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베리타스 |
길 교수는 한국 기독교의 반지성주의적 풍토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성서문자주의와 “오직”주의(sola-ism) 그리고 기적을 바라는 기복신앙 등이 이성을 방기하는 사태를 초래했고, 그 결과 “아직도 교회에 다니십니까?”라는 자조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 정황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어 “이성은 신성하다”라고 선언하면서 그 이성이 본래적 가치를 회복할 때 신앙의 풍토도 정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피력했다.
현대문명의 병폐 또한 이성의 본질 상실, 혹은 도구화로 인해 초래되었기 때문에 “세속화된” 이성이 다시 그 존재론적 뿌리와 신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신앙과 이성의 화해를 유도하면 현대 문명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뿌리의 회복이라고 해서 전통적 관념의 복구를 의도하는 것은 아니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이성주의도 대안으로 전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성이 본래의 존재론적이고 신적인 깊이와 폭을 회복할 때에만 현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학술대회 후 대회 주요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일준 박사(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소장), 정재현 박사(연세대 신과대 부설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소장/연세대 미래융합연구원 종교와사회연구센터 센터장), 길희성 박사(대한민국학술회원), 이관표 박사(연세대/협성대 강사). ⓒ베리타스 |
이에 길 교수는 존재론적 차원을 상실한 근대 이성으로 하여금 그 한계를 자각하게 할 만한 “극한적 질문들”(limit-questions)을 제기한다. 이 질문들을 통해서 근대의 과학적, 기술적 이성의 한계들을 적발하고 다시 이성의 본질적인 깊이와 초월성을 회복할 단초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물론, 경직된 본질주의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에 열려 있는 유연한 본질주의의 관점을 지향한다.
“극한적 질문들”이란, 예를 들어, 우리의 언어나 사고의 구조가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인식이 사물의 질서를 반영하는 것인가? 자연의 법칙적 질서는 거듭된 우연의 결과인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왜 존재하는가? 인생 자체에 궁극적인 의미 같은 것이 있는지, 아니면, 궁극적으로 무의미한 것인지? 등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 길 교수는 “우주의 합리적 구조와 질서, 그리고 물질의 움직임을 일정한 방향과 목적으로 인도하는 우주의 어떤 합리적 마음(rational mind) 또는 지성(intellect, Logos)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느님이 창조주이며 동시에 “역사의 하느님이고 구원의 주(Redeemer)로서, 특정 민족과 개인의 삶에 개입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역사적 계시의 하느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적 정신”인 신이 인격성을 지니고 있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창조의 질서를 통해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산출한 신이 적어도 우리 인간보다도 못한 인격 이하의 실재일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신을 믿는다는 기독교인들이 “전통적인 초자연주의적인 신관”을 고수하면서 오히려 신을 “인격 이하의 실재”로 만들어버리는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풍토는 극복되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