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한국교회의 정치화, 막을 수 있는가?

인문학 단체 ‘깊은 계단’ 심용환 대표

[편집자 주] 한국교회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는 보수 우파 정부의 우군임을 자처해왔다. 이번에 논란이 일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대형교회는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인문학 단체 ‘깊은계단’ 대표이며 역사강사로 활동 중인 심용환 대표는 여기에 일침을 가했다. 심 대표는 최근 SNS를 통해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유포되고 있는 허위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심 대표는 10월26일(월)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긴급포럼 - 쟁점분석!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 바로 알기>에서 발제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새누리당’의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곧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하며 날선 질문을 제기했다. 심 대표의 발제문 가운데 한국교회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대목을 발췌해 싣는다.   
▲인문학 단체 ‘깊은 계단’ 심용환 대표.
한국교회의 정치화, 막을 수 있는가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보수교회, 그러니까 대다수의 교회가 지켜왔던 정경분리 원칙 혹은 정치 입장에 대한 중립적인 태도가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일명 ‘빤스 목사’로 유명한 전광훈 목사의 행보는 예외적이라고 치자. 마치 본인의 부정부패가 ‘종북세력’ 때문이라고 정치적 물타기를 시도하는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역시 예외적이라고 치자. 활발한 정치적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가 다른 문제로 혼란에 휩싸인 순복음 강남교회 김성광 목사 역시 예외적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일반적인 교회들은 정치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운가?  
이종윤, 오정현, 최성규, 김삼환, 이영훈 목사의 공통점  
그렇지 않다. 한 때 정통 보수 신학으로 유명했던 이종윤 서울 교회 목사는 문자 그대로 ‘광폭’ 행보 중이다. ‘올바른 북한 인권법을 위한 시민모임’ 등을 주도하며 김문수, 김동길, 이철승, 조갑제 등의 보수적인 정치 인사 혹은 극우적 성향의 인사들과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물론, 전체적인 활동상은 한국교회의 도덕성과 청렴성 회복 등을 천명하고 있지만 활동 보고서 등을 보면 ‘종북 세력 척결,’ ‘좌파의 준동 척결’ 등을 버젓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는 공식 인터뷰와 실제 설교단에서의 행동이 전혀 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설교를 비롯해서 각종 교회 행사에서 끊임없이 우편향적인 정치 성향을 성도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인천 순복음교회 최성규 목사는 ‘NLL 관련 노무현 대통령 비난, 5.16 군사 쿠데타 미화, 문창극 총리 지명 옹호’ 등 굵직한 현안에 관해 신문 광고까지 내었다.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가 설교 시간에 ‘김구를 비방하고, 한미동맹을 강조’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보수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정치 발언을 거의 하지 않는 오륜 교회 김은호 목사조차도 ‘그리스 경제 위기’ 논란이 벌어진 주에 ‘거지 근성을 갖지 말라’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였다. 종편 등에서 이야기하는 복지 포퓰리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우회적으로 지지 선언을 한 것이다. 더구나 비교적 신중하게 보수적 행보를 이어온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여의도 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조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이승만 건국 공로상’을 시상하는 등 충격적인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한반도 전쟁설을 주장하며 사회를 혼란에 몰아넣었던 홍혜선 전도사가 국내에 돌아와서 ‘김대중 대통령은 간첩,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을 내가 직접 보았다’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이고, 전광훈 목사는 ‘이승만’을 영화로 제작하겠다면서 모금 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 목사, 빤스 목사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고 욕하지만 전광훈 목사는 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대신 교단’의 총회장이었으며 동시에 청교도 영성 수련원을 비롯해 수 천 명의 목회자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부흥사이기도 하다.   
또 누구를,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나. 서경석, 김진홍 목사의 변절은 이미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욕하고 끝내버릴 문제가 아니다!  
우선 이런 행태는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그간 대다수의 한국 교회는 정치 문제나 사회 문제에 교회를 끌어들이는 것에 대해 신학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목회적으로 배척해왔다. 
“교회는 신성한 곳이다.”  
“또한 영원성을 지향하는 곳이다.”   
“현세보다 내세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교회가 사회화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서구 교회를 봐도 그렇다.”  
“그러니 교회는 영혼의 문제에 집중해야 하며, 목회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 문제를 고민하는 수많은 교회 청년들에게 보여준 교회의 일관된 모습 아니었던가. 설교, 찬양, 성경 공부 등 교회 교육의 대부분도 사실상 영혼 구원, 개인의 믿음, 바른 신앙생활 그리고 그러한 개인성에 기초한 사회봉사의 수준이 아니었던가.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역량은 대부분 ‘사회 복지’나 월드 비전 식의 ‘구제 단체’ 그리고 ‘선교’에 집중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런 능동적이며 구체적인 정치 행태는 어떤 신학과 어떤 목회적 관점에서 나온 행태란 말인가.  
더구나 이런 생각, 이런 행동은 너무 퇴행적이다. ‘새누리당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옳고, 보수보다 진보가 하나님의 뜻에 가깝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오기도 했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는 주장은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현실을 초월하며 더욱 뛰어나며 더욱 미래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 참여적 행태가 과연 그러한 것을 지향하고 있는가?   
