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100회 총회 총평] 한 세기 맞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시대마다 예언자적 사명 감당…‘기장성’ 회복 숙제

▲14일(월) 오후 강원도 원주시 영강교회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제100회 총회 개회예배에서 제99회 총회장인 황용대 목사(가운데)가 십자가를 앞세우고 입장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2015년은 한국 장로교단에겐 10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다. 그러나 장로교단의 현실은 마냥 100주년을 기념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장로교단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 현재 200여개 교단이 난립하는 상태다. 분열도 분열이지만 성추행, 공금횡령, 논문 표절 등 목회자들의 도덕 불감증은 위험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장 최부옥 목사)라고 예외는 아니다. 여타 장로교단에 비해 구설수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최근 교단 안팎에서 길을 잃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기장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자. 기장 교단의 출발점은 1953년 호헌총회다.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성서의 문자적 무오설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장공 김재준 목사(1901~1987)를 제명하려 했고, 이러자 기장이 분리돼 나온 것이다. 
기장은 새 역사를 시작하면서 1) 바리새주의 배격, 2) 신앙양심의 자유, 3) 자립자조의 정신 함양, 4) 세계교회와 협력 병진을 기치로 내걸었다. 사회 선교에도 앞장서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1972년 유신체제 선포, 1980년 5.18 광주 민주항쟁,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등 시대적 격변기마다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왔다.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은 민간 통일운동의 물꼬를 튼 사건으로 아직까지 회자되는 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 지난 8월 남북 군사대치 등 기장은 줄곧 한국 사회에 팽배한 부조리에 민감하게 반응해 오고 있다. 
▲14일(월) 오후 강원도 원주시 영강교회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제100회 총회 개회예배에서 이문숙 목사(가운데)가 십자가를 앞세우고 입장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14일(월) 오후 강원도 원주시 영강교회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제100회 총회 개회예배가 봉헌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기장은 교단 정체성, 이른바 ‘기장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지난 해 11월 한신대학교 대학원생이 채플 시간에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했다가 한 바탕 논란이 인 바 있었다. 당시 설교를 맡았던 모 목사는 학교 측에 해당 학생의 지도를 의뢰했고, 채플 담당 교수는 해당 학생에게 기도 말미에 민중의 이름을 언급한 의도와 구원관을 물었다. 이 과정에서 학교 측 관계자가 해당 학생에게 욕설을 하는 일도 불거졌다. 
이에 대해 이 학교 민중신학회 학생들은 “학교 측이 다양한 신앙고백을 존중하지 못하고 신앙검열까지 하려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사건은 당사자가 화해하면서 일단락 됐지만, 많은 이들이 ‘민중신학의 요람’이라고 불렸던 한신대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진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장, 100회 맞아 ‘기억’ 화두로 꺼내 
기장은 이런 분위기를 의식 한 듯 제100회 총회를 맞아 ‘기억’을 화두로 꺼내 들었다. 제99회 총회장인 황용대 목사가 포문을 열었다. 
▲강원도 원주시 영강교회에서 진행 중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제100회 총회. ⓒ사진=지유석 기자
▲14일(월) 오후 강원도 원주시 영강교회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제100회 총회 개회예배에서 언약궤 예식이 열렸다. 언약궤엔 호헌선언서, 신앙고백서, 선교정책지팀서, 사회선언지침서, 교회교육정책지침서, 제5문서, 희년 문서 등 기장 교단 주요문서가 담겼다. ⓒ사진=지유석 기자
 
황 목사는 14일(월) 오후 강원도 원주시 영강교회에서 열린 제100회 총회 개회예배 설교를 통해 “기장교단의 출발은 교권, 율법주의, 교리 같은 복음이 아닌 것이 지배하는 교회로부터 복음적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역사 속에, 삶 속에 ‘육화’하는 성육신적 교회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치열하게 싸우며 노력해 왔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에 출애굽을 기억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성만찬에 주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하듯이 우리 교단 정체성을 재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구약의 예언자의 전통을 이어가며 생태위기, 국가의 분단, 교회의 타락, 사회의 양극화, 이주민 인권 문제 등 현실 앞에 치열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기장 교단이 안고 있는 고민에 대한 고백도 이어졌다. 장공 김재준 목사의 제자인 김수배 목사는 ‘열방은 네 빛으로 나아오리라’는 제목의 선교 증언에서 아래와 같이 참회했다. 
