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희망 없는 시대, 인류가 갈 곳은 어디인가?

조지 밀러 연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 밀러 감독이 연출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스틸컷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박진감 넘친다. 여전히 자동차 엔진의 굉음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조지 밀러 연출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원제: Mad Max – Fury Road)는 오프닝부터 강렬하다. 
사실 이 영화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B급 영화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엄청난 힘으로 싸운다. 이런 영화에 구태여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영화엔 도무지 그냥 재미로 보고 흘리기엔 아까운 시대적 통찰이 스며있다. 특히 멜 깁슨 주연의 1979년 오리지널 <매드 맥스>와 비교해서 보면 그 재미는 더하다. 
지금 오리지널을 다시 보니 ‘구닥다리’ 티가 물씬 풍긴다. 또 돈을 적게 들여 만들었음도 단박에 드러난다. 실제 오리지널은 총 제작비 40만 호주 달러, 타이틀 롤 맥스 역을 맡은 멜 깁슨의 출연료는 고작 21달러에 불과했을 정도로 저예산영화였다. 그러나 돈을 적게 들였음에도, 또 옛날 티가 풀풀 남에도 영화의 메시지는 예언자적이다. 영화에서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오일쇼크와 경제대공황으로 황폐해진 세상을 무대로 폭주족들과 경찰은 무한 스피드 경쟁을 벌인다. 
폭주족 <나이트 라이더> 일당은 이곳저곳을 돌며 닥치는 대로 약탈을 자행하고, 경찰 공권력에게마저 해코지를 가한다. 맥스(멜 깁슨)는 이들 폭주족 단속에 남다른 능력을 과시해 온 LA경찰서 강력계 순찰 대원이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파트너인 구즈가 <나이트 라이더> 일당에게 끔찍한 테러를 당한 광경을 목격한다. 이러자 그는 회의를 느껴 경찰을 그만두려 한다. 그러나 폭주족들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이트 라이더> 일당은 그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결국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을 살해한다. 맥스는 엄청난 분노에 휩싸인다. 이어 5기통 최신형 자동차를 타고 폭주족들에게 무자비한 복수를 가한다. 
▲조지 밀러 감독이 연출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스틸컷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79년, 세계 경제는 중동발 오일쇼크로 휘청거렸다. 그래서인지 <매드 맥스>가 그린 암울한 미래상은 머지않아 닥칠 현실로 보였다. 고작 40만 호주 달러로 제작된 원작이 전 세계적으로 1억 달러를 벌어들인 건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오리지널 연출자인 조지 밀러 감독은 1981년과 1985년 각각 <매드 맥스 – 로드 워리어스>, <매드 맥스 – 선더돔>을 연출했다. 그리고 이후 20년 만인 2015년 또 다시 새로운 시리즈를 내놓는다. 2015년판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는 기술적인 면에서나, 출연진들의 면면을 보나 오리지널 버전에 비할 바 못된다. 그러나 2015년판은 1979년 오리지널에 비해 훨씬 더 암울하다.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역시 오리지널과 마찬가지로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타델의 지배자 임모탄 조(휴 키스-번)는 절대 군주다. 임모탄 조의 권력 기반은 다름 아닌 ‘물’이다. 핵전쟁으로 황폐해진 지구에서 물은 절대적 자원이다. 임모탄 조는 물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했고, 남은 인류는 그에게 절대 복종할 수밖엔 없다. 이 대목에서 조지 밀러의 시대적 통찰이 엿보인다. 오리지널 <매드 맥스>가 오일쇼크로 불안해하던 시대에 암울한 미래상을 보여준다면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는 갈수록 수자원이 고갈되는 지구의 앞날을 드러내 보인다. 더욱 암울한 대목은 원작에서 온갖 악행을 일삼았던 <나이트 라이더> 일당이 2015년 판에서는 아예 지배자로 군림한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나이트 라이더>의 리더 역을 맡았던 휴 키스-번이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 시타델의 지도자 임모탄 조로 분했다는 점은 꽤 의미심장하다. 
신개념 여전사 퓨리오사 탄생  
▲조지 밀러 감독이 연출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스틸컷

