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양심과 사상을 통제하겠다고?

박찬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편집자 주]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한데 대해 공분이 거세다. 특히 대학 강단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학자들이 잇달아 집필 거부 선언을 하고 나섰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 전원이 10월13일(화) 집필을 거부한데 이어 14일(수)엔 경희대, 고려대 사학과 교수들이 대열에 동참했다. 학생들도 적극적이다. 이에 대해 박찬희 서울신학대교수(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둥교회 담임목사)는 시론을 통해 “어용학자들이 침을 흘리며 자리를 탐하는 이 참담한 현실에서, 그나마 올곧은 학자들과 학생들이 ‘차라리 내 목을 자르라’고 외치는 소리에 감동한다”며 지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양심을 지키고 나의 사상이 그 어떤 자들에 의해서도 침탈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내달릴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박 교수의 동의를 얻어 시론 전문을 싣는다. 
▲박찬희 서울신대 교수(가운데)가 지난해 10월 30일 “세월호의 아픔에 참여하는 이 땅의 신학자들”의 긴급 기자회견에서 한국교회에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지유석 기자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 직후 북한이 헌법과 교과서를 주체사상으로 도배질하여 통제하기 시작했을 때, 남한은 유신헌법과 국정교과서로 양심과 사상을 통제했다.  
일제의 사냥개로 멸사봉공하다가 시류가 바뀌니 남로당의 끄나풀로 눈치를 보다가 얼굴색을 바꾼 팔색조,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고 유신헌법과 국정교과서로 국민을 농단하며 서슬 퍼런 독재로 백성을 억압한 무리들의 후예들이, 소위 뉴라이트 학자들로 집필진을 구성하여 교학사 교과서를 제작하여 밀어붙이다가 채택률이 제로에 가깝게 무시되자 참을 수 없었다. 감히 어명을 민초 나부랭이들이 거부하다니!   
그들이 전가의 보도로 휘둘러 대는 것이 소위 ‘자유민주주의’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만의 자유일 뿐, 애초에 국민의 비판과 견제의 자유는 통용될 수 없는 불경이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빨갱이의 짓으로 왜곡하고 조작하고 매도한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 만을 위한 자유’로 국민을 억압/통제/획일화했던 봉건왕조, 제3공화국의 자식임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몸뚱이에 흐르는 가계에서 이어진 친일과 독재의 피를 합리화하기 위해 그들이 표방하는 소위 ‘자유민주주의’는 극우로 경도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말이다!   
교학사 교과서 실패로 얻은 그들의 교훈은 이제 힘으로 밀어붙여야 할 이유가 되었다. 막대기를 세워도 당선될 막강한 편향성에 기대어 소위 ‘자유민주주의’를 독재자의 ‘한국적민주주의’로 재생산하려는 것이다. 박정희의 ‘10월 유신’이 박근혜의 ‘10월 유신’으로 재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다면서, 학문과 문화, 양심과 사상을, 역사기술과 해석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 국정교과서 시도의 본질이다. 이것은 저들이 내거는 구호가 자유와는 거리가 먼 파쇼의 쿠데타로서, 그들의 구호가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명백히 보여준다.  
자유민주주의는 시장경제를 표방한다. 시장경제는 독과점을 용인하지 않는다. 품질과 가격의 자유경쟁이 보장된다. 시장에는 전라도 산도 있고 경상도 산도 있다. 선택은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소비자에게는 양질의 제품을 고를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생산한 제품만을 진열하라 한다. 그것만 사라 한다. 생산자도, 상인도, 소비자도 모두 죽이겠다는 것 아닌가? 이 어찌 생명의 정부라 하겠는가? 죽임의 정부 아닌가? 소위 ‘제3제국’의 히틀러는 아리안 편향으로 수백만 유태인, 아르메니아인, 폴란드인, 집시들을 죽였다. 오직 아리안만을 위해! ‘올바른 교과서’라고? 죽이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 올바름이라는 잣대는 누가 만드는 것이냐? 
학문의 자유에 기초한 각기 다른 사관과 그에 수반되는 해석의 독점은 곧 전체주의다. 양심과 사상이 통제되는 사회 말이다. 국가가 국민의 양심과 사상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 국가에게는 그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의무밖에는 없다. 다양한 학자들의 양심과 사상에 기초하여 나온 다양한 교과서를 선택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국민의 권리다. 국가는 이 권리를 빼앗을 권한이 없다. 만약 국가가 획일화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강요하고 그 권한을 빼앗는다면 그 국가는 독재국가다. 독재는 타도되어야 한다. 이것이 헌법의 정신이다.   
교과서를 만든다면서 대다수 학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이 판을 나는 개판이라 부르겠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 아닌가? 역사학자들을 배제하고 정치가 역사를 다시 쓰겠다고 하는 이 웃지도 못할 판을 어찌 개판이라 하지 않겠는가? 소위 ‘제3공화국’ 때 유행했던 해외토픽감이다. 망신도 이만저만한 국제망신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인간의 정신을 때려잡기로 작정한 백정들이 아니고서야 어찌 인간의 양심과 사상을 도려내고 거짓과 왜곡으로 채우려 한단 말인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친일과 독재를 합리화하고 미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그들이 영생하는 길이니까!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여 한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조선의 양심과 사상을 개조하여 자기식으로 획일화하는 것, 그래서 내선일체를 표방하며 황국신민의 서사를 외우게 하고. 창씨개명과 동방요배, 일본어 사용을 강요했다. 봉건조선을 근대화한 것이 자기들이라고! 소위 ‘황국의 신민’으로서 동양평화를 위해 멸사봉공하라고! 오직 하나만 강요된 역사가 아니었던가?   
