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길희성 명예교수는 동서 철학과 종교학을 동시에 연구하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저술을 낸, 한국 학계에서 보기 드문 학문적 성취를 이룬 학자로 꼽힌다. 한국 학계는 그의 성과를 높이 사 지난 2009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하기도 했다. 길 교수는 최근 무척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냈다. 이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기존 신학계의 통설을 뒤흔드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본지는 길 명예교수와 만나 최근 화제를 놓고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대한민국학술 회원인 서강대 길희성 명예교수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
Q: 『아직도 교회 다니십니까?』의 내용은 사뭇 신랄하다. 지난 6월 북토크에서도 한국교회가 불량품을 팔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후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길희성 명예교수(이하 길 명예교수): 책을 읽어본 사람들로부터는 대부분 반응이 좋았다. 책을 선물해주는 독자도 있었다. 부정적 반응이나 비판은 별로 듣지 못했는데, 아마도 비판적 견해를 가질만한 사람들은 책의 제목 때문에 읽지 않거나, 읽어보려는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Q: 이 책에서 “하나님은 결코 기독교의 전유물일 수 없다”고 적었다.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도 예수 자신은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좀 더 부연설명을 해 달라.
길 명예교수: 하나님이 ‘기독교’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역사가 기독교 신자들에게만 국한된다는 생각은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결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문제는 구원의 주 하나님의 역사가 기독교 신자들에게만 주어진다는 배타적 신앙에 있다. 나는 우주만물의 전개와 인류의 역사 전체가 하나님의 보편적 섭리와 계시와 구원의 과정이라고 믿는다. 그 가운데서도 인류의 종교사 전체가 특별히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이고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는 구원의 통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동일하다거나 각 종교가 믿는 계시의 내용이 동일하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특수하고 특별한 계시를 믿는 그리스도교 신자다. 그리고 바로 예수님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배타적이지 않고 보편적이라고 믿는다.
Q: 한국교회에 값싼 은혜가 넘쳐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이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대속신앙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대속이 아닌 ‘대신 고통당한다’는 의미의 대고(代苦)신앙을 제시했는데,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에서 이탈한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더해 한국교회의 배타성은 비기독교신자들이 먼저 느끼는 것 같다. 즉, ‘아직도’ 교회에 다니는 신도들은 자신이 배타적인지 잘 느끼지 못한다.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들만의 울타리를 넘어서려면 기독교인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길희성 명예교수는 개신교의 지독한 배타성의 뿌리를 '값싼 은혜'를 남발하는 대속 교리에서 찾았다. ⓒ사진=지유석 기자 |
길 명예교수: 한국 교회, 특히 개신교의 지독한 배타성은 ‘값싼 은혜’를 남발하는 속죄의 교리를 믿는 이른바 ‘복음주의’ 신앙에 그 뿌리가 있다. 복음주의 신앙의 대전제는 인간의 죄는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길이 없다는 비관적 인간관이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수도나 수행 같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안 되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배타성이 따른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의 보편성을 믿으며, 원죄 사상과 같은 인간에 대한 지나친 부정적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도 아니고 유전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결코 세계와 인간에 본래적인 것이 아니다.
대속신앙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복음’(Gospel, good news)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관련이 있다. 나는 예수 자신이 전파하신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의 메시지가 복음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며, 죄의 용서는 거기에 종속된다고 본다. 사실, 예수님 자신의 사역이 이런 메시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예수가 보여 준 하나님은 겸손히 자기 죄를 인정하는 죄인을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지, 자신의 죽음을 대속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야만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대속 신앙을 가지고 감사와 기쁨으로 사는 경건한 복음주의자들의 신앙 자체에 대해서는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복음주의자들 일반이 가지고 있는 성서문자주의 신앙과 기복신앙, 십자가의 자기희생을 무시하는 값싼 은총, 그리고 사회역사적 의식의 결여 등이 문제인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복음주의 자체와 반드시 같이 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대고 개념으로 예수의 고난의 의미를 이해하자는 말이다. 그 성서적 근거는 구약 이사야서 53장에 나오는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최후 심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 즉, 주리고 병든 자들, 옥에 갇힌 작은 자들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라는 말씀이다.
▲길희성 교수는 『아직도 교회 다니십니까?』에 이어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에서는 신앙과 이성 사이가 낳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특히 그리스도교의 초자연주의 신관과 현대문명을 지배하는 자연주의적 무신론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자연적 초자연주의'를 주창했다고 말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
Q: 끝으로 신간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또 오는 10월22일(목)엔 연세대 신과대 기독교문화연구소의 가을학술대회에서 강연을 할 예정이라고도 들었다. 신간에 담길 내용, 그리고 강의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
길 명예교수: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가제)라는 책을 준비 중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종교철학 저서다. 예정된 강연도 이 책 내용이 중심이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 신앙을 철학적으로, 사상사적으로, 그리고 동서양의 형이상학적 전통의 관점에서 폭넓게 고찰해 보려 했다. 앞서 말했듯,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과 구원을 말하는 종교다원적 입장에서 초자연과 자연, 계시와 이성, 은총과 자연, 창조(creation)와 구원(redemption)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초자연주의 신관,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문명을 지배하고 있는 자연주의적(유물론적, 세속주의적) 무신론을 극복하는 ‘자연적 초자연주의’를 주창한다. 138억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에 걸친 ‘진화적 창조’라는 일관된 관점에서 창조와 구원, 하나님의 일반섭리와 특별섭리를 통합적으로 논한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종교계를 지배하고 있는 기복신앙을 청산하고 고전적인 형이상학적 영성의 회복을 지향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