조갑제, 김동길, 지만원 등은 한국의 대표적인 극우파인사들이다. 보편적인 다수 대중의 심성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내뱉는 언사 자체가 지혜롭지도, 따뜻하지도, 바르지도 않다. 불편하고, 못된 단어, 상처를 주며, 나쁜 말을 써대며 온라인과 현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인데 그들과 함께 집회를 한다? 결국 ‘혀’로 범죄하지 말고, 아름다운 언어로 ‘서로 사랑’하자는 가장 기초적인 교회 생활의 원칙마저도 뭉개자는 것이 아닌가.  
종북, 북한인권법, 이승만 문제 등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논란꺼리이다. 어느 한편을 든다는 것은 옳고 그름의 논쟁과 상관없이 곧바로 그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느냐와 연결이 될 정도로 민감한 문제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새누리당’의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곧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대체 성경 어디에 그런 식의 내용이 씌어 있으며, 개혁 신학 어디에 그런 식의 선택이 루터와 칼빈의 노력에 부합한다고 규정되어 있단 말인가.   
이런 식의 행보가 계속되면 교회의 문화와 관행상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한국 교회는 목회자의 설교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다. 아무리 만인제사장설이 맞고, 목사는 사제가 아니라고 떠들더라도 실제로 한국 교인 대다수는 본인들에게 은혜를 주는 설교자를 찾아 교회를 옮겨 다닌다. 예배라는 것도 사실상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행위’가 거의 대부분이 아닌가.  
또한, 목사가 설교를 할 때 성도는 ‘아멘’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문화라면 목회자가 설교단에 서서 야당을 비난하고, ‘종북’을 외쳐대며 정치 갈등을 부추기고, 돈과 자금을 들여서 행사를 주관하며 성도들을 동원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겠는가. 실제로 상당수의 기독 청년들이 쉽사리 ‘종북’을 운운하고, 블로그에 본인의 큐티 내용과 함께 ‘건국 대통령’ 이승만, ‘부국 대통령’ 박정희를 찬양하며 올린 포스팅은 이미 흔하다.  
더구나 보수 진영의 경건한 목사님들이 주도해서 만든 <미래 한국>이라는 잡지에서는 ‘일베(일간 베스트)’야 말로 새롭고 대안적인 청년문화라고 주장하는 특집 기사가 실리기까지 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교회의 부정부패만큼 교회의 정치화 역시 차곡차곡 진행되어 왔다. 1990년대 후반 금란교회의 부정부패 문제가 PD수첩에 보도된 후 지난 20년간 한국교회의 부정부패는 끊임없이 고발되어 왔고, 고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양산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교회는 정치화되어 왔고 이미 차고 넘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누가 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가. 대형 교회들이다. 엄청난 성도수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고 자부하며 대부분의 연합 행사와 주요 연합 기관의 수장직을 모조리 차지해온 바로 그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이 정치적 행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가?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찾지 않는가? 한편으로 당연하다. 교회는 심지어 정치적인 부분에서조차 편향적인 시각을 강요하고 있고, 젊은이들의 절대 다수는 기성세대에 비해 훨씬 진보적이며 개방적인데 구닥다리 정서와 생각을 요구하니 누가 교회 다닐 엄두를 내겠는가. 더구나 대형교회.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가 대표들이 아닌가. 대형교회가 부패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대형교회가 정치색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인이라면 한국 교회를 무엇이라 생각하겠는가?  
한국교회가 변화되지 못하는 이유가 그들 때문인가?  
가장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보자. 한국교회는 참으로 흥미로운 곳이다. 문제 많기로 유명한 대형 교회를 찾아가 설교를 들어봐도 예수님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살면 안 된다. 변화해야 한다’라고 부르짖는다. 또한 교회를 다니는 절대 다수의 성도들은 목회자의 비행이나 각종 부정부패 그리고 정치적인 부분에서의 특정 이념 강요에 대해 결코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정도에서 끝이라는 점이다. 홍대새교회 전병욱 목사가 성추문 문제로 교단 심판장에 서는 날, 항의를 하기 위해 나온 사람은 2명. 전목사를 지키기 위해 동원된 청년들의 숫자에 비할 바도 아니지만 전병욱 문제가 미친 파장에 비해 실제로 문제를 비판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외치지만, 그리고 개교회에서 분열이 일어나서 그것을 두고 피터지게 싸우는 것에서는 그나마 세력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교회 전체의 문제를 두고 조직화된 개혁적 흐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하더라도 계산이 무의미할 만큼 미약하다.   
개혁이나 변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교회에서 극소수이다. 문제를 일으키기는커녕 소외되고 배제되기 일쑤다. 더구나 분란 자체를 죄악시하는 교회 문화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성도의 몸짓은 문제를 일으키는 성도와 구분되지 못한다.    
비판은 죄다.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 자체가 일종의 도그마가 되어서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보여주셨던 그 치열했던 바리새인과 장로들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의도적인 율법과의 싸움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결국 ‘좋은 게 좋은’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교회 문화이다. 내가 변화해야 하고,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은 말이 그렇다는 것일 뿐, 결국 아무리 문제가 불거져도 사람들은 대형 교회에 몰려들고 만다. 페이스 북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교계 개혁언론의 기사를 공유하는 등의 수준에서 교회가 변화할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타협 기구가 만들어지든, 엄청난 성도의 의지로 새로운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할 텐데 언제나 조용하기만 하다. 너무나 심각해서 머리가 아찔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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