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임원회와 정치부 임원회가 로마 가톨릭 이단성 공포 안건을 맡기로 했다.”
종교개혁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난 9월 셋째 주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열렸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총회장 박무용) 교단의 제100회 총회 결의사안이다. 총회장에서는 “가톨릭이 이단도 아니고 이교”라는 원색적인 주장마저 불거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뜬금없다. 이를 보는 다른 목회자들도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한 교계 인터넷 매체엔 예장합동의 어처구니없는 결의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기사가 연일 올라와 논란이 한창이다. 이런 반응 역시 뜬금없기는 마찬가지다. 시쳇말로 ‘유머를 다큐로 받는’ 꼴이기 때문이다.
먼저 예장합동 교단이 가톨릭에 대해 원색적인 공세를 취하는 원인부터 살펴보자. 이 교단 소속 목사들 중 다수는 이것이 신학적 통찰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즉, 치열한 신학적 고민의 결과로 가톨릭에 대해 ‘이단’이니 ‘이교’ 운운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들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근본적인 원인은 집안단속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예장합동 교단은 ‘장자교단’이라는 약간의 망상 섞인 자부심에 충만하다. 달리 장자교단이 아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교세를 지녔기에 장자교단으로 자부하는 것이다. 문제는 교인 이탈 현상이 예장합동 교단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데 있다.
총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 교단의 교인수는 2014년 기준 전년 대비 13만 여 명이 줄어들었다. 2014년 통계에서도 교인 수는 전년 대비 13만 7,000여 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연속 감소세여서 조짐은 심상치 않다. 다른 장로교단과 비교해 보아도 예장합동 교단의 감소세는 뚜렷하다. 예장통합은 1,619명 감소로 감소세가 가장 적었고, 고신이 8,315명, 기장 7,898명, 합신 2,347명으로 예장합동 교단 감소세 비해 1/10 수준에 불과하다.
▲예장합동 제100회 총회 전경. ⓒ사진제공=공동취재단 |
예장합동 교단의 교세 위축 현상은 자업자득일 것이다. 교회는 물론 사회에서도 쉽게 용납되지 않는 범죄행각이 예장합동 소속 목사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성추문, 그리고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각종 비리다. 목동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도 빼놓을 수 없다. 목사들의 비리가 불거져 교회가 지탄을 받음에도 교단 수뇌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전 목사의 추문에 대해서는 총회장이 “덕이 안 된다”며 어물쩍 덮고 넘어가려는 행태를 보이기까지 했다. 이번 총회에서도 전 목사-오 목사 건에 대해 이렇다 할 해법은 내지 못했다. 전 목사 건은 아예 총회 헌의안으로 상정도 되지 않았다. 일반 시민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할까?
가톨릭, 내부개혁으로 시대의 파고 넘어
가톨릭은 2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교세에 관한 한 가톨릭에 필적할 종교는 이슬람이 유일하다. 가톨릭은 지난 역사를 통해 수많은 죄악을 자행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죄악에도 가톨릭이 2천 년에 이르도록 교세를 유지하며 사실상의 세계 정부로 군림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답은 내부개혁이다.
가톨릭은 시대의 중요한 변곡점에서마다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사례를 찾으려 역사를 뒤져볼 필요도 없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종이 산 증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가톨릭의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아르헨티나와 예수회, 그리고 이민자의 후손. 아마 가톨릭 역사상 이렇게 변방성을 고루 갖춘 교종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재임 당시 사제들의 성추문, 기밀문서 유출, 바티칸 은행 비리 등으로 가톨릭은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베네딕토 16세는 사상 초유의 전임교황이라는 선례를 남기며 과감히 물러섰다. 그리고 변방의 인물인 베르골리오 추기경을 교종으로 세운 것이다.
가톨릭의 이단성을 따진다는 예장합동 교단 목회자들이 내부개혁을 위해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였을까? 전 목사 사건 하나 제대로 해결 못하고 폭탄 떠넘기기 식으로 하회인 평양노회로 면직안을 내려 보낸 사람들이 무슨 낯으로 개신교의 모태가 된 가톨릭에 대해 어찌 감히 이단 운운할까?
그동안 접해온 예장합동 목사들은 몇몇 중요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한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정치에 더 예민했다. 가톨릭에 대한 이단 정죄 역시 정치적인 행보다. 즉, 십자가에 못 박히는 심정으로 내부 개혁을 이루기보다, 손쉽게 가톨릭을 악마화해서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악마를 이렇게 규정했다.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이런 게 바로 악마야 !”
가톨릭의 이단성을 심사한다는 예장합동 교단이 혹시 자신들에게서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