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김명용 총장이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이인기 기자 |
서울신학대학교(총장 유석성)는 9월4일(금) 오전 교내 성결의 전당 토마스 홀에서 제2회 서울신대·장신대·튀빙겐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주제는 “평화와 기독교의 과제”이며 튀빙겐대 명예교수이자 서울신대 석좌교수인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테러시대의 평화와 저항―본회퍼 오늘의 의미”를, 튀빙겐대의 위르겐 캄프만 교수가 “근대독일교회사에서의 갈등과 해법”을, 크리스토프 슈베벨 교수가 “세계의 정의로운 평화를 위하여”를, 루스 콘라드 교수가 “폭력 없이, 말씀으로―기독교 설교의 과제로서 평화”를, 미카엘 틸리 교수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장신대의 신옥수 교수가 “평화통일신학의 형성과 과제”를 발표했다.
학술대회는 장신대 김명용 총장의 개회사로 시작되었으며 유석성 총장은 “기독교와 평화”라는 제목의 기조강연을 했다. 강연에서 유 총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성육신하신 대로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증언하고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의 평화가 ‘정의로운 평화’이며 ‘주어진 상태가 아니라 실현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으며 ‘소유가 아니라 공동의 길’임을 설명하면서, 남북한이 대치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을 이루는 일은 “하나님의 계명이며 평화를 만들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몰트만 박사는 본회퍼가 평화의 신학자이자 무법적 독재에 대한 적극적 저항의 모범이라고 소개하면서 그가 평화를 외치면서 폭력에 저항한 모습을 모순으로만 간주할 것인지를 고민해보자고 제의했다.
먼저 그는 본회퍼가 1934년 덴마크 파뇌에서 열린 한 에큐메니칼 회의에서 행한 연설을 분석하면서 평화주의자로서의 본회퍼의 모습을 제시한다. 그는 본회퍼의 연설에서 “안보를 향한 길 위에 평화는 없다,” “평화는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세계 속에 계시기 때문이다,” “평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의 위대한 에큐메니칼 공의회[가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라는 네 개의 명제를 추출하여 본회퍼가 품고 있는 평화의 사상을 설명했다.
각각의 명제에 대해 그가 해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보를 우선하면 통제와 억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와 함께 평화에 대한 희망이 이 세계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므로 평화는 가능하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 있지만, 모든 민족들의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 한계들을 초월한다... [교회는] 분리와 투쟁의 이 세계에 대하여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했다”; “보편적 평화공의회는 평화에 대한 말씀을 민족들에게 선포하고 수용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손에서 무기를 빼앗고 그들에게 전쟁을 금지하게 [할 수 있다].”
▲강연하고 있는 몰트만 박사(우)와 그의 제자 김균진 박사(좌, 연세대 명예교수). ⓒ사진=이인기 기자 |
그런데, 이처럼 평화에 대한 생각이 굳건했던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 작전에 협력함으로써 1945년 4월에 처형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한 사상적 근거는 무엇인가? 무엇이 그를 전환기적 결단을 하게 만들었는가? 물론, ‘교회의 목사가 정치적 저항세력들과 연대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두고 본회퍼는 지인들과 함께 고민하며 토의하기도 했다. 몰트만 박사도 본회퍼가 ‘평화와 저항의 모순’을 의식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본회퍼는 폭력 행위 자체에 대한 원칙적인 고민보다는 생명에 대한 책임을 더 중시했다. 평화를 지키는 것이 목사를 종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러한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목사 직분의 한계를 핑계로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이러한 결심의 정당성을 자신의 『윤리학』에다 기술한다. 그 책의 <책임 있는 행동의 구조> 장에 그는 “모든 책임 있는 행동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이다,” “예수는 죄책을 가진 인류의 공동체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들의 죄책을 짊어지고자 한다,” “‘죄가 없는 자인 예수는 인간의 죄책을 짊어진다.’ 예수는 우리를 위하여 책임을 진다,” “이웃을 대리하는 모든 책임 있는 행위는 죄 없이 죄책을 짊어진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근원이 있다,” “사심 없이 이웃의 죄책을 짊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책임 있는 행동의 본질에 속한다”라며 자신의 결단을 예수의 사역에 빗대어 구조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했다.
몰트만 박사는 본회퍼의 결단을 두고서 ‘정치적 저항의 권리’와 ‘기독교적 저항의 권리’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설명한다. 그는 현대의 정부가 안보를 이유로 “위로부터의 테러”를 국민들에게 가하거나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폭력 행사[를 자행할 때 그것]에 대한 저항은 합법적”이라고 해석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회퍼의 저항의 결단이 “나치의 인종주의 독재의 희생자들로 말미암아 유발되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본회퍼가 정치적인 목적을 지니고서 저항을 결행했다면 자신의 평화주의를 배반한 격이지만, 자신이 평화를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식했고 그 명령을 실행할 통로를 고민한 결과로 저항을 결정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정치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