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목회자 변화만 기다리는 것…“무책임”

황인각,『성도 여러분, 안녕들하십니까』(홍성사, 2015)

▲『성도 여러분, 안녕들하십니까』(홍성사, 2015) 겉 표지.
저자는 20년간 자의든, 타의든 아홉 번이나 교회(선교단체)를 옮겨 다니며 한국교회의 일반화된 문제적 현실을 목격했고 평신도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7년간 고민했다고 밝히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체험이 담긴 진지한 고백이자 진단이기 때문에 그가 지적한 문제점과 그 나름의 해법은 비전문가적 시각이라는 편견을 불식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가 한국교회의 현실을 분석하며 제시한 비유적 설명은 그가 문제들의 핵심을 명확히 포착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법도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지점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그가 그간 교회개혁을 외쳤던 목회자, 신학자, 사회활동가들에 뒤지지 않는 전문적 식견을 갖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에 더하여 그는 비가 새는 집을 떠나버리지 않고 고쳐서 살고자 하는 애정을 그의 목소리에 담고 있다. 그래서 그가 교회의 위기에 대해 목회자에게만 책임을 지울 것이 아니라 평신도가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의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교회를 살리고자 하는 적극적 책임의식을 동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는 먼저 교회의 위기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만 불거지고 있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노정하는 문제들은 전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반복되어 왔던 것들이므로 신앙의 본질적 차원에서 거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염려하는데,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신앙인들이 교회의 유익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단 문제가 심각한데, 소위 정통교회에서도 성도들이 배우는 바가 매우 빈약한 것은 큰 문제이다; 교회는 사회의 비난에 직면해서 성속의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세계를 재단하던 경향을 교정해야 한다; 목회자들의 비리는 기독교 영성의 한계를 노정하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 진지한 담론을 개진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이 교회가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고 하거나 하나님과 거래하는 자리에 서려고”(31) 함으로써 교회의 존재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가 자신을 부르신 이 안에서 거하며 자신을 부르신 이의 뜻에 자신의 뜻을 굴복시킨 사실을 각성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자기나름의 뜻과 의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켰다.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그것이 예수께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예수의 태도는 교회가 가져야 할 태도이다. (30-31)  
이러한 자기반성의 과정을 거칠 때, 교회가 세상에서 지녀야 할 정체성과 그 역할을 재점검해야 할 이유도 성찰할 수 있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 교회를 본다. 그리고 교회가 하는 말과 행동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교회가 성도들과 비기독교인을 대하는 태도, 사회의 약자들을 대하는 태도, 세상과 권력을 바라보는 관점, 고통과 재난에 보이는 반응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내부의 성도들과 바깥 세상이 교회를 통해 어떤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33) 
이처럼 신앙생활의 본질적 담론을 재점검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교회가 존재하는 방식’과 ‘교회가 일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3-7장에서 다루는 교회의 ‘존재 방식’은 비전, 예배, 주일학교, 봉사, 복 등을 매개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실적 위주의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교회의 비전”(3장), “말씀이 말하지 않고 광고와 개인의 생각이 나열되는 설교와 예배”(4장), “다음 주에도 꼭 나오라는 메시지만 무수히 듣고 떠나는 주일학교”(5장), “동기를 묻지 않으며 명예와 체면으로 행해지는 봉사”(6장), “살지 않으면 보여 줄 수 없는 복”(7장) 등이 제시된다. 이러한 존재방식은 교회가 현상적으로 중요시할 수는 있어도 성도들의 신앙생활과는 괴리가 있기 때문에 진정한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예배를 잘 드리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듣는다면 얼마나 지겨울지 생각해 보라.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예배에 계속 참여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예배란 ‘참을성 있게 앉아서 들어주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겠는가. 한 아이에 대해 주일학교가 갖는 목표란, 삶의 변화는 고사하고 1년 후에도 교회에 남아 있도록 만드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예배와 그 외의 순서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한 메시지를 반복하게 된다. “계속 교회에 나오너라.” 나는 이 문제가 비단 주일학교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64)   
교회는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제도적 기관으로 전락했으며 복음과 거룩한 교제가 소통되는 소명의 공간을 상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8-12장에서 다루는 교회의 ‘행동 방식’은 외부에서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즉, “프로그램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선교”(8장), “교회 일에 갇혀 주님의 일을 하지 못하는 사역”(9장), “가게 홍보와 다를 바 없는 전도 방식”(10장), “교회 밖 사람들을 죄인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11장), “예배당 중심으로 살며 세상에 무관심한 현실”(12장) 등은 교회를 선교의 현장으로부터도 소외시키는 현실을 비판한다. 
