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가 한국교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심지어 성공회가 기독교 전통에 속한 교회인지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대한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민족의 아픔과 함께하며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올해는 여러모로 대한성공회에 뜻 깊은 해다. 먼저 오는 9월29일(화) 선교 125주년을 맞이한다. 그러나 더욱 뜻 깊은 일은 아무래도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의 전경개방일 것이다. 국세청 남대문 별관이 헐리면서 주교좌성당은 단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평소 주변을 무심코 지나치던 시민들은 서울 시내 이런 성당이 다 있었나 하고 놀라워 한다. 언론의 관심도 뜨겁다. 무엇보다 성공회 성도들은 주교좌성당의 전경 개방에 고무된 모습이 역력하다.
이에 대한성공회의 수장인 김근상 주교를 만나 전경 개방에 대한 소감과 사목 방향, 그리고 향후 성공회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 주교와의 인터뷰를 1, 2부에 걸쳐 싣는다.
▲대한성공회 수장 김근상 주교가 주교좌성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
Q : 먼저 국세청 남대문 별관 철거에 힘입어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의 전경이 드러났습니다. 주교좌성당은 성공회 안팎에서 화제 거리인데요, 이에 대한 소감을 듣고자 합니다. 또 개인적으로 주교좌성당에 특별한 추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 추억에 대해서도 같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근상 주교(이하 김 주교) : 오랜 세월동안 주교좌성당을 가로 막았던 국세청 남대문 별관 건물이 서울특별시의 광복 7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철거됐습니다. 해당 건물은 1937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체신국 청사로 지은 건물입니다. 원래는 고종황제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귀비 엄 씨의 사당이었던 덕안궁 터였지요. 이후 이 건물을 계속해서 관공서가 사용해 왔습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별관 철거는 일제의 잔재를 거두어 냈다는 차원에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 건물의 철거를 시작으로 세종로 일대 역사·문화 공간 조성 사업이 시작됩니다. 근대 서울 고유의 모습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죠. 서울시는 한민족의 정통성과 올바른 역사성을 보존해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원래 갖고 있는 장소적 상징성, 역사성을 회복해 시민들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다시 탄생하게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서울시의 노력에 힘입어 대한성공회를 대표하는 성당인 서울주교좌성당이 시민들 앞에 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됐습니다. 건물이 철거되고 난 요즈음에는 시민들이 서울시의 계획에 관심을 갖고 자주 성당과 주변을 찾고 있습니다. 교회로서는 민낯을 드러내는 일과도 같은 일이어서 더욱 세심하게 철거작업과 함께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준비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곳이어서 부담이 적은 편이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습니다. 그런 만큼 이 아름다운 교회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교회인지에 대한 궁금함과 기대가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대한성공회 수장 김근상 주교. ⓒ사진=지유석 기자 |
저는 개인적으로도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저의 외조부인 이원창 신부님은 1926년 서울주교좌성당이 축성될 때 주임사제셨습니다. 6·25 때 평양대성당 주임사제로 성당을 지키던 외조부님은 전란 때에 순교하셨지요. 현재 주교좌성당 안에 고인의 추모비가 있습니다. 또 제 부친이신 김태순 신부님은 제가 일곱 살 때 이곳 주교좌성당의 보좌사제로 계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이 주교좌성당을 어린 시절 놀이터처럼 생각하며 지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뒤로 시간이 한참 흘러 주교좌성당이 지금의 모습으로 완전히 복원되었던 1996년 당시 전 주임사제로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 집안 3대에 걸쳐 이곳 주교좌성당과 아주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셈이지요.
Q : 철거된 국세청 남대문 별관터는 성공회 소유는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공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으로 짐작합니다. 향후 별관 터 활용과 관련, 성공회 차원에서 별도로 마련해 놓은 정책 제안이 있는지요?
