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프리뷰] 오지 말았어야 할 터미네이터

터미네이터 시리즈 다섯 번째 영화 <제니시스>

▲영화 <터미네이터 – 제니시스>의 한 장면. ⓒ스틸컷 

터미네이터가 돌아왔다. “돌아오겠다(I’ll be back)”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이. 그러나 반갑지 않다.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오는 7월2일(목) 개봉 예정인 <터미네이터 – 제니시스>는 오리지널의 이야기 구도를 충실히 승계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오리지널의 아우라에 마구 흠집을 낸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영화의 주인공은 카일 리스(제이 코트니)다. 시리즈를 통틀어 카일 리스는 두 번 등장한다. 제임스 카메론의 오리지널과 4번째 작품 <미래 전쟁의 시작>에서다. 그러나 카일 리스란 캐릭터가 시리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그는 인류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의 특명을 받아 타임머신을 타고 1984년으로 되돌아간다. 그의 임무는 존 코너의 어머니 사라 코너(1편과 2편에서 사라 코너 역은 린다 해밀턴이 맡았다)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는 임무 수행 중에 사라와 사랑에 빠지나 그만 죽고 만다. 사라는 그와의 동거로 인해 아이를 잉태한다. 바로 그 아이가 존 코너였다. 
오리지널에서 카일 역을 맡은 배우 마이클 빈은 강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라는 카일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고, 그의 죽음을 계기로 여전사로 거듭난다. 특히 사라와 카일의 정사 장면은 영화의 압권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백미라 할 2편 <심판의 날>에서 카일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라 코너는 그를 추억한다. 그만큼 카일이 남긴 여운은 강렬했다. 이를 의식한 듯 4편 <미래 전쟁의 시작>은 주인공 존 코너가 카일 리스와 첫 만남을 갖는 대목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나 카일 리스의 신비감은 <제니시스>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카일 역의 제이 코트니는 자신이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내면 연기는 어설프고, 액션은 밋밋하다. 리스의 상대역인 사라 코너 역시 망가지기는 마찬가지다. 사라 코너 역의 에밀리아 클라크는 리스의 연인 역할은 물론, 존 코너의 어머니 역할을 하기에도 너무 어리다. 특히 2편에서 린다 해밀턴이 보여줬던 강한 남성성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제니시스> 연출자인 앨런 테일러는 어떤 식으로든 두 사람을 ‘짝짓기’해주려고 애쓴다. 그렇게 해야 존 코너가 탄생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사전교감이 덜 된 듯 두 배우의 감정 동선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영화에서 사라를 지켜주던 터미네이터 ‘팝’이 사라에게 연신 “언제 짝짓기 하나?”고 묻는 대목은 비아냥으로 들린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노쇠 기미 뚜렷 
▲영화 <터미네이터 – 제니시스>의 한 장면. ⓒ스틸컷
이제 아놀드 슈워제네거 차례다. 오스트리아 출신 보디빌더 아놀드는 ‘터미네이터’를 통해 대스타로 우뚝 섰다. 1편에서 보여준 무지막지한 연기는 지금 봐도 소름끼칠 만큼 강렬했다. 2편 <심판의 날>에서 모터 사이클을 타고 T-1000을 향해 샷건을 발사하는 장면은 아놀드 연기의 백미 중의 백미다. 그러나 3편 <라이즈 오브 더 머신>에서 노쇠 기미를 드러내더니 <제니시스>에서는 아예 늙은 터미네이터로 등장한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그야말로 ‘몸뚱이’ 하나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성공의 아이콘이다. 그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된 직후엔 차기 대권을 넘볼 것이란 관측도 심심찮게 제기됐다. 그러나 그의 성공신화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가 주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캘리포니아주 재정은 거덜나다시피 했고, 결국 22%의 초라한 지지율을 기록하며 정치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는 퇴임 이후 김지운 감독의 2013년작 <라스트 스탠드>로 헐리웃에 복귀신고를 한 뒤 <에스케이프 플랜>, <익스펜더블 3> 등에 잇달아 출연했다. 그러나 시거를 물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모습은 어색해 보였고, 흥행마저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제니시스>에서 노쇠한 ‘팝’은 황혼 길에 접어든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처지와 묘하게 겹친다. 
작품의 주제의식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수퍼 컴퓨터 스카이넷은 핵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멸망시키고 세상을 지배한다. 남은 인류는 이에 맞서 저항운동에 나서고, 존 코너가 저항운동을 지휘한다. 이에 스카이넷은 살인기계를 과거로 보내 존 코너의 어머니 사라 코너의 목숨을 노린다. 
이제까지 나온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이런 얼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1편과 2편이 나왔을 때만해도 <터미네이터>의 메시지는 일대 충격파를 일으켰다. 그러나 좋은 말도 세 번 되풀이하면 식상하는 법이다. 후속작들은 기존 시나리오를 울궈먹기에 급급했고, 그래서 이야기는 점점 진부해졌다. <제니시스>는 살짝이나마 변형을 시도한다. 그러나 사건이 벌어지는 시간대를 1984년에서 2017년으로 옮기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은 어설프다. 카일 리스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장면, 그리고 미래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가 최첨단 터미네이터로 변신하는 장면에서는 실소가 터질 지경이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할 차례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총 다섯 편이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각각 1984년과 1991년에 나온 1편과 2편 <심판의 날>로 끝났어야 했다. 2003년 개봉한 3편 <라이즈 오브 더 머신>, 2009년 <미래 전쟁의 시작>, 그리고 2015년 신작 <제니시스>는 하나 같이 기대 이하다. 특히 <제니시스>는 시리즈 가운데 최악이라 할 만 하다. 
오리지널을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은 <제니시스>에 대해 “내가 만든 1, 2편을 존중해줬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런 찬사가 아주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제니시스>는 오리지널의 ‘디스’로 읽힌다. <터미네이터> 1편과 2편, 특히 2편은 SF마니아들에게는 경전이나 다름없다. <제니시스>가 마니아들의 공분을 사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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