오늘의 친일파들은 그 때를 다시 그리고 영원히 복원하고자 획책하고 있다. 다양한 인간의 양심과 사상을 빼앗아버리고, 규정되고 제시된 사고만 가지라고 강요함으로써 국민의 권리를 도둑질하는 정권, 이 정권은 도둑놈의 정권이다. 빌어먹을 아베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은 너희들의 레토릭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도둑놈은 도둑놈이 알아본다!   
일제가 단발령을 내렸을 때, 최익현 선생은 상투를 자르느니 내 목을 자르라고 버텼다. 최익현 선생에게 있어서 상투는 조선 사람의 삶의 방식이었고 조선의 정신이었다. 지금 이 정부는 국민의 상투 끝에 올라앉아 양심과 사상의 목을 자르려 한다. 일제로부터 배워먹은 대로 그들은 철저히 전체주의의 칼을 들이대고 있다.   
얼빠진 먹물들, 어용학자들이 침을 흘리며 자리를 탐하는 이 참담한 현실에서, 그나마 올곧은 학자들과 학생들이 ‘차라리 내 목을 자르라’고 외치는 소리에 감동한다. 나는 그들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며 그들과 한자리에 있겠다. 이 간악한 정권이 획책하는 전체주의로의 회귀를 막지 않으면 이 나라에 미래는 없다. 모두가 어깨 걸고 연대하여 불한당의 준동을 봉쇄해야 한다. 잡놈들이 판치는 세상을 어찌 두고 보겠는가? 어용을 강단에서 몰아내야 한다. 전체주의의 망령을 척결해야 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최익현 선생이, 김구 주석이, 김원봉 선생이, 홍범도 장군이 그랬듯이 저항해야 한다. 불학무식한 자들의 탐욕이 뻔히 보이지 않는가? 오만방자한 것들이 천년만년 상투를 틀어쥐겠다는 것이 명약관화 아닌가? 아닌 것은 아니다. 아닌 것에 굽히면 그것이 바로 굴종이다.   
저항하라! 아니라고 말하라! 당신의 양심이 소리치지 않는가? 나는 나의 양심을 지킬 것이다. 나의 사상이 그 어떤 자들에 의해서도 침탈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내달릴 것이다. 나의 양심과 사상을 통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감히 백성의 양심과 사상을 주무르려 한다면 그 정권은 백성의 양심과 사상에 의해 단호히 심판받아야 한다.   
맹자는 말했다. 諸侯危社稷 則變置(孟子, 盡心章句下 十四14章), 무슨 말인고 하니,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갈아치우라는 것이다. 역사를 변개하여 나라의 양심과 사상을 위태롭게 하면, 임시정부로부터 이어오는 대한민국 헌법이 제시하는 법통을 위해하는 것이다. 헌법을 위해하는 것은 헌법과 그 법의 주인에 대한 반란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9조에서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또한 헌법 제22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사상은 곧 그것을 가진 자의 양심이다. 헌법은 그 누구도 그 어떤 세력도 한 개인의 양심과 사상을 침해할 수 없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헌법을 지켜라!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자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동일한 의견이고, 그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갖는다고 해도, 인류에게는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이는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전 인류를 침묵하게 할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양성을 인정하라! 학문의 양심과 사상을 독점하려하지 마라. 역사의 정통성을 훼파하지 마라!  
이 나라가 어떻게 지켜져 왔는가? 독립운동의 선혈이, 반독재 민주화의 피가 이 나라를 살려오지 않았는가? 친일과 독재의 망령이 이 땅을 유린하고 있다.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의 한 서린 미루나무를 아는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반독재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미처 이루지 못하고 스러져간 한이 서려 앙상하게 서있지 않은가? 오늘 앙상하게 남은 독립의 가지가, 민주의 잎사귀들이 고사되기 전에, 지키고 살려내야 한다. 물이 필요하다며 물로써, 피가 필요하다면 피로써라도, 선대의 양심이 그러했듯이, 양심과 사상이 자유롭게 통용되는 세상을 위해 기꺼이 맞서야 하지 않겠는가?   
동포여! 벗이여! 당신의 양심과 사상을 이리와 승냥이들에게 넘겨줄 것인가? 나는 결코 그리할 수 없다. 나는 나의 양심과 사상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사람이다. 나의 양심과 사상은 천부의 선물이다. 지켜내야 할 신의 형상이다. 권리이다. 양심과 사상을 적출당한 허수아비로 살지 않겠다! 빌어먹고 산다 해도 내 양심과 내 사상에 따라 살 것이다. 내 자식들이 양심과 사상이 도려내진 채 노예로 살아가게 되도록 이대로 놓아둘 수는 없다.   
※ 외부 기고자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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