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교회는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것을 깊이 회개해야 한다. 이 세계와의 종말론적 긴장을 잃어버리고 강자의 편에 서서 피 묻은 돈으로 바친 헌금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기도해 준 공범관계를 통렬히 자복해야 한다”
8일 오후 2시 서울 청담역 강남청소년수련관 1층 강당에서 열린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제9회 정기포럼에서 ‘기독교적 시각에서 본 경제위기와 기독인의 삶’이란 주제의 발표자로 나선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부)는 맘몬에 지배 당하는 한국교회의 자화상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경제 위기 시대에 맞는 기독교적 영성(spirituality)을 회복해야 함을 강조했다.
▲ 새길기독사회문화원(원장 권진관) 제9회 정기포럼이 8일 오후 2시 강남청소년수련관에서 열렸다 ⓒ베리타스 |
(미국발 금융위기로)상품 생산과 거래를 제쳐두고 돈만으로 돈을 벌어들인다는 파생상품의 수익잔치는 ‘거대한 사기극’이었음이 드러났다고 정세라씨 말했다(한겨레 2008.9.24 '판도라의 계좌를 열며'). 그런데 이 사기극에 교회의 책임은 전혀 없다고, 자유롭다고 선뜻 말할 수 있을까?
장윤재 교수는 그러나 교회가 이런 사기극의 중심에 서 있었음을 피해가기 힘든 증거 아닌 증거들을 제시하며 설명해 나갔다. 장 교수는 “세계 외환시장의 변동에 따라 ‘돈 놓고 돈 먹기’ 식으로 한몫 잡겠다고 온 세상이 미쳐서 날 뛸 때, 얼마나 많은 교회가 이런 식으로 ‘나의 풍족함을 위해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일’이 다름 아닌 죄라고 설교하고 가르쳤는가”라고 반문했고, 이어 “교회는 오히려 청빈(淸貧)이 아니라 청부(淸富)가 성경적 원리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라고 했다.
그는 또 신자유주의에 매몰된 한국교회의 현실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신자유주의에서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경쟁의 원리’를 교회가 앞다퉈 조장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장 교수는 “(성직자들은)예전에 비하면 정말로 넘치게 살면서도 현재의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개발하고, 발전하고, 또 경쟁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이 땅에서 성공, 죽어서는 천당’이 되고만다. 지금 여기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교회가 맘몬으로부터 돌아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장 교수는 “예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단언했다”며 “금융자본주의의 세계화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처음으로 할 일은 빈곤의 신 맘몬으로부터 생명의 신 하나님으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교회에 맘몬으로부터 회심을 강조한 그는 “‘돈 신’에 대한 우리의 은밀한 사랑과 비겁한 굴종으로부터 영적·정신적 자유를 얻는 것”이라며 “이것이 경제위기 시대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기독교적 영성(spirituality)”이라고 했다.
비판을 하기는 쉬운데 대안은 없을까? 장 교수는 경제위기 앞에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일로 세계 에큐메니컬 기구를 통해 지구촌 경제에 절실한 것은 투기에 기초하지 않은 금융체제이며,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역경제의 이익에 복무하는 금융체제임을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는 케인주의로의 복귀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장 교수는 보다 근원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 경제의 ‘지역화’ ▲ 화석연료에 기초한 인간문명으로부터의 탈피 ▲ ‘생태경제’로의 문명사적 전환 등이었다. 장 교수가 말한 대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경제의 ‘지역화’= "세계 경제를 ‘작은 규모’의 지역경제로 재편하고 다원화하여 그들 간의 평등하고 호혜적인 상호협력 관계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와 같은 대규모의 인간 경제는 인류의 기나긴 역사에서 고작 5백여 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며, 이제 우리는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작은 규모의 지역 자립경제로 되돌아가야 한다. 친환경적인 작은 규모의 지역경제들이 거대한 국제시장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래 땅과 함께 숨쉬며 살았던 세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화석연료로부터의 탈피= "우리가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현재의 문명으로부터 근원적으로 탈출하려면 우리는 특정 지역에 묻혀 있는 석유자원이 아니라 이 세상 누구에게나 하나님께서 골고루 내리시는 태양빛과 지구의 70%를 이루고 있는 물에 의존하는 에너지 문명으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가능한 일이고, 여기에 교회가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생태경제’로의 문명사적 전환= "가난의 문제 해결은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가 주장하듯이, 이미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고 또한 환경적으로도 지탱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명된 ‘양적 성장’(quantitative growth)에 의해서가 아니라, 분배 정의의 실현과 인구증가의 억제와 같은 사회적 관계의 개혁, 즉 ‘질적 발전’(qualitative development)에 의해서 해결되어야 한다. 경제의 목표는 ‘무한한 빵’이 아니라 ‘충분한 빵’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신 예수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날 포럼에는 장윤재 교수를 비롯해 정운찬 교수(서울대 경제학과), 이석영 명예교수(전북대, 대안농업운동가), 임영인 소장(성공회 다시서기 센터) 등이 참여해 각각 ‘미국 경제위기와 한국경제의 대응’ ‘워낭소리가 들린다’ ‘경제위기와 기독인의 사회적 실천운동’ 등을 주제로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