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스케치] 강정, 평화와 갈등의 교차점

강정 해군기지 건설 논란, 3년 전과 후

▲제주 강정 마을의 전경. ⓒ사진=지유석 기자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평화와 군사적 갈등이 만나는 지점이다. 강정의 일상은 제주도의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이 평화롭다. 마침 기자가 찾았던 날은 주일(5/31)이었다. 이곳에서는 주일을 맞아 예수회 김성환 신부 집전으로 생명평화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생명평화 미사는 강정을 감싼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욱 평화롭게 했다. 

▲5월31일(일) 강정 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김성환 신부(예수회)의 집전으로 생명평화 미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5월31일(일) 강정 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생명평화 미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그러나 강정은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으로 점철된 곳이다. 해군기지 건설 프로젝트가 구체화된 시점이 2007년이니까 갈등은 햇수로만 8년째다. 갈등은 3년 전인 2012년 3월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당시 해군과 기지건설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구럼비 바위 발파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같은 조치는 인근 주민들, 그리고 기지건설에 반대해 뭍에서 건너온 활동가들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 일으켰다. 급기야 서울에서도 ‘제주해군기지건설 공사중단과 평화적 해결촉구 비상시국회의’가 꾸려졌다. 
▲구럼비 바위는 해변을 따라 1.2km 가량 펼쳐지는 검은 빛깔의 바위로 독특한 풍광을 연출한다. 강정 주민들의 구럼비 바위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사진=지유석 기자
▲구럼비 바위에서 흐르는 용천수는 강정은 물론 서귀포시 주민들의 식수원이다. 강정 주민들은 용천수를 ‘할망물’로 부르며 신성시해 이 물로 토신제를 지내는가 하면, 정성을 드릴 때 정화수로 사용해 왔다. ⓒ사진=지유석 기자

이토록 반대여론이 비등했던 이유는 구럼비 바위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구럼비 바위는 해변을 따라 1.2km 가량 펼쳐지는 검은 빛깔의 바위로 독특한 풍광을 연출한다. 특히 이곳 주민들은 구럼비 바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실제 구럼비 바위 일대는 생명의 보금자리다.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는 습지를 형성시켰고, 이 습지엔 천연기념물 442호 ‘연산호’ 군락과 멸종위기종 ‘붉은발 말똥게,’ 은어 등 온갖 희귀종들이 모여 산다. 특히 강정 주민들은 용천수를 ‘할망물’로 부르며 신성시해 이 물로 토신제를 지내는가 하면, 정성을 드릴 때 정화수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사업자 측의 입장은 달랐다. 사업주체인 해군기지사업단(이하 사업단)은 “구럼비 바위는 195km에 달하는 제주도 해안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안 노출암이며, 이들 바위 인근에는 ‘까마귀쪽 나무’가 자생하는 데 이 나무를 제주방언으로 ‘구럼비’라고 하고 이 해안 노출암을 구럼비 바위”라며 구럼비를 평가절하했다. 문화재청 역시 “구럼비 해안은 제주도 해안 곳곳의 현무암질 용암류가 노출되어 있는 평편한 해안과 유사하여,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특별한 비교우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다”며 거들고 나섰다. 
이 같은 논란에 앞서 2009년 12월 제주도 의회는 구럼비 바위와 주변해안에 대해 절대 보전지역 해제 조치를 취했다. 사실 이 같은 조치는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본격 추진하자 당시 도의회 과반수를 차지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전신)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이다. 
▲구럼비 시험발파가 시작됐던 2012년 3월7일부터 며칠 동안 해군기지 건설장 앞은 구럼비 발파에 반대하는 주민-활동가들과 경찰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사진=지유석 기자

