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루터의 만인사제론, 양날의 칼 될 수 있어”

혜암신학연구소 공개강연회에서 열띤 토론 이어져

▲혜암신학연구소(소장 이장식 박사)는 12월7일(월)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종교개혁의 만인사제론과 평신도의 사명’을 주제로 공개강연회를 가졌다. ⓒ사진=지유석 기자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만인사제론’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열렸다. 혜암신학연구소(소장 이장식 박사)는 12월7일(월)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종교개혁의 만인사제론과 평신도의 사명’을 주제로 공개강연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는 ‘만인사제론’이 담긴 루터의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 내용을 소개하면서, 루터의 사상이 지금 한국교회에 던지는 실천적 과제에 대해 언급했다.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은 1520년 8월에 나온 논문으로 김 명예교수는 “「교회의 바벨론 감금」, 「크리스챤의 자유」와 함께 종교개혁정신의 본질을 명료하게 천명하는 논문들”이라고 평했다. 
루터는 이 논문에서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모든 크리스챤은 ‘영적계급’에 속하며 그들 가운데는 직무상의 차별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세례와 복음과 신앙만이 우리를 ‘영적으로’ 되게 하고 같은 크리스챤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루터의 선언에 대해 김 명예교수는 이렇게 해설한다. 
“바로 여기에서 루터는 만인사제론의 성서적 근거를 제시한다. 특히 베드로전서 2장에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라는 성경말씀과 요한계시록 성구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를 성경구절로 제시하면서, 로마 교도들이 ‘교회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성직질서의 특권계급을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김 명예교수는 이어 “루터는 세속적인 정치적 통치자, 관리, 구두수선공, 대장장이, 농부도 각기 자기들의 일과 직무를 맡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다 성별받은 사제와 주교와 같다고 주장했다”고 적는다. 
루터가 만인사제론을 주장한 핵심은 다른데 있지 않다. “교회의 모든 직분들은 평등하며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그들은 단지 각자가 받은 은사와 기능에 따라서 구분될 뿐이다. 사제 계급과 평신도의 계급적 구분이 철폐되었고, 성속의 이분법적 구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만인사제론의 핵심이다.
김 명예교수의 주된 논점은 만인사제론의 신학담론에 있지 않다. 김 명예교수는 목회자들의 비리가 연일 불거지고, 기업을 방불케 하는 한국교회는 ‘교회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 명예교수가 루터의 만인사제론을 고찰하는 이유는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고, 평신도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함이다. 
김 명예교수는 ‘깊은 병에 걸려 있는 중환자 같은’ 한국교회에 1) 교회개혁주체로서 평신도 권리 강화 2) 교회조직구성의 평신도 참여 제도적 보장 3) 평신도 지도자 교육과정 신설 4) 목회자의 교회재정 관여 금지 5) 성지자 목위위임 7년제 재위임 제도 정례화 6) 에큐메니칼 교회론 회복 7) 70인 복음신앙 추밀원 구성 8) 잠재적 평신도 인적자원 활용 등 8개 항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오독 가능성 배제할 수 없는 ‘성서만으로’
▲이경숙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논평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논찬자로 나선 이화여자대학교 이경숙 명예교수는 ‘만인사제론’의 맹점을 꼬집는다. 이 명예교수에 따르면 ‘만인사제론’은 한국교회에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명예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자.
“만인사제론은 교황이나 목회자만이 허위의식에 빠져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갖는다는 점을 비판하고 지적할 때는 매우 탁월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교회에서 힘 있는 사람들이 낮은 수준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들도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와 동등하니 계속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일을 하라는 의미에서 사용된다면, 이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각 지체는 평등하다’는 명목으로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하기 싫은 부엌 일, 아이 돌보기, 청소, 교회 행사 보조 등 ‘희생과 봉사’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권하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이다.”
이 명예교수의 지적은 한 걸음 더 들어가 성서의 오역이 가져오는 폐해에 대한 경고로까지 이어진다. 
“루터는 ‘성서만으로’를 외치면서 성서의 위치를 교황권 위에 두었다. 사실 교황권의 절대성이라는 허구도 루터는 성서를 통해 벗긴 것이다. 문제는 성서가 66권의 책으로 되어 있고 그 내용도 매우 다양해서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읽어 낸다면, 유감스럽게도 목회자의 권리와 기득권자들의 이익만을 위해 오용될 소지도 있다.”
“제가 아는 많은 교회 여성들은 한국교회에서는 ‘목사님 섬김의 신학’이 각 교회마다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한다. 그러면서도 목사님을 비판할 생각이라도 하는 것을 커다란 죄악으로 생각해 입을 다물고 있다. 이는 목회자들이 암암리에 미리암이 모세를 비판하고 문둥병에 들었다는 민수기 12장의 내용이 평신도들 머리 속에 분명히 각인시킨 까닭이다. 루터가 말하는 ‘성서만으로’의 이론이 한국교회에서 이렇게 왜곡되고 있음을 안다면 루터는 계속해서 기만이며 위선이며 사기극이라고 외쳤을 것이다.”
4회째를 맞는 혜암신학연구소 공개강연회는 김영한 혜암학술포럼위원장(숭실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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