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일본교회협의회(NCCJ)가 지난 10월15일(목)부터 17일(토)까지 “동북아시아의 평화: 일본과 한국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제9차 공동협의회를 개최했다. 지난 2004년에 이어 11년만의 만남이었다. 첫날 주제 강연에 나선 대한성공회 교무원장 유시경 신부는 이를 잃어버린 시간에 빗대며 ‘역사 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속적인 연대, 협력 부족’을 원인으로 진단했다. 이어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할 다섯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유 신부의 발제문 전문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지난 15일(목)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린 NCCK-NCCJ 공동협의회에서 발제하는 대한성공회 교무원장 유시경 신부. ⓒ사진=지유석 기자 |
1. 시작하며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사실은 한국교회와 일본교회는 이렇게 인사하면 안 되는 사이이지요. 한국과 일본의 교회는,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나누기보다는, 얼마 전에 만난 사이로 “안녕하세요? 잘 지내죠? 지난 번엔 고마웠습니다.”라고 인사할 수 있는 관계이면 좋겠습니다. 더 자주, 더 긴밀하게, 더 선교적인 협력 관계를 지니고 함께 걸어가야 할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하는데, 최근에 좀 멀리 지내왔습니다. 한일간에 왕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개별적으로 자매결연 관계를 맺은 교회나 기관이 많고, 개인적으로 다양한 교류협력 관계를 지닌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다만, 적어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일본기독교교회협의회 간의 공식적인 교류 면에서 볼 때는 한동안 긴밀한 관계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의 전체적인 상황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데, 교회의 선교적 협력 관계는 현상 유지에 머무르거나 솔직히 말하면 후퇴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한-일교회간에 “잃어버린 10년”이 있었습니다. 이번 협의회가 다시금 양국 교회간의 교류의 중심축을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제가 한일 기독교의 전반적인 상황을 이야기할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자면 일본에서 선교사로 10년간 일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 파견되어 일하기 이전부터 청년 교류로 일본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 URM회의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2000~2010년간 10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도 크고 작은 일로 한일 관계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윤동주 시인 기념사업을 작게나마 새롭게 시작한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솔직히 한계와 함께 많은 과제가 있음을 느낍니다. 우선, 성공회라는 하나의 교파에 소속해 있었고, 일본에서도 대학이라는 작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었던 만큼, 한일 교회간의 보다 폭넓은 교류와 협력을 위한 과제에 관여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 있습니다.
다만, 오늘 모처럼 오랜만에 만난 한일교회 대표자들의 자리를 빌어서, 전후 70년, 한일조약 체결 50주년이라는 시점에서 제 자신이 느끼는 장래의 한일의 과제를 포함하여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2. 한국 시민사회의 역사적 경험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류는 아무래도 일시적인 ‘붐’이었습니다. ‘붐’은 거품과 같아서, 거품이 걷히고 나면 실체가 드러납니다. 어쩌면 지금의 한일 관계는 거품이 걷히고 실체가 드러난 상태라고 보입니다. 특히 역사 인식의 범주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양국의 지금까지의 관계에서 볼 때, 양국 교회가 멀어지는 이유의 하나로 저는 역사 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속적인 연대와 협력이 부족해진 것을 들고자 합니다. 한일간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경험과 관계가 있습니다. 식민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는 지금도 역사적 상처로 양국 관계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70~80년대라는 특수한 상황을 겪으면서 얻은 역사 문제에 관한 교훈을 다시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시민사회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한 몇 단계의 해결 방식을 경험적으로 확인해 왔습니다.
