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교회…생명과 사랑을 주는 더 큰 몸”

캐서린 제퍼츠 쇼리 미국성공회 의장 주교

[편집자 주] 캐서린 제퍼츠 쇼리 미국성공회(ECUSA) 의장주교가 내한해 10월4일(일) 오전 서울 정동 주교좌성당에서 열린 감사성찬례에서 말씀을 전했다. 쇼리 의장주교는 말씀을 통해 “결혼은 코뮤니언, 즉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하느님과 교회의 관계를 드러내는 상징”이라면서 “예수님께서는 아기가 젖을 달라고 하듯이, 화해에 배고파하고 목말라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쇼리 의장주교는 세계성공회 500년 사상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성공회 수장으로 선출된 성직자로, 그의 방한은 대한성공회 선교 125주년에 맞춰 이뤄졌다. 다음은 쇼리 의장주교의 설교 전문이다. 
▲대한성공회 선교 1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한 미국성공회 캐서린 제퍼츠 쇼리 의장주교(가운데)가 10월4일(일) 오전 서울 정동 주교좌성당에서 열린 감사성찬례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오른쪽은 통역을 맡은 주교좌성당 주낙현 신부.ⓒ사진제공= 서울 정동 주교좌성당

최근에 파키스탄의 관구장 주교님께서는 그곳에서 겪는 교회의 어려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종교적인 탄압과 폭력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는데, 종교 차별 가운데 하나는 정부가 그리스도인들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파키스탄 신자들이 이혼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딱 하나인데, 여성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거나, 배우자가 상대방을 간음죄로 고발하면 됩니다. 어떤 경우든 한쪽은 거짓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인을 여럿 두고 있는 이슬람교도 남편을 둔 아내는 이혼할 경우 원조를 받을 수 없고, 실제로는 남편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 한 이혼할 수도 없습니다.   
이혼은 인간 공동체에 말할 수 없는 오랜 고통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 짐은 대부분 여성이 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서에서 말하는 결혼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아주 다릅니다. 성서가 말하는 결혼은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재산인 딸을 남편에게로 이전하는 소유권 이전과 같습니다. 그래서 일부다처체가 허용되었고, 유대교에서는 예수님 시대 이후에도 일부다처제가 계속되었습니다. 유대교 율법에서는 남편은 간단한 보상으로 아내와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혼을 안 좋게 보았습니다. 특별히 교회 지도자의 이혼을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있었습니다. 로마법에서는 여성도 남성처럼 이혼을 청구할 수 있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이나 어린이는 대체로 재산이었습니다. 아직도 어떤 곳에서는 그렇지요. 성서에 보면 남편은 아내를 내버릴 수도 있고, 다른 여자를 아내로 삼을 수도 있고, 다른 남편의 아내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바세바를 빼앗고는 우리야가 죽도록 계획을 짜기도 했습니다. 끔찍한 이야기는 판관기에도 나옵니다. 지금의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비슷한 무뢰배가 문 앞에 나타나자, 기브아 사람이 주인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고 자기 딸과 손님의 아내를 제공하면서 벌어진 일이지요. 여성과 아내들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재산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내다 버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혼에 관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이혼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마음이 굳어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은 결혼한 상대자를 언제든지 내다 버릴 수 있다는 태도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 깊고 친밀한 동반자 관계를 맺을 때 그들은 하나가 됩니다. 이별은 죽음과도 같습니다. 편의주의적 입장에서는 인간을 언제나 대치 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하셨다는 생각에 어긋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간단하게 포기해버린다면, 하느님의 선물을 내다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욥도 같은 상황입니다. 욥의 아내는 하느님을 저주하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관계를 끊어버려라. 지금 당장 당신한테 도움이 될 게 하나도 없지 않으냐?”고 말이죠. 그러나 욥은 요지부동입니다. 그는 그 관계를 끝까지 지킵니다. 하느님께서 합하신 것은, 그 누구도 떼어놓지 못합니다.   
복음서는 이혼 이야기에서 곧바로 어린이로 넘어갑니다. 이혼한 부모 때문에 아이들의 고통이 크다는 뜻을 전하시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이 필요한 어린이와 같다는 뜻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측은지심이 없는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이혼 문제도 시끄러운 어린이 같은 일로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잠깐 멈추라”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런 작은 어린이와 같이 의지처가 필요하고 배고픈 사람들의 것이다.” 측은지심은 예수님의 선교와 메시지의 핵심이었습니다. 판단하지 말고,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서로 사랑하여라. 원수를 사랑하여라.
