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 ⓒ스틸컷 |
3년 전 이맘때,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반향을 얻고 있었다. 당시 우리 사회는 대통령 선거를 치른 직후였고, 선거결과에 실망한 계층들은 이른바 ‘멘탈붕괴(멘붕)’에 빠져있었다. 이런 와중에 이 영화는 ‘힐링’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이 전해지며 흥행가도를 달렸다.
새삼 이 영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현 상황에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줘서다. 영화에서 장발장은 가석방 됐지만 사회가 그를 받아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이리저리 떠돌다가 교회에 몸을 의탁한다. 마침 교회에서 시무하던 미리엘 주교는 온갖 냉대에 시달리던 그에게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내준다.
그러나 그는 순간 욕심이 들었는지 교회의 물건들을 싸서 달아났다가 경찰에게 붙잡혀 온다. 미리엘 주교는 괘씸할 법도 하건만, 오히려 그를 감싸고 은촛대까지 내준다. 영화에서는 미리엘 주교가 등장하는 대목은 아주 잠깐이다. 미리엘 주교는 빅토르 위고의 원작에서 더 빛난다. 작가는 미리엘 주교에게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사실 장발장이 회심한 계기가 미리엘 주교의 자비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2015년 대한민국으로 넘어와 보자. 현재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12월9일 현재 24일째 조계사에 은신 중이다. 공권력과 일부 조계사 신도들은 이런 상황이 못 마땅한 듯 어서 나오라고 종용하고 있다.
종교가 왜 존재하는가? 갈 곳 없이 떠도는 죄인들을 품어 안아야 하는 것이 종교의 존재 이유 아닌가? 한 위원장에게 퇴거를 종용하는 신도들은 여권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인 이유를 내세워 정권에 쫓기는 사람을 내치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게 현 상황이다.
불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레미제라블>을 봤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미리엘 주교의 자비를 다시 한 번 곱씹어주기 바란다.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불교든 교리 상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회적 약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는 본질이 다르지 않다.
▲조계사에 피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2월7일(월) 오전 긴급기자회견을 가졌던 조계사는 취재진들로 북새통이었다. ⓒ사진=지유석 기자 |
종-정 유착, 한국 종교의 현주소
조계사의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정권은 한 위원장을 어서 내놓으라 압박하고, 늘 정권과 가까이 지냈던 조계종 지도부는 이런 압력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대목은 한국 종교가 처한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다. 신약성서 마가복음엔 세례자 요한이 헤롯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기록돼 있다. 헤롯은 40년 간 장기집권하며 전횡을 일삼던 독재자였다. 그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 불편했고, 그래서 그를 체포·투옥한다. 그러나 그런 헤롯조차 감히 그의 목숨을 건드리려 하지는 않는다. 마가복음 기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적는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성스러운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고, 또 그의 말을 들으면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오히려 달게 들었기 때문이다.” (마가 6:20, 새번역)
아무리 국민을 업수히 여기는 독재자라도 강직한 성품을 지닌 종교인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법이다. 지금 이 정권이 종교를 향해 오만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모든 종교를 막론하고, 종교인들이 정권과 내통해 잇속을 챙겨왔음을 정권 실세들이 잘 알기 때문이다.
일단 종교와 정권의 유착은 논점을 벗어나는 이야기이니 접어두자. 일단 조계종은 9일 오전 “경찰 투입은 불교 종단 짓밟는 것”이라며 공권력에 자제를 요청했다. 종단 입장과 별개로 모든 불자들이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한 위원장이 잘 있도록 해주십사 당부하고 싶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정권에 쫓기는 사람을 야박하게 내쫓는 건 부처님도, 예수님도 반기지 않을 일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