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스케치] 새만금 송전탑 건설, 해법은 없는가?(1부)

전쟁터로 변해버린 군산 벌판, 한전·지역주민 입장 평행선 달려

▲전라북도 군산의 5월과 6월은 수확과 모심기가 동시에 이뤄지는 계절이다. 콤바인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보리를 거둬들이고 있다. 바로 옆 논에서는 모내기를 위한 물가두기가 한창이다. 콤바인 뒤로 군산 산업단지가 보인다. ⓒ사진=지유석 기자

전라북도 군산의 6월은 수확과 모심기가 동시에 이뤄지는 계절이다. 한쪽에서는 한 해의 수확을 거둬들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새로운 농사를 준비한다. 농가마다 보리와 벼농사를 번갈아 지어서다. 도회지 생활에 익숙한 기자에게 이런 풍경은 생경하다. 특히, 보릿단을 태울 때 자욱하게 이는 연기는 더 없이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군산시 미성동·옥구읍·회현면 등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송전철탑 때문이다. 한전은 이 지역 주변 논 곳곳에 공사용 펜스를 치고 철탑 공사를 진행 중이다. 어떤 곳은 노랗게 익은 보리가 눈에 띠었고, 또 다른 곳은 모내기를 위해 물을 가둬놓은 논이었다. ⓒ사진=지유석 기자 

그러나 이곳은 지금 전쟁터나 다름없다. 한국전력(한전)이 벌이는 송전철탑 송전선로 공사 때문이다. 군산시 미성동·옥구읍·회현면 등이 주 대상지다. 한전은 이 지역 주변 논 곳곳에 공사용 펜스를 치고 철탑 공사를 진행 중이다. 어떤 곳은 노랗게 익은 보리가 눈에 띠었고, 또 다른 곳은 모내기를 위해 물을 가둬놓은 논이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공사장 주변에 움막이나 임시 컨테이너를 마련해 놓고 뙤약볕 아래 삼삼오오 모여 한전의 동태를 감시했다. 기자가 찾았던 날(6/9) 한전 측 인부들, 그리고 중장비는 전혀 눈에 띠지 않았다. 마침 이날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기장, 총회장 황용대 목사)가 주최하는 시국기도회가 예정돼 있었다. 새만금송전철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강경식 법무간사는 “오늘은 한전 측 인력이 모두 철수했다. 시국기도회 때문에 목사님들이 많이 오시고, 언론사 취재진들도 오기에 한전 측이 이미지 관리를 위해 공사를 중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성동 공사현장에서 농성 중인 전 모 할머니(80세)는 “한전이 용역을 동원해 반대 주민들을 팽개치듯 내던졌다“며 한전에 분통을 터뜨렸다. ⓒ사진=지유석 기자 
 
주민들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 미성동 공사현장에서 농성 중인 전 모 할머니(80세)는 한전의 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농성장은 바로 철탑 건설현장 바로 앞이었고, 문제의 현장은 모심기를 준비 중인 논이었다. 논 한 가운데엔 조그만 포크레인이 멈춰 서 있었다. 전 할머니는 “지금은 한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여지껏 새벽 2시 혹은 3시에 와서 공사를 했는데 말이다. 공사를 막으려고 하니 한전은 용역을 동원해 주민들을 팽개치듯 내던졌다. 오늘은 시국기도회를 한다니까 이미지 나빠진다고 인부와 포크레인을 철수시키려 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이 포크레인이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정당당하면 한낮에 해야지 왜 야심을 틈타 공사를 하냐, 그리고 지금은 농번기니까 지금 시기는 피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한전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전 측 A 지사장은 “군산 산업단지의 전력 공급이 시급해 서두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A 지사장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1년 동안 조정기간을 거쳤고, 지역구 의원인 새정치민주연합 김관영 의원 주도로 협상도 했다. ‘우선 공사가 시급하니 공사를 진행하고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이를 검증하자, 또 주한미군 측 입장도 반영해 최종적으로 우리 입장이 잘못된 것으로 결론나면 철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나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전으로서는 공사를 강행할 수밖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주민들과의 충돌에 대해서는 “한전 측이 용원을 동원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직원들이 방해 주민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젊은 사람들이 연로한 분들을 맞상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하고 반문했다. 이어 새벽 공사에 관해서는 “공사는 할 수 밖에 없고, 그런데 낮에 하게 되면 주민들과 불가피하게 충돌이 생긴다. 농번기임을 감안해 새벽에 공사를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송전철탑 건설, 촌음을 다투는 문제인가?
논란의 핵심은 전력량 부족 여부다. 갈등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초 종합화학기업인 (주)OCI는 태양광발전 소재를 생산하기 위한 공장 증설을 명분으로 대용량 전력을 군산시에 요청했다. 이에 군산시는 그해 12월 한전과 전력공급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시책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주)OCI는 지난 5월19일(화) 제4공장과 제5공장의 건설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또 다음 날인 20일(수)엔 한전 직원이 직접 주민들을 찾아와 군산 산업단지의 전력사용량이 110만KW 정도로서 3년 동안 전혀 증가가 없었다는 언질을 줬다. 이런 정황들은 군산 산업단지의 전력이 그다지 시급하지 않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한전이 철탑 공사를 전격 시작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주)OCI의 발표가 있기 1주일 전인 12일(화)이었다. 공대위는 한전 측이 명분이 사라지기 전에 철탑공사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시도라고 의심하고 있다. 
▲송전철탑 건설 지역 주민들은 9일(화) ‘화학공장에 전기주려고 농민땅 왜 빼앗느냐,’ ‘위험한 화학공장에다 전기 주려고 농번기철 공사가 웬 말이냐’고 적힌 현수막을 차량에 부착한 뒤 군산시청까지 차량시위를 벌였다. ⓒ사진=지유석 기자

