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0일(목) 오전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미수습자의 신속한 수습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단원고 허다윤 양의 부모 허흥환-박은미 씨 부부. 이들은 오후엔 홍대입구로 이동해 시위를 이어나간다. ⓒ사진=지유석 기자 |
세월호 참사 500일째인 지난 8월28일(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이영훈 대표회장,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양병희 대표회장 등 기독교계 주요 인사들이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가 마련된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이들은 단원고 허다윤 양, 조은화 양, 일반인 권혁규 씨 등 9명의 미수습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교회, 특히 영향력 있는 교회들이 세월호 참사에 냉담했던 사실을 감안해 본다면 교계 주요 인사들의 방문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났다. 세월호 참사 발생 513일째인 9월10일(목) 오전 단원고 허다윤 양의 부모인 허흥환-박은미 씨 부부는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시위 중이었다. 박 씨는 오전엔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오후엔 홍대 입구로 이동해 시위를 이어 나간다. 시위를 벌인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기독교계 거물급 인사들이 다녀간 뒤 혹시 이렇다 할 변화가 감지되는지 물었다. 박 씨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하루라도 빨리 미수습자를 찾아야 하는 가족 입장에서 정말 감사한다. 찾아온 목사님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분들이다. 이 분들이 움직이면 많은 교인들이 미수습자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 사실 미수습자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분들이 얼마 없는 실정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뛰기보다 목사님들이 나서 주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는 생각이다.”
문득 교계 인사들의 방문이 보여주기식 행보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한 건 물론 고무적인 일이지만, 교계 인사들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 즉 세월호 인양과 이를 통한 진상규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씨는 낙관적인 입장이다.
“지난 8월 안산시 복음화 대성회가 열렸던 안산제일교회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를 만났다. 이 목사를 만나기 전, 시간이 없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고 해서 미수습자 조은화 양 엄마인 이금희 씨가 편지를 써서 이 목사에게 전달했다. 편지엔 지금 광화문 광장에선 미수습자의 귀환을 기원하는 전시회 ‘다시 만나고픈 <그리움전>’이 열리는데, 이곳을 찾아줬으면 하는 내용을 적기도 했다. 이후 다시 만나리라 생각은 못했다. 그러나 바로 답신이 왔고, 광화문 광장에서 이 목사를 다시 만나게 됐다. 이때 희미하게나마 수습되지 못한 아이들을 찾는데 희망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고 감사했다.”
“그 뒤로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한 번은 지인으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자체 발행하는 신문에 이 목사가 미수습자를 위해 기도하고, 또 신도들에게 이 내용을 알린다는 소식이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엔 성도들이 많다. 이들에게 미수습자 문제를 일깨워 주는 건 큰 파장이라고 생각한다. 성도들이 삶의 현장으로 나가 미수습자 문제를 말할 수도 있으니까.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이 더 힘들어
▲박은미 씨는 건강이 좋지 않다. 그러나 다윤이를 생각하며 시위에 나선다. 박 씨를 힘들게 하는 건 사람들의 무관심이다. ⓒ사진=지유석 기자 |
박 씨는 건강이 좋지 않다. 참사를 겪기 전 ‘신경섬유종’ 진단을 받은 데다, 참사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로 오른쪽 귀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다. 신앙생활 역시 이어나가기 어려운 지경이다. 그러나 박 씨를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참사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다. 그러나 부모들의 시간은 여전히 2014년 4월16일에 멈춰 있다. 참사 직후 3일 동안 아이 살려 달라 흐느꼈다. 이제는 아이를 찾아 달라고 외치며 지금 이날까지 길거리를 배회한다. 참 힘든 일이다. 사람이니까 당연하다. 그러나 아이 수습 이외의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프면 아픈 대로,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움직여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없을 때 너무 좌절이 된다.”
“신앙생활도 그렇다. 수색 종료 후 돌아왔는데, 그동안 출석했던 교회에 몇 번 가봤을 뿐이다. 다윤이가 앉았던 자리가 생각나 많이 힘들었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도 고역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게 가장 힘들었다. 앉아라도 있다가 오려고 하는데 그마저도 못하겠다. 지금은 아는 목사님들이 간담회를 주선해 주고,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고 짧게 발언하며 신앙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어려운 와중임에도 박 씨는 믿음만은 놓지 않고 있다. 지금 붙잡고 있는 말씀이 무엇인지 물었다. 박 씨는 오로지 말씀 한 구절에만 의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모든 신앙인들에게 한 가지를 신신당부했다.
“참사 직후 진도 체육관에서 다윤이를 찾으면서 기도했다. ‘다윤이의 생명이 꺼져갈 때 주님도 함께 계셨을 텐데, 다윤이 찾을 때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고. 지금은 아침에 눈 떠 일어날 때나 밥 먹을 때나 이 말씀 붙잡고 딱 한 마디 기도만 드린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는 말씀이다. 간절히 기도하다보면 이내 마음 가운데 ‘내가 길이잖니’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읽혀진다.”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미수습자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알려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