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은 군사혁명, 제주4.3은 폭동”이라는 강의 내용으로 물의를 일으킨 ‘국가안보론’ 강의가 예정된 4일(목) 오후 한신대 학생들이 강의실 벽에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
한신대학교(한신대) ‘국가안보론’ 강의 후폭풍이 거세다. 이 강의에서 육군훈련소장 출신인 김정호 강사가 강의 도중 “5.16은 군사혁명, 제주4.3은 폭동”이라는 취지의 강연을 한 사실이 <한겨레신문> 11월2일 자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학생회는 즉각 반발했다. 학생회는 2일(월) 성명을 내고 △ 국가안보론 폐강 △ 학교 측의 공개 사과 및 재발방치 대책 수립 △ 학생들의 교육권과 학점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조치 마련 등을 학교 측에 요구했다. 학생회는 이날 오후 학사지원팀을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3일(수) 오후엔 허인도 총학생회장과 한신학보 기자, 신학과 13학번 김진모 씨 등이 김종엽 정조교양대학 학장과 면담을 가졌다.
학생 측은 4일(목) 수위를 높였다. 문제의 강의는 매주 목요일 오후 진행돼 왔다. 이에 이 학교 국사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돼 강의실 벽에 대자보를 붙였다. 대자보에 적힌 문구는 이렇다.
“한신대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사건 4.3을 폭동이라 가르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5.16 군사쿠데타는 헌법정신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명백한 군사쿠데타!”
특히 이날 국사학과 학생회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의 핵심 내용을 발췌해 옮겨 본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안보론 수업에서 담당강사는 수업자료와 발언에서 제주4.3사건은 폭동, 5.16군사쿠데타는 군사혁명이라는 역사왜곡을 자행했다. 이것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정교과서 문제와 더불어서 한국사를 전공하는 학생들로 하여금 부끄러움과 분노를 자아냈다. (중략)
역사란 다양성을 중시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다양성은 사실에 대한 해석과 평가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지 사실에 대한 왜곡까지 다양성의 범주에 넣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제주4.3사건을 폭동이라고 한 것은 국가폭력을 은폐한 것이며 5.16군사쿠데타를 군사혁명이라고 한 것은 반민주적, 반헌법적인 발언인 것이다.”
국사학과 학생회는 끝으로 학교 측에 1) 김정호 강사의 역사왜곡 정정과 사과 2) 강사 검증과정 공개 3) 현 사태에 대한 적절한 조치 등을 요구했다.
강의를 맡은 김정호 강사는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는 광경을 보자 민감하게 반응했다. 기자를 향해서도 “더 할 말이 없다. <한겨레신문>에도 잘못을 솔직히 시인했다. 언론 보도 이후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다”며 거칠게 대했다.
한신대, “모든 가능성 열려 있어”
▲한신대 전경. ⓒ사진=지유석 기자 |
학교 측 입장을 듣기 위해 해당 학과를 개설한 정조교양대학(교양학부) 김종엽 학장과 접촉했다. 아래는 김 학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한신대는 민중신학의 요람이다. 지난 유신 정권 시절, 정권이 학생들의 제적을 요구하자 당시 김정준 학장이 이에 항의해 삭발한 일도 있었다. 이번 일이 확대된 이유는 한신대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라고 본다. 한신대 강단에서 이 같은 강의가 개설돼 의아하다.
해당 강의는 학사장교 지망생을 위해 마련한 강의다. 질문에서 지적했듯 한신대는 학풍과 전통 때문에 학군장교(ROTC)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 학생들이 장교 임관을 취업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고, 이에 학사장교 임관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올해 개설한 것이다.
-. 한신대 학생회와 대책협의회는 폐강을 요구한다.
대책협의회는 임의 단체다. 따라서 취재원으로서 의미는 한정시켜야 한다. 그리고 대학에서 현재 진행 중인 강의에서 내용 상 이견을 이유로 폐강하는 사례는 한국 대학에서 없었다. 수강생 전원이 강의를 보이콧하지 않는다면 폐강은 곤란하다. 단, 실제 수강생 전원이 강의를 거부한다면 실질적으로 학교에서 개입해 조치를 취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강의 내용이 불쾌했다면 당장 그 시간에 질문하고 강사와 토론을 이어나갔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외부로 제보해 일을 키웠다,” “학생회가 지나친 요구를 한다”는 의견을 낸 수강생이 있는 것으로 안다.
-. 김정호 강사는 “교재에 적힌 용어를 그대로 썼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5.16은 군사혁명, 제주4.3은 폭동”이라고 적힌 교재를 사용하고 강의안에 반영한 일 자체가 문제 아닌가?
학군장교 과정에서 이뤄지는 정훈교육과 비교해 보라. 여기서 채택하는 교재나 강의 내용은 ‘국가안보론’보다 훨씬 더 수위가 높다. 반면 김정호 강사는 교재 내용을 인용했을 뿐, 교재 내용이 정설이라고 학생들에게 주입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강사의 이력 자체도 군 주류로 보기 어렵다. 강사는 전남 광주 출신이고, 광주 제일고를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분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교단에서 강의의 적임자를 찾던 중 이 분이 적임자라고 판단해 강의를 맡겼던 것이다.
-. 아무래도 관심은 강의 존폐 여부일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강의 존폐 여부에 대한 입장은 충분한 조사가 이뤄진 후에 정리될 것이다. 난 해당 강의에 대해 권한이 가장 큰 사람이다. 그러나 혼자서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이고, 따라서 공식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다.
아직 강사와 직접 면담을 가지지 못했다. 언론 보도는 월요일에 나왔었고, 그간 공식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강사와 면담을 가질 것이다. 동시에 수강생들과 개별 접촉하는 한편 함께 만나는 자리도 마련하고자 한다. 조사결과에 따라 강사를 교체하거나 폐강조치가 있을 것이다. 군사학 같은 아주 실제적인 과목을 개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 해프닝 수준이라면 주의내지 경고로 그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치할 방침이다.
학교 측의 입장에 대해 이 학교 신학과 13학번 김진모 씨는 ‘학교 측이 너무 안이하다’는 반응을 드러냈다. 학생회 성명을 주도하기도 한 김 씨는 “우선 대책협의회는 총학생회, 교수협의회, 대학원원우회, 동문이 함께 하는 어느 기구보다 대표성 있는 기구”라고 반박했다. 이어 “강의 중간에 폐강하라는 요구는 한 바 없다. 제주4.3이 폭동이고 5.16이 혁명이라고 한 발언이 확인되자마자 강의 중단을 요구했고, 이런 요구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안보론’ 강의 내용이 외부로 알려지자 학교 측은 이번 일을 “수업 중 일어난 해프닝으로 봐달라”는 입장을 밝혔었다. 김 학장과의 일문일답에서도 이런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학생 측이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진통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