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끝났다. 그러나 후폭풍은 여전하다. 특히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타임라인은 찬반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지난 6월28일(일) 막을 내린 퀴어 문화축제 이야기다.
기독교계는 뒷감당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기독교계는 퀴어 문화축제 마지막 날 벌어질 퍼레이드 저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보수 기독교계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과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대표회장 양병희 목사), 그리고 국내 최대 교세를 지닌 예장합동(총회장 백남선)과 예장통합(총회장 정영택)이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등 모처럼 교회일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22개 교단이 연합해 벌인 ‘동성애 조장 중단 촉구 교단 연합 예배 및 국민대회’(이하 국민대회) 참석 인원은 9천 명에서 1만 명 선이다. 수치상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살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당초 기독교계는 5만 명 동원을 목표로 각 교단 소속 노회와 성도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그럼에도 동원 인원은 원래 목표치의 1/5에 그쳤다. 이 같은 수자는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수에 비교해 볼 때 더더욱 초라하다. 퍼레이드 참가자는 국민대회 참여 인원의 세 배인 3만(주최측 추산)에 달했다. 기독교계의 동원력이 현저하게 약화됐다는 징후다.
국민대회 참가자들이 모두 ‘위로부터의’ 동원령에 의해 나왔다고 볼 수는 없다. 동성애의 위험성에 경각심을 갖고, 이를 막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여겨 거리로 나온 기독교인들도 상당할 것으로 본다. 실제로 기자가 현장에서 마주친 기독교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동성애가 문란하고, 이 나라의 성윤리를 타락시킨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 이런 탓에 불경한(?) 축제를 허가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런 의식을 근거로 기독교계의 집단행동에 대해 ‘잘 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무엇보다 판단의 기준은 일관되게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계가 그동안 보인 행태를 보면, 판단기준이 굉장히 선택적으로 작동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금 기독교계는 사회적 지탄 대상이다. 그 이유는 구태여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변태적인 성추행 행각, 공금횡령과 논문표절, 액수만 백억 원 대에 이르는 배임, 변칙적인 교회 세습, 천억 원 대의 비자금 조성 의혹까지 일반 사회에서도 엄하게 다스리는 온갖 범죄가 ‘주님이 세우신 권능의 종’인 목회자들에 의해 공공연히 자행되는 지경이다.
이런 일들에 대해 한기총-한교연 등 보수 기독교 연합체와 이른바 ‘장자교단’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이 모든 범죄행각을 접하고도 기독교계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침묵하거나 궤변으로 감쌌다. “덕이 안 된다,” 혹은, “전도의 문이 막힌다” 등의 이유로 이 모든 범죄행각들에 무차별적으로 면죄부를 발부했다.
기독교계 판단 기준, 선택적 작동
▲지난 6월28일(일) 서울광장에서 펼쳐진 퀴어 문화축제에서 한 기독교인이 동성애 반대 격문이 적힌 팻말을 들고 광장 진입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문화축제 참가자는 기독교계의 동성애 혐오를 규탄하며 맞서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
목회자들이 저질러온 범죄들과 동성애를 비교해보자. 어느 쪽이 죄가 더 클까? 성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동성애에 대해선 어조가 완곡하다. 레위기 기자는 남자와 한 자리에 드는 것을 ‘망측한 짓’(레위기 18장 22절)이라고 적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7절에서 “남자와 남자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고만 기록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 내려지는 형벌은 모골이 송연하다. 사무엘상 2장에서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은 제물을 사유화하는가 하면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잠자리를 갖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 이러자 여호와는 이들은 물론 엘리 가문 자체를 멸했다. 또 다른 사례를 제시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동성애로 인해 사회가 타락하리라는 걱정은 일단 접어두기 바란다. 동성애는 성서에 기록됐을 정도로 오랜 내력을 가진 인류의 습속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기독교 전통이라는 큰 맥락에서 동성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두고 교회 내에서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 쪽은 동성애를 극도로 혐오한 정치-종교 권력이었다. 나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가 남성 동성애자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체포, 고문 등 온갖 인권침해를 자행한 것이 그 예다.
만약 기독교계가 성도덕의 타락을 우려했다면,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변태적 성추행 행각에도 동등한 수위의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또 동성애 축제를 허가한 박원순 시장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겠다면, 그 잣대는 세월호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음에도 수수방관하다시피 한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전 목사가 속한 예장합동의 교단장은 ‘덕’ 운운하며 그의 행각을 덮기에 급급했고, 극히 일부 교회를 제외한 기독교계 전반은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수습책임을 묻는 목소리를 불경스러운 것으로 취급해왔다.
다시 한 번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잔치는 끝났다. 이 잔치에서 기독교계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세 과시에도 실패했고, 퀴어 퍼레이드도 막지 못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독교계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단문 메시지 서비스인 카카오톡엔 동성애를 지원하는 국내외 기업제품을 사지말자는 내용의 메시지가 유포되고 있다. 이 메시지에 적힌 동성애 지원 기업들은 코카콜라, 스타벅스, KFC, 켈로그, 스니커즈, 멘토스, 스키틀즈, 구글, 유튜브, 텀블러, 아디다스, 나이키, 게스 등이다. 정보 전달 차원에서 몇 개 기업을 추가하자면 페이스북, 트위터, 마이크로 소프트 등도 동성애 지원 기업에 속한다.
앞으로 동성애 반대를 하려면 일상에서 스타벅스 커피는 끊고 시원한 음료가 생각날 때라도 코카콜라를 마셔서는 안 될 일이다. 게다가 동성애자가 CEO로 있는 애플사 제품은 절대 소비하지 말고 강력한 검색 기능으로 정평이 난 구글도 북마크에서 없애야 할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컴퓨터에 마이크로 소프트가 개발한 윈도가 설치돼 있으니 컴퓨터를 켜지 말거나, 운영체제를 바꿔야 할 것이다. 보다 좋은 방법은 차라리 아미쉬 교도들처럼 문명의 이기 자체를 거부하고 19세기 생활방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이 동성애 반대를 일상에서 적극 실천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