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되는가?
2015년 12월28일 한일 외교장관 사이에 타결된 위안부 합의 소식을 접하자 문득 뇌리를 스쳐간 의문이다. 잠깐 시계를 110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1905년, 미국은 일본과 밀실협약을 체결하고 일본의 한반도 병탄에 힘을 실어줬다. 이른바 카쓰라-태프트 밀약이다. 2015년 타결된 위안부 합의는 여러모로 이 밀약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미국내 분위기부터 알아보자. 한일 양국 외교장관이 합의에 이르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이를 속보로 타전했다. 이들의 논조는 환영일색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이번 기념비적인 합의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일 양국 사이에 가장 치우기 힘든 장애물을 없앨 것으로 보인다."
- 뉴욕타임스
"이번 합의는 한일 양국의 해묵은 역사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희소식이다."
- 워싱턴포스트
이 같은 어조는 언론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미국 정부 역시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나섰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즉각 성명을 내고 "한국과 일본의 합의와, 합의의 전면적인 실행을 지지한다"면서 "두 나라의 포괄적인 합의는 치유와 화해를 위한 중요한 제스처"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제3국의 외교 문제 언급을 자제했음을 감안해 본다면, 위안부 합의에 보인 미국 정부·언론의 반응은 무척 이례적이다.
사실, 위안부 문제 해결이 한일 관계의 급진전으로 직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제 강점기를 논외로 해도 한국과 일본은 서로를 적대할 때가 더 많았다. 지금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 독도 영유권 분쟁,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등등 난제들 투성이다.
위안부는 양국간 산적한 현안 중 하나였을 뿐이다. 더구나 위안부 문제가 시급을 다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기념비적'이라는 낱말을 써가며 합의를 반겼다. 왜일까?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서 한일 양국의 우호적 관계 구축이 핵심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동북아, 미국 대외정책의 중심축
지난 2월 웬디 셔먼 당시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워싱턴DC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이 같이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 임기 내내 동북아 지역은 미국의 대외정책의 중심이 될 것이다. 미국의 안전과 번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불가분의 관계다."
미국이 동북아 지역을 주시하는 주된 이유는 중국의 부상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28일(현지시간)자 보도를 통해 "동북아 평화의 가장 심각한 도전은 권위주의적인 중국으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이렇게 보도를 이어나갔다.
"중국의 도전은 번영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수천만의 중국인은 물론 다른 나라들도 환영해야 할 일이다. 그보다 중국 지도부, 특히 시진핑 취임 이후 공산당 지도부는 경제력에 힘입어 대외정책에서 공세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강압적이고 비밀에 휩싸인 중국 정부의 군사 대국화 움직임에 주변국들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 보도는 미국의 속내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무장한 중국에 맞서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이 성공적으로 관철되기 위해선 일본, 그리고 한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미국은 한일 양국이 껄끄러운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고 우호관계를 구축하기를 원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에 상당한 압력을 가했다.
그간 미국은 노골적으로 일본을 편들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7월 아베를 미국으로 불러 환대했다. 이에 앞서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드는 작업도 착착 진행했다. 미·일 양국 외교·국방장관은 지난 4월27일(월) 미국 뉴욕에서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회의)를 갖고 "자위대의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활동을 일본 주변에서 전 세계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새 가이드라인에 최종 합의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지난 8월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시도를 규탄하고, 피해자들의 권리 침해에 대한 조사를 통해 가해자들을 처벌하라"고 권고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공립 고등학교 교과서엔 위안부 문제가 반영되기도 했다. 일본의 역할 확대를 전폭 지원하는 미국으로서는 아베가 어떤 식으로든 위안부 문제를 매듭지어 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이 지점에서 다시금 웬디 셔먼의 발언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웬디 셔먼은 기조연설에서 한국, 그리고 중국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물론 민족주의 감정에 기댈 수는 있다. 그리고 과거 적국을 헐뜯어 값싼 박수를 받아내기는 쉽다.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진보 보다는 마비를 불러올 뿐이다."
한국과 중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든지 위안부를 문제 삼아 일본과 관계개선에 나서지 않고 있는 한국을 비판하는 발언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위안부 합의,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산물
미국은 한일, 특히 일본을 압박해 끝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미국의 무게 중심은 어디까지나 일본이었다. 한편 한·미·일 3국은 지난 10월부터 수 차례에 걸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요건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협상을 벌였다.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이 같은 논의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은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한일간의 기만적인 위안부 문제 타결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추진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위해 한일간 첨예한 사안을 가능한 빨리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한마디로 피해당사자를 무시하고 미일간의 이해관계에 맞춰 진행된 것이라는 의미다. 결국 이번 타결은 일본으로 하여금 한반도내 영향력 확대와 군사진출의 길을 터주게 될 것이다."
다시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되돌아가보자. 역사는 반복되는가? 그렇다. 미국은 110년 전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고자 일본과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고 한반도 병탄에 힘을 실어줬다. 오늘날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 차단을 위해 다시금 일본에 힘을 실어주고 나섰다.
그러나 비관만 할 수는 없다. 이번 합의는 그저 합의일 뿐, 최종적으로 합의문이 마련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번 합의는 결함 투성이다. 근본적으로 위안부 동원의 불법성, 그리고 불법의 주체가 일본 정부임이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또 협의문은 아베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협정 체결 당일인 28일 아베의 부인인 아키에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사실을 SNS를 통해 알리는가 하면, 기시다 외상은 일본 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의 "적절히 이전"을 언급하는 등 합의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들이 불거졌다.
110년 전 이 나라는 밀실협약의 희생양이 돼야 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한반도와 주변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정보는 곳곳에 넘쳐난다.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의 재생산과 전파도 수월하다. 그러나 국민이 깨어나지 않으면 이런 도구들은 무용지물이다. 한반도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행동해야 역사의 반복을 피할 수 있다. 지난 역사의 반복은 제2의 위안부로 귀결될 것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