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돈다. 지난 8월4일(화) 오전 경기도 파주시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합동참모본부는 10일(월) 성명을 통해 “우리 측 장병 2명이 북한군이 매설한 것으로 확실시되는 ‘목함지뢰’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지뢰도발은 가뜩이나 경색된 남북관계를 더욱 냉각시키는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군 당국이 ‘원점 타격’ 운운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자칫 비무장지대의 긴장상황이 안보위기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사실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지는 남북 사이의 긴장은 새삼스럽지 않다. 한국전쟁도 따지고 보면 휴전선 사이에서 빚어진 크고 작은 갈등이 전면적으로 확대된 데 불과하다. 더구나 북한은 우리 군뿐만 아니라 미군을 향해서도 도발을 감행해 일대 위기를 불러온 전력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일이 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벌어진 판문점 도끼 살해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말다툼이었다. 남한 측 노무자들은 한미 양국 경비병의 호위 하에 JSA 서쪽 끝에 선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시작했다. 이러자 북한 측 경비병력들이 몰려와 즉각 가지치기 작업을 중단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측 아서 보니파스 대위는 이에 아랑곳없이 작업을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이러자 북한 군 측은 보니파스 대위를 쓰러뜨린 뒤 곤봉과 쇠파이프, 날이 무딘 손도끼 등을 동원해 마구잡이로 구타했다. 외신 기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보니파스 대위는 하도 얻어맞아 얼굴이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다고 한다. 현장에 있던 또 한 명의 미군 장교 마크 바렛 중위 역시 북한군에 구타당해 사망했다. 한미 양국군 병사들도 손도끼와 곤봉 등으로 맞아 심하게 다쳤다.
이 사건은 즉각 본국에 보고됐다. 미국 정부는 격분했다. 당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중요한 것은 북한이 두 명의 미국인을 때려죽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이라며 격앙했다. 미국 정부는 그러나 정작 군사력 사용엔 신중했다. 격론 끝에 즉각적 보복 대신 미 공병대원 16명을 JSA에 진입시켜 미루나무를 모조리 베어내고, 북한이 설치한 2개의 바리케이드를 철거하는 선에서 상황을 종결했다. 그러나 이 작전마저 북한과의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이에 미국은 엄청난 규모의 지원병력을 붙였다. 최근 타계한 한반도 전문가 돈 오버도퍼는 자신의 책 『두 개의 한국』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극히 제한된 이 소규모 부대를 뒤에서 지원하고 있는 병력은 3차 세계대전이라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상공을 선회하는 20대의 범용 헬기에는 1개 미군 보병중대가 탑승해 있었고 7대의 코브라 공격용 헬기가 후방을 지원했다. 저 멀리 상공에는 B-52 폭격기가 미군의 F-4 폭격기와 한국군의 F-5 폭격기의 호위를 받으며 비행중인 모습이 보였다. 오산 공군기지 활주로에는 중무장하고 연료까지 가득 채운 F-111 전폭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해상에는 미드웨이 항공모함 소속 기동부대가 정박해 있었고 비무장지대 인근에는 중무장한 한국군 보병 기갑부대, 포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일촉즉발 위기, 북-미 한 발자국 씩 물러서
다행히 북한은 미국의 무력시위에 지레 겁을 집어 먹고 사태를 확산시키지 않았다. 사태 진화를 위해 김일성이 직접 나섰을 정도였다. 김일성은 북한 측 군사정전위 한주경 수석대표를 통해 유엔군 사령부에 친서를 전달해 유감을 표시했다. 미 국무부도 김일성의 유감표시를 사과로 받아 들였다.
미국이 군사적 대응에 신중했던 배경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민감성이었다. 즉, 전면적인 군사력 사용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지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당시 대통령이던 제럴드 포드는 미국의 대응 조치에 대해 이 같이 회고했다.
“한반도에서의 지나친 무력과시는 자칫 전면전으로 비화될 공산이 크다. 반면에 적절한 수준에서 병력 사용을 자제한다면 미국의 결연한 의지를 효과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미국이 북한에 군사적 보복조치를 취했다면 북한은 이에 맞서 남한에 보복공격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경우 남북은 전면전이 불가피했고, 이로 인해 동북아 안보는 일대 격랑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극한의 위기상황에서 한 발 물러선 건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판문점 도끼 살해사건에 보인 미국 정부의 태도를 줄곧 평가절하해 왔다.
북한의 지뢰도발에 대해 우리 군은 격앙된 반응 일색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10일(월) 대북경고성명을 통해 “우리 군은 북한이 이번 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 우리 군은 수차례 경고한 대로 북한이 자신들의 도발에 응당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장에 함께 있던 병사들 역시 “적 GP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라는 등의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반면, 지뢰도발로 다리를 크게 다친 김정원 하사는 “강경대응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직접적으로 강경하게 하는 것은 북한의 의도에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며 냉정하게 반응했다. 미국 역시 확전 우려가 있다며 적GP 타격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해선 응당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보다 군 수뇌부는 보다 차분하게 임해야 한다. 강경대응 일변도로 나가다가 북한의 의도에 말리기 쉬운데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뒤흔들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군 수뇌부가 보인 행태를 보면 원색적인 언사만 쏟아냈을 뿐 한반도 정세의 지정학적 민감성에 대해선 기본적인 인식도 갖추지 못한 것 같아 보인다. 이런 사람들이 한반도 안보를 책임지고 있으니 참으로 불안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