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
2015년 추계기독인문아카데미 <기독교 인문학, 한국교회를 진단하다>의 네 번째 강연이 11월2일(월) 오후 6시30분부터 서울 방배동 백석대학교 대학원에서 진행됐다. 강연은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맡았으며 주제는 “기독교와 윤리”이다.
이 날 강연은 “문화 상대주의와 기독교” 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세 번째 강연(10월26일)에서 좀 더 발전시켜 기독교를 윤리의 영역과 연관시킨 내용을 다루었다. 손 교수는 문화와 문명을 비교하고 역사 인식에 대해 설명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문화와 문명이 발전하는 요소로서 문자의 중요성을 지적하며 “문자는 문화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인간과 비교했을 때, 동물은 문자가 없기 때문에 문명, 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문화가 “‘progress’하는 것이 아니라 ‘develop’한다”면서 가치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역사가 축적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progress’의 의미를 인식하고 중요시했던 사람은 어거스틴이다. 고대 사상, 종교, 문화는 순환적 역사관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과거 지향적 역사관, 즉 역사의 황금기는 과거에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한편 기독교 역사관만 선형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 즉 역사에는 처음과 끝이 있고 따라서 ‘progress’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한편 소위 실증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꽁트는 인류문화를 다음의 세 단계로 나누었다. 첫째, 신학적 단계는 모든 걸 신의 뜻으로 설명하는 시대로, 고대 이카루스 이야기가 인간이 지킬 선이 있음을 교훈적으로 알려준다고 보는 입장이다. 둘째, 형이상학적 단계는 모든 걸 원칙, 원리, 본질로 설명하는 시대이다. 셋째, 실증주의적 단계는 모든 걸 구체적 경험으로 설명하는 입장이다. 이 단계가 당시 꽁트가 살던 시대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天’ 이라는 글자를 보고 단순한 ‘자연’ 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인격적 신‘ 이라고 볼 수도 있듯이 각 시대의 사유 패러다임에 의해 대상의 설명 방식은 달라진다.
헤겔은 절대정신을 현실화한 것을 역사라고 보았다. 즉 가능성으로 그칠 뻔한 것을 드러낸 것(unfolding)이 곧 역사라는 것이다. 이는 서양문화우월주의라는 이념으로 이어진다. 역사가 선형적(linear)이라는 인식은 미개한 문화와 발전한 문화가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원시 사회’ 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문화우월주의적 생각이 담겨있다고 본다. 여기서 가장 발전한 문화는 서양 문화라고 본다. 이러한 입장은 칼 마르크스, 헤겔 사상에 담긴 생각이다.
이어서 문화상대주의와 이에서 야기될 수 있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손 교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문화상대주의에 대해 니체와 쇼펜하우어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데, 니체는 이 때 이성을 ‘창녀이성’이라는 단어로 비판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성에 대한 회의는 19세기에 상대주의를 전제하게 했고, 현재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F. Boas 라는 학자는 이누이트족을 연구하며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했다. 즉 문화엔 우열이란 없으며 단지 다름이 있다는 주장이다. 레비스트로스 또한 유명한데, 이러한 문화상대주의자들은 ‘원시 문화’ 라는 단어를 사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UN이 <보편인권선언>을 발표하려고 하자, 미국 문화상대주의 학회에선 ‘보편인권’ 이라는 것은 없다고 항의하며 한번 더 상대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상대주의를 종교에 적용하여 손 교수는 강연을 이어갔다. 종교다원주의는 흔히 구원을 산 정상에 비유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은 여러 길이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손 교수는 “모든 종교는 자기 종교의 절대성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설득의 권리도 있다.” 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독교가 확실성을 추구하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불변성, 교리의 절대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윤리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라고 말했다. 윤리는 개인 간 관계의 문제라는 점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걸 인식해야 하며, 윤리가 정의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즉 손 교수는 정의를 상대화하면 약자의 손해가 커지기 때문에 윤리적 상대주의는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다.
글/ 김혜수(객원기자 / 연세대 신학과 2년)
글/ 김혜수(객원기자 / 연세대 신학과 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