페미니즘은 2015년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키워드다. 사실상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주인공은 맥스가 아니라 시타델의 총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다. 맥스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역할에 머무를 뿐이다. 퓨리오사는 임모탄 조에게 성 착취를 당하던 다섯 명의 아내를 데리고 시타델을 탈출한다. 그녀는 손수 전투용 차량 ‘워리그’를 몰며 벌떼처럼 달려드는 임모탄 조 일당을 향해 정면 돌파를 감행한다.  
퓨리오사는 확실히 리플리(<에이리언>), 사라 코너(<터미네이터2 – 심판의 날>), 나타샤 로마노프(<어벤저스>)의 계보를 잇는 여전사다. 그러나 퓨리오사는 이전의 여전사들과는 사뭇 다르다. 리플리는 여성 특유의 모성이 돋보이고, 사라 코너는 모성뿐만 아니라 남성성마저 겸비했다. 그리고 로마노프 요원은 생명 잉태의 특권이 거세된 살인기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퓨리오사는 근육질도 아니고, 팔은 성하지 못하다. 그녀의 풍모는 짧게 자른 머리 말고는 가녀리기 그지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모성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그녀는 임모탄 조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난관과 맞서고, 마침내 이겨낸다. 퓨리오사가 임모탄 조를 제압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퓨리오사는 연약하고, 얼핏 초라해 보이지만, 그런 연약한 여성성이 얼마나 강인하고 위대한지 보여준다.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는 그래서 위대하다. 
그러나 단지 강인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이 여성이 다른 여성을 ‘해방’시킨다고 해서 이 대목을 곧장 페미니즘과 연결시키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여기서 잠깐 퓨리오사 역을 맡았던 샤를리즈 테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녀는 칸 영화제에서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가 페미니스트 영화냐는 질문에 “조지 밀러 감독이 처음부터 페미니스트 아젠다를 갖고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말만 들어도 갑자기 경직되는 면이 있다. 무슨 우리가 강연대 위에라도 올라선 것처럼 말이다. 조지 밀러 감독은 그저 여성도 남성만큼이나 복잡하고 흥미진진한 존재라는 걸 이해하고 보여줬을 뿐이다. 그렇게 진실을 이해했기에 조지 밀러가 결국 놀라운 페미니스트 영화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조지 밀러 감독이 연출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스틸컷

영화의 메시지는 단순히 여성 해방에 그치지 않는다. 조지 밀러는 궁극적으로 인류 해방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신인류인 ‘워보이’들은 임모탄 조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존재들이다. ‘워보이’ 가운데 한 명인 눅스(니콜라스 홀트)는 암으로 죽어간다. 그럼에도 임모탄 조에게 충성심을 과시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한편 주인공 맥스(톰 하디)는 자신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던 이들을 송두리째 잃고 황야를 배회하다 임모탄 조 일당에게 붙잡힌다. 맥스는 차를 빼앗기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이다. 그러나 다행히 ‘깨끗한’ 피 때문에 가까스로 목숨만은 건지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맥스는 눅스의 피 주머니 신세로 전락하고야 만다. 눅스는 맥스를 차에 매달고 퓨리오사를 맹렬히 추격한다. 그러다 임모탄 조가 자신을 한 번 힐끗 쳐다보자 감격에 겨워하며 자신의 목숨마저 버리려고 한다. 이런 광경은 1%가 99%를 착취하고, 동시에 착취당하는 99%에 속해 있음에도 지배논리에 세뇌돼 1%의 권력자에게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 시대의 부조리를 드러낸다. 
영화는 퓨리오사가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되고, 맥스는 방랑의 길을 떠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비교적 무난한 결말이지만 감독인 조지 밀러는 엔딩 자막을 통해 여전히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거두지 않는다. 인류가 처한 현실이 <매드 맥스>가 처음 세상에 나온 26년 전 보다 더 암울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희망 없는 시대를 사는 인류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최초의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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