김 주교 : 말씀대로 이번에 철거된 건물은 대한성공회 소유지는 아닙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사용해온 국유지이지요. 성공회는 이에 발 맞춰 저희가 사용하던 건물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향후 옛 국세청 별관 건물 철거작업과 함께 더욱 큰 사업을 해나가려 합니다. 철거에 힘입어 서울주교좌성당은 세종대로와 바로 연결이 됐습니다. 서울시의 계획에 따르면 철거된 이 터의 지상과 지하공간은 덕수궁과 시청, 서울광장, 그리고 세종대로의 지하를 포함하는 공간 구성 종합계획 안에 포함됩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주교좌성당은 4.19 학생 운동을 회상하게 하고, 6.10 민주항쟁을 기억하게 하는 의미 있는 장소로, 또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에게 여유와 휴식을 제공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를 위해 주교좌성당은 내부적으로도 서울시 계획과 발 맞춰 누구나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갈 방침입니다.
▲국세청 남대문 별관 철거로 전경 드러낸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주교좌성당은 서울시의 세종로 일대 역사·문화 공간 조성 사업에 발 맞춰 누구나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갈 방침이다. ⓒ사진=지유석 기자 |
Q : 주교님께서는 2009년 주교 서품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무지개처럼 여러 색깔이 어우러지는 아름답고 활력 있는 교회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제 7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사목을 되돌아본다면, 그리고 이번 성당 전경 개방이 사목 방향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시는 지요?
김 주교 : 벌써 7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지나온 발걸음은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색이 한데 어울려 무지개라는 이름처럼 불릴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노력을 놓지 않았던 세월이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먼저 일방적으로 주도하기 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으려했습니다. 교회 안팎으로 들리는 여러 가지 아픈 소리를 듣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성직자들은 평신도, 그리고 교회가 이웃 사람들이 원하는 일들을 찾아서 할 수 있도록 권면했고, 고맙게도 잘 따라주었습니다. 이런 노력에 대한 성실한 응답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중앙 정부든 지자체든 성공회가 하면 안심 할 수 있다는 격려의 말씀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 안에서의 변화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성직자 납세 문제, 찬송가 제작에 따른 저작권 문제를 완전히 풀기도 했습니다. 정의로움을 추구하면서 과정, 과정을 정의롭게 만들려는 수고도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을 기울이는 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7년의 세월은 준비만 열심히 한 셈이 됐습니다. 그 다음은 새로운 세대가 이어 받을 것이라 믿습니다.
더불어 이번 국세청 남대문 별관 철거를 계기로 단순히 과거를 청산하거나 혹은 훌륭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보게 된 기쁨을 넘어서, 교회가 이제 이 세상을 향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보기 좋은 교회로 남아있는 그런 교회로는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교회, 말하자면 관광지로 전락한 교회는 서구에 가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한성공회 수장 김근상 주교가 주교좌성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
Q : 최근 기독교인들이 성공회에 대해 부쩍 높은 관심을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담당 사제는 지난 해 12월 성탄절 견진 받은 34명 가운데 29명이 타교파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증가세에 대해 어떤 입장이신지요? 혹시 기존 교회에 대한 염증에 힘입은 반사이익은 아닐까요? 또 성당 전경 개방이 성공회 성도 수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보시는지요?
김 주교 : 흔히들 ‘수평 이동’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새로 교우가 되는 경우, 즉 신앙이 없었던 사람이 새롭게 신앙을 갖는 말 그대로의 ‘새 신자’가 아니라 기존 교회에 출석하던 신앙인이나 신앙생활을 하는 울타리를 옮기는 경우에 보통 ‘수평 이동’ 혹은 ‘가나안 교인’이라는 표현을 널리 쓰는 것 같습니다.
성공회 안에도 이러한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적하신 주교좌성당의 새 신자 중에 상당수의 교우들이 천주교를 비롯해 개신교 타 교파 출신이라는 점도 이를 잘 보여준다고 봅니다. 성공회가 갖는 특성, 다시 말해 천주교와 개신교라는 극단을 아우르는 성공회의 신학과 영성으로 인해 성공회를 찾는 사람들은 해마다 꾸준하게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 이를 ‘반사 이익’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 당시의 성공회의 노력에 대한 공감으로 보고 싶습니다. “더 열린 교회, 더 성서적이고 더 전통적인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구나, 아직 우리는 할 일이 더 많이 있구나!”라는 말씀으로 들린다는 말입니다. 어느 경우든 저희가 상대적으로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최선을 다해 교회의 궁극적 사명을 이 시대에 펼쳐 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