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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제2의 아일란 쿠르디를 막기 위해선

시리아 난민 문제, 본질적으로 정치적 사인

지난 주 온 세계는 고요히 잠든 듯한 세 살 바기 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 앞에 눈시울을 붉혔다. 

아일란 쿠르디는 내전을 피해 시리아를 떠나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가다가 배가 뒤집혀 목숨을 잃었다. 어린 생명의 죽음은 세계의 양심을 일깨웠고, 이에 힘입어 유럽 각국은 시리아 난민들에게 닫혔던 문의 빗장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시리아 난민 문제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다. 따라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문제 해결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국제앰네스티(AI)에 따르면 2015년 2월 현재 시리아 난민은 1,100만 수준이다. AI는 시리아 국내에서 고향을 떠난 인구가 760만 명, 시리아 밖으로 피난한 인구는 400만 명으로 보고 있다. 2011년 내전 직전 시리아 인구가 2,300만이었으니까 시리아인 둘 중 한 명은 난민인 셈이다. 한국에 난민신청을 한 시리아인도 2012년 146명, 2013년 295명, 지난해 204명으로 꾸준히 느는 추세다.  
왜 시리아 사람들은 난민 신세가 됐을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2011년부터 시작된 내전이다. 2010년 12월 튀니지를 시작으로 이집트, 리비아, 예멘, 바레인 등 아랍 전역을 휩쓴 아랍의 봄은 시리아에까지 불어 닥쳤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 소도시 다라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이 시위는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에 대해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강경진압으로 맞섰다. 정권퇴진을 외치는 소리는 날로 높아갔고, 급기야 그해 7월 반정부 진영에 합류한 일군의 장교들이 자유시리아군(FSA)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FSA의 등장은 시리아 반정부 투쟁이 내전으로 비화하는 단초가 됐다. 
중동 특유의 복잡한 종파와 국제정치의 난맥상은 시리아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시리아 내전은 일정 수준 종파 분쟁의 성격을 띤다. 시리아의 지배층은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로 시리아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하다. 나머지 73%는 수니파가 차지한다. 내전이 불거지자 시아파는 정부편에, 수니파는 반군 편에 섰다. 아랍 각국도 종파에 따라 이해관계를 달리했다.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카타르는 반군을, 반면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는 정부군을 각각 지원했다. 
▲온 세계를 울린 아일란 쿠르디. [출처= DHA]

한편 미국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적대적 관계에 있던 이란이 움직이자 반군 편에 서며 적극 견제에 나섰다. 이러자 러시아가 뛰어 들어 이란과 함께 정부 편을 들었다.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준동은 가뜩이나 복잡하던 시리아 상황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그리고 뒤이은 시아파 누리 알 말리키 정권의 시아파 편향정책에 편승해 세를 키운 IS는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동부를 장악한 상태다. 최근 IS는 시리아의 고도(古都) 팔미라의 유적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며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러자 친정부 성향의 국민들마저 고향을 등지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유력 신문인 뉴욕타임스는 9월4일(금)자 기사에서 “비교적 안전지대에서 지냈던, 친정부적인 중산층이나 부유층들이 난민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사태 해결이 열쇠 
고향을 등진 시리아인들의 여정은 고달프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은 먼저 인접국인 터키나 요르단을 들렀다가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로 향한다. 이어 마케도니아, 헝가리 등을 경유해 최종 목적지인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이들이 서유럽으로 떠나는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웃인 터키, 레바논, 요르단에 난민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AI의 통계를 살펴보자. 터키에 머무는 시리아 난민은 190만이다. 국외 난민의 절반에 이르는 수준이다. 레바논과 요르단이 각각 120만과 65만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먹을거리다. 그러나 이마저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세계식량계획은 현지시간으로 4일(금) 기금부족으로 인해 식량구매권(푸드파우처) 지원을 받던 시리아 난민 중 1/3이 9월부터 지원을 못 받게 됐다고 발표했다. 
시리아 난민 문제는 정치와 종파가 복잡하게 얽힌 중동 정세와 자국 이해 추구가 최우선인 국제정치가 빚어낸 비극이다.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은 이런 비극의 한 단편이다. 한편으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논평을 내고 시리아 난민에 대해 유럽 각국의 지원을 호소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 시리아 난민 문제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사안이다. 정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아일란 쿠르디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따라서 관련 이해당사자가 한 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난마처럼 얽힌 시리아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런 과정이 선행되지 않으면, 난민에 대한 국경개방은 미봉책에 그칠뿐더러 오히려 또 다른 갈등, 즉 유럽 내 반이민·반이슬람 정서를 유발할 위험성이 높다. 
끝으로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절에 고달픈 난민의 길에 접어들었다가 세상을 떠난 아일란 쿠르디에게 깊은 애도를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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