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와야 할 장마비가 겨울에 내린다. 기상청은 지난 11월, 비와 눈이 온 날이 관측소 평군 14.9일이라고 밝혔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비가 온 셈이다. 12월 접어들어서도 비, 눈은 이어진다. 12월의 첫 날은 햇살이 비치더니 둘째 날엔 비, 셋째 날엔 눈이 온다. 겨울장마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날씨는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 날은 추워지는데, 비까지 자주 내리니 여기저기서 우울하다는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사실 기자에게 이런 날씨는 익숙하다. 4년 전 캐나다 밴쿠버에서 비슷한 날씨를 겪어봤기 때문이다.
밴쿠버의 여름은 환상적이다. 현지 교민들은 ‘천당 밑 구백구십구당’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겨울은 완전 딴판이다. 11월이 되기 무섭게 날씨가 스산해지면서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게다가 위도가 높아서인지 오후 3시만 되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가 4시쯤 되면 한밤중으로 돌변한다. 햇빛 비치는 날은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 뿐이다. 이런 날씨가 11월부터 3월까지 계속된다.
매일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일조량마저 짧으니 이런 날씨는 어지간해선 견디기 정말 힘들다. 그래서 겨울만 되면 우울증 환자가 넘쳐나고, 우울증만 전문으로 하는 병원도 있다. 이민 온 교민들도 밴쿠버 이민 성패를 좌우하는 첫 관문은 겨울나기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 날씨를 보고 있노라니 밴쿠버 있을 때가 떠오른다. 그래도 고국이 낫다. 그곳은 오후 4시면 오밤중이지만 고국은 6시나 돼야 해가 떨어지니 말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우울해 하는 이유가 단지 날씨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엔 부조리가 만연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비례해 인심마저 흉흉해져 갔다. 이런 분위기에 스산한 바람이 불고 비가 잦으니 더욱 우울한 것이다.
부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선 종교가 세상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다른 종교는 논외로 하자. 개신교가 세상의 어둠을 비추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에게 힘이 되어 줬던가?
한국교회, 도피성 역할 방기....자성 시급
▲김영주 NCCK 총무가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 앞 옥외 광고판에서 노숙 농성 중인 케이블방송사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방문했다. 상기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베리타스 DB |
지금 조계사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피신해 있다. 공권력은 지난 11월14일 민중총궐기의 배후로 그를 지목했고, 이러자 그는 조계사로 몸을 숨겼다. 공권력은 그를 검거하기 위해 조계사 주변에 인력을 대거 배치하고 삼엄한 경계를 펼치는 중이다. 이 와중에 불상사가 불거졌다. 조계사 신도회는 지난 11월30일 그에게 퇴거를 요구하면서 그가 입고 있던 옷을 벗기는 소동을 벌였다. 불교계 인터넷 신문 <불교닷컴>은 12월2일 민주노총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신도회는 경찰과 실시간으로 상황을 주고받았다”고 보도했다.
보수교단의 입장을 대변해 온 한국교회언론회(언론회, 대표회장 유만석)는 그보다 더 앞선 시점인 11월26일 논평을 발표했다. 이들은 논평에 이렇게 적었다.
“불교계가 마치 현대판 소도(蘇塗-삼한시대에 죄인이 도망해도 잡아가지 못함)를 흉내 내는 듯하지만, 한상균 위원장은 엄연히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수배중인 범법자이며, 그가 주도한 시위에서 경찰 버스 50여 대가 파손되고, 경찰 병력 113명이 다치는 등, 국가의 공권력이 유린당하고, 국가 재산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중략)
종교가 억울한 사람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민주노총 위원장의 ‘민중궐기’시위 주동은, 종교계가 보호하고 감싸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본다. 어찌 종교계가 범법자의 은신처가 되고, 국민의 원성을 사며, 국가 질서를 흔드는 일에 앞장서려는가?”
이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참담하다. 언론회의 논평은 과연 이 사람들이 기독교인인지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지난 11월14일의 민중총궐기가 한상균이라는 개인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었던가? 그날 총궐기엔 주최 측 추산 13만 명이 참여했다. 시민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그리고 재벌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노동법 개정에 분노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왔다. 정부가 한 위원장 검거에 열을 올리는 건, 일종의 희생양 만들기다.
그리고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여도 교회나 사찰을 찾았다면 이들을 감싸 안아 회심시키는 게 도리다. 구약성서 민수기 35장을 보라. 살인범은 반드시 사형을 받도록 했지만, 적의 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인 이들에 대해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피성을 마련해 놓았다.
민중궐기 선동이 중범죄인가? 그래서 종교가 감쌀 하등의 이유가 없던가? 그렇다면 예수도 내치기 바란다. 예수 역시 하나님 나라를 설파하면서 민중을 선동했고, 로마 제국에 의해 정치범으로 단죄됐기 때문이다.
왜 한상균 위원장이 교회를 외면하고 사찰로 몸을 숨겼을까? 교회가 도피성이 되어주지 못해서 아닌가? 한국교회, 특히 주류 보수교단이 자신들의 ‘입’인 언론회를 동원해 ‘종교가 감쌀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기 전에, 시국사범들을 외면하고 권력과 내통해왔던 행태부터 돌아보고 회개해야 한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종교가 부조리를 부추긴다. 이런 상황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날씨마저 음울하니 힘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우울하다.
밴쿠버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겨울을 이긴다. 밴쿠버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미국의 시애틀도 마찬가지다. 시애틀은 세계적인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의 발상지다. 스타벅스는 순전히 날씨가 만든 문화다.
너무 순진한 권면일 수 있겠지만, 따끈한 커피 한 잔으로 우울함을 달래보자. 어둠이 짙다고 주저앉으면 새 날이 밝아도 일어설 수 없다는 걸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