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샌 안드레아스>의 한 장면. ⓒ스틸컷 |
재난은 불가항력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에 따라선 재난피해를 일정 수준 줄일 수 있다. 재난 상황에선 강력한 리더십과 정확하고 빠른 정보, 이 두 가지가 시급하다. 지난 6월3일(수) 개봉한 재난 영화 <샌 안드레아스>는 이 같은 교훈을 일깨운다.
‘샌 안드레아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1,000km를 가로지르는 단층대를 일컫는다. 영화는 샌 안드레아스 단층대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 닥칠 피해, 그리고 재난에 맞서 가정을 지키려는 소방대원 레이 게인즈(드웨인 존슨)의 활약을 그린다. 스케일도 엄청나고 재난 묘사는 사실적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는 <트위스터>, <투모로우> 등 기존 헐리웃 재난 영화의 문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펄럭이는 성조기는 관객들의 뇌리에 ‘미국은 강한 나라’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주입시키는 것 같아 불편하다.
단, 영화가 던져주는 교훈은 그냥 흘려버리기엔 아깝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의 지진학자 로렌스 헤인즈(폴 지아메티) 박사는 네바다주의 후버댐에서 이상 징후를 감지한다. 후버댐의 미확인 단층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이 지진의 여파가 캘리포니아의 샌 안드레아스 단층에까지 미친 것이다. 헤인즈 박사는 샌 안드레아스 단층이 뒤흔들릴 경우 벌어질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중에게 알린다. 헤인즈 박사의 예언은 빗나가지 않았다. LA는 그야말로 초토화되고, 샌프란시스코 역시 쓰나미로 인해 쑥대밭으로 변한다.
▲영화 <샌 안드레아스>의 한 장면. ⓒ스틸컷 |
한편, 구조 헬기 조종사인 레이 게인즈는 재난으로 행방불명된 딸 블레이크(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를 찾기 위해 혈혈단신 재난의 한 복판에 뛰어든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전문지식을 십분 발휘해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조해 낸다. 레이의 활약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와중에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슬기롭게 발휘한다면 인명피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6월22일(월)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누적 관객 수 168만 여명으로 6월 개봉 영화 가운데 흥행 4위를 기록했다. 이전에 개봉된 재난영화가 한국 시장에서 큰 재미를 못 본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샌 안드레아스>의 흥행엔 우리 사회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영화 <샌 안드레아스>의 한 장면. ⓒ스틸컷 |
이 영화는 주인공의 영웅적 활약과 전문가의 정확한 상황예측, 그리고 빠른 정보전파 등이 어우러져 피해가 최소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우리는 지난 해 4월 세월호 참사를 당했고, 올해엔 5월에 시작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이란 재난을 겪고 있다. 세월호와 메르스는 서로 다르지만 전개과정은 판박이다. 기민하게 대처해야 할 정부는 오작동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은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냈고, 메르스 사태에 대해 정부는 비밀주의로 일관했다.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세월호와 메르스는 재앙으로 커졌다. 이런 와중이다보니 관객들은, 위기에 슬기롭게 대응하고, 보다 중요하게, 딸을 구해내는 영화 속 주인공의 활약상에 공감하는 것이다.
조금은 답답하다. 언제까지 대리만족에 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 재앙을 겪고도 정부 고위 공직자들은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것 같다. 또 다른, 세월호·메르스와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재앙이 닥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