2-1. 첫째는 역사적 사실관계의 확인입니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 역사적 사실 속에서 가해자(집단, 개인)는 누구였고, 피해자(집단, 개인)는 누구였던가? 이 사실 관계의 확인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확인한다는 것은, 책임을 묻는 과정입니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확인한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한국과 일본은 이 역사적 사실관계의 확인이라는 첫 번째 단계부터 잘못 단추가 끼워지고 있습니다.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확인하지 않으려는 가해자 집단과 국가, 정부의 태도로 인해 혼란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여론 몰이로 일본 사회 전반적인 추세가 마치 역사적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아전인수 식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재일한국인을 주된 타겟으로 삼아 벌어지고 있는 소위 “헤이트 스피치”의 뿌리에 바로 이와 같은 잘못된 역사 인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재일 조선 한국인의 존재 자체가 과거 제국주의 침략 역사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지우고 바꾸고 잊고자 하기에, 그들에게 또다시 십자가와 수치를 안기고 있습니다. “돌아가라!” 어디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 책임을 잊은 채, 억지로 끌고 온 이들이 ‘결자해지’의 책임을 방치하고 있음을 지적해야 합니다. 부끄럽게도, 비슷한 역사 인식의 왜곡과 폄훼라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친일파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등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국 교회의 과제이면서, 식민지 유산이라는 점에서 공통의 과제입니다.
2-2. 가해자의 확인은 필연적으로 법적 처벌을 요구합니다. 국제법으로, 국내법으로, 종교인들의 경우는 신앙의 기준으로 반인륜적 범죄, 반사회적 가해 행위에 대한 엄격한 교훈적 처벌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한 개인이나 집단을 벌한다는 의미보다는, 또 다시 그런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일본교회의 전쟁 책임 고백은 그런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선언적 고백으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계속 이어나갈 것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한국 교회의 응답이 요구됩니다. 역사적 관계는 양자가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에, 한 쪽이 고백하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한국 교회가 일본 교회의 노력에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참고로 좀 길지만 일본성공회 홋카이도교구 교역자 일동의 한국 방문에 즈음한 서신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우리들은 일본 국민이자 일본성공회의 일원으로서 한국 분들과 대한성공회 분들과의 역사를 겸허히 돌아보며 하느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일본성공회 150주년 기념 주교교서의 내용과 같이, 일본성공회는 선교 개시로부터 50년 후 <1910년의 ‘한일합병’으로 상징되듯이, 그 후의 일본은 군국주의 국가를 향해 돌진해왔습니다. (거스르기 어려운) 압도적인 시대의 흐름 속에 있기는 하였지만, 교회는 국가의 전쟁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대한 일본의 침략, 식민지화에 대해 기독교의 신앙과 복음에 근거한 명확한 이해와 자세를 갖고 발언하지도 못한 채, 한국 사람들과 교회에 많은 희생과 아픔을 강요했습니다. 또한 <재한국 원폭피폭자>, <종군위안부 여성들을 위시한 연행희생자>, <한센병 강제 격리>에 대한 전후 보상이나, 차별적 상황에 놓여온 <재일한국조선인>의 충분한 인권 확립을 향한 실천이 불충분했었기 때문에, 전후(戰後)에도 오랫동안 많은 분들에게 더욱 고난을 짊어지게 했던 점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특히 저희들이 살고 있는 홋카이도 땅에는 태평양 전쟁 기간 중 한반도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연행되어 도로, 댐, 비행장 건설, 탄광을 비롯한 여러 광산에서 채굴 등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습니다. 또한 우리들이 매일 다니는 이 곳은 멀리 떨어진 이국에서 목숨을 잃고,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수천명의 사람들, 그 숫자도 이름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의 유골이 지금도 여전히 묻혀있는 땅입니다. 그리고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강제 연행의 말로에 전쟁 후 귀국의 기회를 빼앗겨 할 수 없이 잔류하게 된 <사할린 섬>도 홋카이도의 바로 옆에 위치합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우리들 홋카이도교구의 교역자와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홋카이도 지역이 한국의 여러분들과 깊이 연관된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홋카이도 땅에 뿌리내리고 일하도록 하느님께 부름을 받은 저희들은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출애굽 3:7), “땅에서 울부짖는 소리”(창세기4:10)에 귀기울이시는 하느님으로부터 “경청의 성령”을 풍성히 받음으로 홋카이도 땅에서 하느님의 선교에 참여하고 싶다고 바라고 있습니다.