“당장 우리는 가슴 저린 참회의 고백으로 100회 총회를 맞이한다. 기장은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과감하게 세상으로 돌진했지만, 어느새 우리 자신도 사악한 세파에 물들고 말았다. 기장은 교권주의를 타파하려 했지만 교권만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애정까지 내다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염려하고 있다. 기장은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예언자의 길을 선택했지만 타인의 불의에는 엄격하면서 정작 내 안의 불의에는 관대했다. 예언자는 자신에게 보다 냉혹한 잣대를 적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장은 죄인을 밖에서만 찾음으로써 스스로 자기 의에 갇혀 버렸다. 결국 기장성이 뒤틀려버렸다. 이런 모습으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신 개념의 21세기를 맞이했다.”
100회 총회를 이끌게 된 신임 최부옥 총회장(양무리교회)도 “기장이 기댈 곳은 성서와 교회의 본질”이라며 “우리의 관심사는 규모가 아니라 얼마나 의롭고 세상에 필요한 교회가 되는가이다. 교세가 미약하다는 열등감에 빠지면 우리가 가진 것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다. 가장 교회다운 모습을 되찾고 내부 역량 재고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소수자 기각, 종교인 과세 찬성 
그러나 기장은 여전히 냉탕온탕을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먼저 성소수자 문제를 보자. 이 문제는 한국교회, 특히 보수 교단들이 온 역량을 쏟아 붓다시피 하는 쟁점이다. 기장 교단도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차이로 큰 갈등을 겪고 있다. 특별히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과 지난 6월에 진행된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혼란의 크기를 그대로 보여줬다. 또한 그 갈등의 중심에 한국기독교총연합과 한국장로총연합회, 한국교회연합 등 한국교회가 있었다”고 현실을 인정했다. 
이에 기장은 “성소수자에 관한 다양한 신학적·사회적 입장과 연구결과를 검토하고 우리사회 곳곳과 교회 내에서 발생한, 또는 발생할 수 있는 사례 연구,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목회 관점 형성을 위한 것”이라며 <성소수자 목회지침> 마련해 달라는 안건을 총회에 제출했다. 투표 결과 이 안건은 부결됐다. 해당 안건을 마련한 교단 산하 교회와사회위원회(교사위) 김경호 위원장(들꽃향린교회)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선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될 때 까지 기다리자는 여론이 대세였다고 본다”고 회의장 분위기를 전했다. 또 총회가 100회를 맞아 심혈을 기울였던 「제100회 총회 기념문서: 교회를 교회답게」(제7 문서) 역시 ‘-아닙니다’는 종결어미가 부정적 인상을 준다며 채택을 유보시켰다. 
반면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또 다른 화두인 ‘종교인 과세’에 대해선 찬성 입장을 보였다. 교사위 소위원회는 총회에 “종교인 납세에 대한 신학적·실증법적 검토 결과와 종교인 납세에 관한 사회적 여론 및 그에 따른 정부 시행의지, 시행시기 촉박함(1년 유예) 등을 감안할 때, 교단 입장을 ‘종교인 납세 찬성’(근로소득세 납부)으로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연구결과를 냈고, 이를 총회가 통과시킨 것이다. 종교인 과세에 대한 기장의 찬성입장은 장로교단으로서는 처음이고 개신교단 전체로는 대한성공회 다음이어서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 주요 일간지들이 다룰 정도로 반향이 컸다. 
▲14일(월) 오후 강원도 원주시 영강교회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제100회 총회 개회예배에서 성찬예식이 거행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14일(월) 오후 강원도 원주시 영강교회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제100회 총회 개회예배에서 성찬예식이 거행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이제 결론이다. 기장이 걸어온 한 세기, 특히 현대 정치사의 암흑기였던 1970년대와 80년대 기장의 존재는 한국 사회에 빛과 소금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100주년을 맞는 기장의 현주소는 딱히 그렇다고 하기 애매하다.
지금 한국사회는 정의에 목마르다. 그래서 세속적인 성공과 물질적인 복만 설파하는 교회가 아닌, 아프고, 억눌려 슬퍼하는 약자들이 쉴 수 있는 교회를 원한다. 기장 교단이 처음의 마음을 다잡고 세상이 원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할 때 비로소 100주년은 참 의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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