그러나 한전 측은 “공대위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A 지사장은 “관점의 차이다. 공대위는 전력량이 3년 동안 증가가 없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한전은 이전부터 전력 공급 부족을 지적해왔다. 군산 산업단지의 경우 (주)OCI와는 별개로 2년 동안 필요한 전력을 (주)OCI 및 다른 기업들에게 제대로 공급해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기업에게 전력을 못줘서 전력량 증가가 없었단 말이다”고 반박했다. 한전 측 입장에 대해 강 간사는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하면 되지 않느냐?”며 맞섰다. 사실 공대위 측은 이전부터 국회차원의 진상조사를 요구해 왔다. 강 간사는 “한전 측이 맞는지, 아니면 주민들 말이 맞는지 확인하는 게 국회진상조사위원회가 필요한 이유”라고 꼬집었다. 
한전의 송전철탑 건설이 가져온 또 다른 부작용 가운데 하나는 땅값 폭락이다. 공대위 강경식 법무간사에 따르면 한전 측이 철탑부지에 대해서는 시가로 보상한다고 했다. 그런데 철탑부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약 298㎡(90평) 남짓이다. 그러나 ‘선하지,’ 즉 송전선이 지나가는 땅은 이야기가 다르다. 강 간사는 “선하지의 경우 시가의 25%, 많으면 30% 보상에 그친다”고 했다. 선하지 면적은 약 3,636㎡(1,100평) 가량이다. 송전철탑 건설로 인해 이미 이 일대 땅값은 절반으로 폭락한 상황이다. 주민들이 전북대에 의뢰한 용역 조사결과에 따르면, 주민피해 예상액은 1조 5,000억에 이른다. 
▲새만금송전철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 강경식 법무간사가 주민들이 농성 중인 움막으로 안내하고 있다. 주민들은 움막에서 삼삼오오 모여 한전의 동태를 주시한다. ⓒ사진=지유석 기자

더욱 심각한 건 삶의 터전이 아예 없어질지 모른다는 공포다. 강 간사는 “송전탑이 지나는 자리엔 소아백혈병 발병률이 높다는 통계가 이미 나와 있다. 이대로 철탑이 세워지면 32만 볼트의 전력이 지나가는데, 그렇게 되면 아이를 키우는 젊은 세대들은 아무도 이곳에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마을을 지키고 있는 분들 대부분은 노인들이다. 이분들이 세상을 떠난다면 결국 마을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탄식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주민들이 ‘내 앞마당은 안 된다’(NIMBY)는 식의 막무가내 반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민들은 2012년 성금 3,300만원을 모아 전북대 교수들에게 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 새만금 방조제와 남북2축 도로를 따라가는 대안노선을 마련했다. 이어 그해 말 주민대책위와 한전은 공동 검증을 실시했고, 이 결과 대안노선 채택 시 한전의 추가 공사비는 660억 원으로 조사됐다. 주민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먼저 송전철탑 건설을 즉각 중단하고, 대안노선을 수용해 달라는 것이다.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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