세상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는 교회는 ‘세상은 원래 교회를 미워하고 핍박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을 상기하며 그들의 말에 개의치 않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받는 비난은 예수의 길을 따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탐욕스럽게 추구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101)  
이러한 현실 분석에 이어, 저자는 문제해결의 열쇠가 목회자에게만 주어져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목회자도 평신도들 가운데서 함께 자라고 함께 생활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따라서 교회의 문제는 목회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스란히 평신도들의 문제이며, 목회자의 변화만 기다리는 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목회자만 바뀌면 모든 것이 바로잡히리라 기대하는 것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이다. 목회자 역시 우리와 같이 주일학교를 다니고,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 우리 옆에서 성경공부를 했던 사람이 아닌가. 나의 어릴 적 친구들 가운데도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고 있는 이들이 꽤 있다. 그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서 나온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약점과 오류들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타당하다. 그들이 실수했다면 우리도 실수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잘못된 야망을 갖고 있다면 우리 마음 안에도 있을 것이다. 다만 평신도들의 권력과 영향력이 교회에서 크지 않아 실수나 야망이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다. (12)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 분석에 이어 해법을 제시한다. 그는 현재의 교회의 위기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문제에 대해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결정들은 소수의 지도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중략) 그렇기에 지도자들이 깨어나고, 그들이 새롭고 정직한 눈으로 성경과 교회를 바라보기 전에는 교회 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많은 비판들은 늘 비슷한 결론, 즉 교회 지도자들이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로 흐르는 것 같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교회는 새로워질 희망이 없는 것인가? 평신도들로서는 목회자들이 변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가? (178-179) 
그는 교회를 회복시키는 평신도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즉, 사랑에 근거하여 교회의 가르침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교회의 허물을 내 삶에서 먼저 깨닫고 발견하며, 몇 사람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진정한 교회를 경험하고, 주신 은사를 다른 성도를 위해 적극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평신도들의 활동으로 교회는 힘 있게 세워지는 것이다. 
저자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참된 교제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찾아 작은 모임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교회를 다니지만 교회가 없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신앙과 삶의 고민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진심으로 함께 공유할 참된 공동체를 찾아볼 것을 권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으므로, 지금 있는 곳에서 참된 교제를 원하는 사람을 찾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말씀하신 대로, 그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연륜이나 지식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마음 깊은 것을 나누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교회’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임에서는 영적 무력감과 빈곤함을 경험하기도 할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앙망하게 되고, 결국 일방적이며 위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유무상통할 수 있는 교제를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교회’인 것이다. 
저자는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결코 ‘안녕할’ 수 없는 성도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가 제시한 분석과 해법은 결국 교회의 본질을 회복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게 하고자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다양한 은사와 연단 가운데 구원을 이루어가도록 ‘교회’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이 현실 속에서 희석되고 변질되어버린 상태가 문제의 핵심이므로, 저자는 예수께서 몸소 보여주셨듯이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태도를 회복할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한국교회가 왜 이와 같은 위기에 봉착하여 성도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암시만 하고 넘어간 지점을 좀더 확장시켜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을 개진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교회의 위기의 본래적 원인은 생존욕구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경제성장과 문화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그 과정에서 오순절성령운동을 주장하는 교회의 기복적 신학과 체계적인 교인 관리 기법이 교회의 외형적 성장으로 이어지자 거의 모든 교회가 그 신학과 기법을 교회 운영의 차원에서 도입하게 되었다. 그 결과 수적 성장 위주의 사목이 유행하고 그 사목의 기술을 전수하는 강좌까지 신학교에 개설되기도 했다. 이러한 유행 속에서 목회자와 평신도들은 결국 성공주의, 물량주의를 당연시하게 되었다. 저자가 고민하는 교회의 문제들은 사실상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가르치셨는데, 한국의 제자들은 정 반대로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골몰했다는 말이다. 성령을 받기 전의 제자들의 속마음이 한국교회의 현장에 그대로 구현된 듯하다.  
예수께서는 분명 이 땅에서 돌아가시기 위해서 오셨고 그 죽음 때문에 영적인 결실을 얻게 될 것을 기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예수를 따르는 무리라면, 자기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죽이며 말씀대로 실천하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예수께서 그 일을 위해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교회로 삼으시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가르치지 않으셨는가? 이 일에 있어서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위상을 달리 할 이유가 없다. 그래야만 성도들이 ‘안녕’한 교회가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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