-. 2009년 10월 26일 홋카이도교구 교역자 일동 한국 방문에 즈음한 서신 중
나아가 한국 교회도 전쟁 책임 고백을 해야 합니다. 전쟁이라는 비극적 드라마 속에서 증오와 살인과 편 가르기로 특정 이데올로기를 신앙의 이름으로 지지하고 가르치고 확산했던 과오를 확인하고 반성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식민지 시대의 피해자로서 일본의 역사적 반성을 요구하는 에토스와 달리, 한국 전쟁과 그 이후의 역사 속에서 저지른 죄책에 대한 반성의 에토스가 없이는 한일관계의 진전은 어렵습니다.
2-3. 피해자 확정은 또 다른 사회적 책임과 연결됩니다. 국가가 국가 정책으로 피해를 입힌 주체인 경우 법적 배상으로 피해자의 물질적, 정신적, 사회적 피해를 보상해야만 합니다. 국가 배상과 개인 보상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민간 차원에서 한일 간에 보상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오고 있고, 결코 작다고 할 수도, 무시할 수 없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역시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국가간의 공식적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종군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원폭 피해자 문제 등등. 일부 서구 교회가 선주민에 대한 침략적 선교를 반성하고, 명예 회복과 문화 보존과 주체성 확립을 위한 갖은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 사례에 주목하고 배울 수 있습니다.
2-4. 아울러 피해자의 명예도 회복해야만 합니다. 일방적으로 주어진 오명을 씻을 수 있도록, 잘못된 역사 기술을 바로잡고, 역사적 평가를 정립해 나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작은 자 한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관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전쟁과 국가주의, 전체주의라는 광풍에 휩쓸려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수많은 이름 없는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한일의 경우, 양쪽의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최근, 홋카이도 강제징용 한국인 희생자 70년만의 귀향 행사를 한일 시민사회와 종교계가 함께 참여해서 실시했습니다. 지난 17년 동안 발굴한 분 가운데, 115구의 유해가 고향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국가도, 당시의 기업도 외면하고 부정한 역사를 종교인들과 시민들이 다시 드러낸 것입니다. 국가가 하지 않는다고, 정부가 하지 않는다고, 기업과 언론이 외면한다고 물러설 수 없는 일입니다. 회당과 산헤드린이 하지 않기에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해야 합니다.
2-5. 기억하고 반복적으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기억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추도 시설과 추도 예식, 현장 유적 보존과 기념관 등 기념시설 건립, 교과서와 여러 교육 과정을 통한 반복적 기억이 중요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역사관일 것입니다. 피해자의 시각만이 반영된 전쟁기념관, 한 쪽의 시각만을 반영한 역사박물관이 많습니다. 일본 사회가 지난 10년간 없애버린 강제 노역, 집단 학살의 기념비가 많습니다. 야스쿠니신사와 구내에 있는 유슈칸 전쟁기념박물관 입구에 가보면, 일본의 천황이 전쟁을 끝낸 주체인 것처럼 전시하고 있고,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의 사진 밑에 <공무사>라고 써 놓았습니다. 전쟁을 수행한 장본인이요, 침략 전쟁의 책임자라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승만 동상이 다시 등장하고, 박정희 기념관이 세워지고, 친일파였던 이들이 마치 역사의 당당한 공로자인 양 부활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일본도 한국도 과거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국가와 민중을 이루 말하기 어려운 고난과 고통으로 끌고 갔던 이들이 쇄신되기는 커녕 여전히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시 역사 청산이 필요하고, 종교인들의 쇄신이 먼저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정리해야 합니다. 지금 한일 양국 교회의 과제 가운데, 과거사의 정리를 위한 치열한 노력이 시급하고, 그 노력이 10년 50년 뒤의 역사를 만드는 현재의 역사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