주의는 언제나 자연에서 신성을 느꼈으며, 자연친화적 영성을 발전시켰다"며 "동양적 자연주의는 종교적/영적 자연주의며, 이런 의미에서 19세기 서구 낭만주의자들의 '자연적 초자연주의'(M. H. Abrams)와도 유사하다"고 말했다.
길 교수는 넷째로 유일신신앙의 종교들과 동양 종교들을 가르는 또 하나의 특징으로, 전자가 신의 계시를 믿는 신앙(faith) 중심의 종교임에 비해 동양종교들은 세계와 인생의 이법을 아는 통찰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지혜의 종교들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그는 "동양 종교들은 서구의 고전적 형이상학에 필적할만한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가지고 있으며, 근대 서구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생물학적 인간관과 달리 종교적-영적 인간관과 인성론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동양사상의 장점이고 매력이라고 생각한다"며 "현대 서구 철학의 근본 문제는 형이상학을 포기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이해를 몽땅 자연과학에 양도해버렸다는 데 있다. 현대 철학은 과감하게 형이상학의 회복에 나서야 하며, 현대 신학 역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도덕이나 종교적 감정, 또는 개인의 직관이나 실존적 결단 또는 사회적 실천 같은 데 정초하려 하기보다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바른 인식을 되찾는 쪽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했다.
다섯째로 길 교수는 동양의 지혜의 종교와 신앙을 강조하는 유일신신앙의 확실한 차이를 강조하며, 서로의 관계가 상호 교호적으로 작동해야 함을 암시했다. 그에 따르면, 유일신신앙에서는 물질계와 역사의 세계가 결코 그 자체로 악이나 허망한 환상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뜻이 실현되어야 할 장이다. 반면에 물질세계와 역사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인도 종교들은 대체로 사회적 현실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나 책임감이 약한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천국을 현실 세계를 넘어 저 세상에다가 두는 도피주의도 문제지만, 반대로 깨닫기만 하면 <현실 즉 천국>이라는 안이한 현실긍정 역시 문제"라고 했다.
길 교수는 결론적으로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학이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플로티누스의 사상을 흡수해서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하여 수많은 걸출한 신학자들을 배출했듯이, 현대신학은 동양 종교와 철학과의 창조적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교와 현대문명이 나아갈 새로운 사상적 활로를 제시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했으며, "무엇보다도 신학으로 하여금 초자연주의적 신관을 넘어 '내재적 초월'을 추구하는 새로운 신관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