우리는 바리사이파와 제자들처럼 늘 법과 규칙을 두고 논쟁합니다. 하느님은 아십니다. 교회는 늘 규칙과 규정을 만들어내느라 온갖 에너지를 다 써버린다는 것을요. 세계 성공회 주교회의인 람베스회의에서는 이혼 문제를 두고 오래도록 논쟁하고 토론했습니다. 1888년 람베스회의에서는 간음이나 간통이 아니고서는 이혼은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혼을 제기한 사람은 나중에 교회에서 재혼할 수 없다고 정했습니다. 성직자는 재혼하려는 신자에게 성사를 거부할 권한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주교들은 또 여러 아내를 둔 일부다처 남편은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 아내들은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말 놀라운 것은, 같은 람베스회의에서 상호상통 문제, 다시 말해서 다른 교파 교회들과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지를 두고 많은 결의안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결혼은 코뮤니언, 즉 깊은 상호교제를 뜻합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하느님과 교회의 관계를 드러내는 상징과 같습니다. 그것은 또한 세계 성공회 안에서 모든 교회가 누리는 관계를 드러내는 상징과 같습니다. 친밀하고도 연약한 공동체에서 그들의 관계는 용서와 화해여야 합니다. 그래서 좀 더 새롭고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기가 젖을 달라고 하듯이, 화해에 배고파하고 목말라하기를 바라십니다.   
모든 인간은 결혼만이 아니라, 교회나 친구, 동료 사이에 신실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싸웁니다. UN에서는 중동의 이민자들과 폭력 등과 같은 갈등 속에서도 새로운 관계를 마련하고자 헌신합니다. 옳은 일을 하고 싶어도, 바울로 성인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 몸은 늘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핑계를 찾기에 바쁩니다. 이것은 연약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깨지고 내버린 관계는 어린이들에게는 고통일 뿐입니다. 이혼한 부모나, 전쟁으로 어려워진 국가만을 탓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를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형제자매요, 서로 보살펴야 합니다. 우리에게 타인은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고 위협하는 관계를 잠시 내버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 우리는 삶은 하나로 다시 묶여야 합니다.   
결혼은 그리스도의 몸속에 마련된 관계를 드러내는 아이콘입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연약하게 되어서 이 몸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종종 절망하고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당신의 배우자처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은 너그러워서 배타적인 사랑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사랑은 자라나서 그분의 몸 전체를 감싸 안아야 합니다. 그분께서 목숨을 내어놓으신 친구들의 공동체 전체, 하느님의 창조 전체인 몸을 껴안아야 합니다.   
인간은 항상 사랑을 좁게 만들려고 합니다. 사회나 정치, 다른 교회나 종교에 대해서 담을 쌓고 자기로만 모이려고 합니다. “아, 그 사람들은 우리처럼 충분히 거룩한 사람들이 아니잖아!” 하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눈을 돌려 몸 전체를 보도록 하십니다. 다른 몸 일부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엄마의 젖이 고픈 아기처럼, 우리는 생명을 주는 더 큰 몸을 늘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많은 사람은 이제 결혼에 관한 신학적인 이해에 다다라서, 부서진 인간의 관계를 깨닫고 화해를 찾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결혼의 인연이 다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아파하고 슬퍼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면, 그런 상황 속에서도 배우자들은 각각 새로운 삶의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지상의 결혼은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더 좋은 관계를 위해서 끝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리스도와 깊은 연대 속에 있다고 믿는 사람은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절대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인 것을 아는 사람은 언제라도 생명과 사랑의 궁극적인 원천을 찾아 돌아올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 프란시스 축일입니다. 그분은 독신으로 사신 분이지만,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결혼처럼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아파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잊혀진 사람들, 그리고 하느님의 창조 세계를 향해 연민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처럼, 프란시스 성인은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여러분의 약속을 지키겠습니까? 여러분의 생명과 사랑을 이 전체인 몸에 헌신하겠습니까?   
[통역 및 번역: 주낙현 신부 / 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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