결국 정권과 해군은 구럼비 발파를 강행했다. 시험발파가 시작됐던 2012년 3월7일부터 며칠 동안 해군기지 건설장 앞은 구럼비 발파에 반대하는 주민-활동가들과 경찰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활동가들 사이엔 문정현 신부, 김홍술 목사 등도 섞여 있었다. 활동가들은 공사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연좌농성을 벌였고, 경찰은 연행으로 맞섰다. 경찰의 연행은 그해 1월부터 도를 더하기 시작해 3월에 정점에 올랐다. 1월과 2월 연행자수만 109명에 달했다. 
해군기지 타당성, 다시 도마에 
▲구럼비 시험발파가 시작됐던 2012년 3월7일부터 며칠 동안 해군기지 건설장 앞은 구럼비 발파에 반대하는 주민-활동가들과 경찰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활동가들은 공사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연좌농성을 벌였고, 경찰은 연행으로 맞섰다. ⓒ사진=지유석 기자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공사는 상당히 진척돼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구럼비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고권일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반대 대책위원장은 “고도가 높은 쪽과 해안 쪽으로 돌출된 부분만 발파됐을 뿐, 구럼비의 95%는 그대로다. 지금 짓는 기지는 구럼비 위에 콘크리트를 바른 것”이라고 전했다. 
지금 제주는 ‘제주신항’ 프로젝트로 인해 논란이 분분하다. 이 프로젝트는 강정에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문제의 프로젝트는 제주시 탑동 해상을 대규모로 매립해 새로운 크루즈항만을 건설한다는 것이 뼈대다. 시공업체측은 지난 달 공청회 석상에서 “강정항은 2016년 15만톤 크루즈부두 2선석을 개발할 계획이나 민군복합항만으로 인프라 부족 등에 따라 현실적으로 크루즈 기항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해군이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면서 내세운 주요 명분은 ‘민·군 복합항이자 관광미항’이었다. 이명박 정부도 2012년 2월 국가정책조정회의를 통해 강정 해군기지가 “남방해역의 안정적인 관리에 필수 시설이자 제주지역 주민의 소득증대 및 일자리 창출 등 제주 경제발전에 중요한 국가사업”이라며 해군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기본 전제를 뒤흔드는 주장이 고개를 든 것이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제주특별자치도당(위원장 강창일)은 6월2일(화) 논평을 통해 “말 그대로라면 제주 해군기지 추진의 정당성의 이유인 민·군 복합항 개념 자체가 허구라는 뜻이 된다. 제주도민들이 해군기지 건설에는 반대하면서도 이를 용인했던 것은 ‘민·군 복합항’이기 때문이었다. 업체의 진단이 사실이라면 이는 도민들을 속였다는 사실 밖에 안 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러자 제주도는 긴급 해명자료를 내고 “올해 말 민ㆍ군복합항 크루즈부두를 준공할 계획이나 크루즈 터미널 및 승하선 시설, 운송시설, 청수공급시설, 주차시설 등 기반시설 부족으로 2016년 당해 연도 안에 크루즈 운항이 어려운 실정을 표현한 것이지, 논평의 주장처럼 크루즈 선석 사용불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평화와 군사적 갈등이 만나는 지점이다. 건설현장은 철조망으로 격리됐고, 철조망 저편은 구럼비 위에 콘크리트를 덮어 부두를 건설 중에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사실 해군기지 타당성에 대한 의문은 구럼비 발파 직전 제기된 바 있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15만t 크루즈 입·출항 기술검증위원회’는 국가정책조정회의가 열리기 약 2주전 “제주해군기지 항만설계는 15만t급 크루즈 선박 입·출항이 사실상 부적합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기술검증 결과보고서를 채택했다. 그럼에도 해군은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했고,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건설 반대 목소리를 억눌렀다. 
고 위원장은 즉각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 위원장은 “현재 기지 건설 공정률은 80% 가량이라고 본다. 해군측은 50년 빈도의 태풍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3년 전 태풍 볼라벤이 불어 닥쳐 케이슨(방파제 축조용 구조물)이 파손됐다. 볼라벤 같은 태풍은 제주에서는 5년에 한 번 꼴로 찾아온다. 이대로라면 매 5년마다 보수를 해야 한다. 따라서 해군 기지가 완공된다면 국가적 손해다. 지금이라도 백지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자연의 힘이 구럼비를 복원시켜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행하게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중단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기지가 미국의 태평양 전략과 맞물려 있어서다. 국제여론도 강정 상황을 예의주시한다. 세계적인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미국 유력 일간지인 2011년 8월 <뉴욕타임스>지 기고문을 통해 “해군기지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군사적 분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팅>, <내일을 향해 쏴라>,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의 명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도 2012년 2월 “제주도의 환경은 탄도미사일 요격체계로 중국을 에워싸려는 미국, 그리고 항공모함, 잠수함, 이지스함이 정박할 수 있는 대규모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한국 해군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이어 <플래툰>, 의 명감독 올리버 스톤은 2013년 8월 강정 평화행진에 참여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국과 군사동맹을 구축하고 미군 기지를 국외에 만들어왔다. 많은 미군 기지가 일본과 한국에 있다. 제주도는 중국 상하이에서 500㎞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제주도는 최전선에 있게 된다”고 경고했다. 
▲5월31일(일) 강정 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생명평화 미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세계적 지성들의 우려는 점차 현실화되는 느낌이다. 주한 미 해군사령부는 최근 주한미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유엔군사령부가 공동으로 「전략 다이제스트」란 책자를 냈다. 주한 미 해군사령부는 이 책자를 통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을 통해 미 해군 자산의 60%를 인도와 아태지역에 배치할 것”이라며 “이 중 상당수가 한국의 책임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는 구상을 드러냈다. 미국이 배치할 전력은 미 해군 연안전투함(LCS)과 MV-22 오스프리, EA-18 그라울러, P-8 포세이돈 해상초계기, 줌왈트급 구축함(DDG-100), BMD(탄도미사일방어용) 이지스 구축함 2척 등으로 알려졌다. 이런 구상이 본격화되면 미국의 해군력이 제주도에 집중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해군기지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한다. 그런 다음, 제주를 감싸는 평화의 공기가 훼손되지 않도록 민관이 지혜를 한데 모아야 한다. 특히 “한국이 미국 군부라는 개의 꼬리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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