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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마틴 루터의 만인사제론과 평신도의 권리와 책임

[혜암신학연구소, 2015 후기 학술강연회, 기독교회관,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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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숨밭아키브)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목차]

1. 주제 선정의 목적지향성과 오늘의 한국 기독교의 상황

2. 만인사제론이 거론된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내용분석

3. 만인사제론의 오늘의 신학적 의미: '그리스도의 몸' 교회론과 교직론

4. 한국교회의 갱신과 개혁에 임하는 평신도 참여, 권리, 책임

[1] 주제선정의 목적 지향성과 오늘의 한국기독교의 상황

계몽주의 시대이후 오늘날 지구촌의 열린 사회에서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의 원리들은 인문주의 정신과 더불어 종교개혁 정신이 큰 영향을 주었고, 종교개혁정신의 세속적 실현들이다. 특히 국가가 강요하는 국가이데올로기와 국가종교에로 부터 자유, 인간양심의 자유, 전통과 거룩한 권위에 대한 비판적 자유정신이 그러하다.

오늘 우리들의 주제는 '마틴 루터의 만인사제론과 평신도의 사명'이다. 주제가 설정된 배경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연구 콜로키움, 특히 루터신학의 한 특정주제를 연구하자는 전문신학자들의 학술세미나는 아니다. 루터신학 전공자가 아닌 필자가 주제발제자의 한 사람으로 선정된 사실이 그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주제선정의 목적 지향성은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위기상항 에서, 교회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모두가 입을 모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교회의 갱신과 개혁을 가능하도록 추진할 변혁의 힘은 목사들이나 전문신학자들에게서 나오리라고 기대하기보다는, 신실하고 능력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특히 평신도들의 참여와 공헌이 절대필요한 시점임을 절감한데서 온다.

'만인사제직론'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는 루터의 신학적 논문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서문에서, 마틴 루터 자신이 이 논문을 쓰는 목적을 다음같이 피력하고 있다.

이제까지 나는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우리 계획에 따라서,

그리스도교계의 개선에 관한 몇가지 문제를 모아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평신도의 노력을 통하여 그의 교회를 도와주실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일을 당연히 더 행해야 할 성직자가 전혀 무관심해졌기 때문 입

니다.

'독일 크리스챤 귀족들'과 한국 개신교 교회를 구성하는 '평신도들' 사이에 무슨 동일성이 있는가 하고 의아해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위 인용문을 이해하려면, 종교개혁당시(1517 전후) 교황청을 중심으로 교황, 추기경, 주교, 사제, 감독들로 구성된 '성직질서' 계급사회와 신성로마제국을 이루고 있는 '세속질서'에 속한 사람들, 특히 독일민족의 선제후들, 귀족들, 기사들, 평신도 지식인들과의 이중적 대립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루터의 종교개혁시대 유럽사회는 루터가 '두 왕국론'을 강조하지만 본질적으로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들이 하나로 엉클러진 유기체적 '크리스텐돔'(Christendom)이었다. 교황청과 성직질서는 다음에 본론에서 살펴보게 될 '로마의 3가지 담(성벽)'에 의하여 '세속질서' 지도자들은, 교회와 사회의 개혁필요성을 절감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개혁운동에 참여할 수 없도록 막아놓았다. 마틴 루터는 '로마의 3가지 담'을 신학적 논문을 통해 헐어버림으로써 '세속질서'의 사회지도자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구체적 중요지체들인 평신도들로 하여금 교회개혁에 나서도록 그 책임과 권리를 일깨워주려는 논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표면상 논문의 논제는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이지만, 실질 내용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곧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개혁동참을 구체적으로 촉구하는 '평신도 동원령' 이다. '독일 크리스챤 귀족들'은 오늘날 한국 개신교 교회안에서 말하면 능력과 신앙심을 가지고 한국 개신교 교회가 개혁되기를 바라는 '지도적 평신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그에 앞선 개혁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개혁의 초점이 단순한 당시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을 공격하는데 있지 않고, 왜 거룩한 교회가 그렇게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는가를 신학적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안에서 밝히고 '근본적 개혁'(radical reformation)을 이끌어갔다는 점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한국 기독교의 위기의식은 날로 심각해져 가는 형국이다. 최근 실시된 <2015년 한국의 사회 정치 및 종교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에 의하면 종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천주교(39.8%), 불교(32.8%)에 이어 기독교(10.2%)는 한국사회의 종교교세를 3등분하는 종단들중 기독교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성직자에 대한 신뢰도는 신부(51.3%), 승려(38.7%), 목사(17%) 순위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기독교(42.6%), 천주교(36.3%), 불교(26.7%) 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영향력이라는 개념이 긍정적 면과 부정적 면이 모두 내포된 개념이지만, 개신교는 이 통계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좀 더 깊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한국기독교의 위기의식 속에서, 그리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신학계와 교계는 각종 의미있는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그 중에도 지난 10월 29일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회집된 <2017 종교개혁500주년 개혁갱신 실천대회>에서, 개신교의 개혁을 갈망하는 다향한 교단 지도적 목회자들의 진지한 기도, 참회, 설교, 성명서 채택이 있었다. <한국교회 개혁을 바라는 성명문> 내용의 방향은 옳았고 그 다짐도 참여자 모두 진지했다. 그렇게 다짐한대로 개혁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문제점을 발견한다. 개혁운동에 한국기독교를 현실적으로 구성해가는 평신도 지도자들의 적극적 지도력 참여는 전혀 안보인다는 점이다. 순서맡은자 99%가 성직자들과 전문 신학자들 이다.

한국개신교 개혁의 성패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가 개혁되어야한다고 절감하는 평신도지도자들과 평신도 전체의 대거 참여의식, 그리고 '책임과 권리'를 담보하는 제도적 개혁 뒷받침 없이는 열매없는 무성한 나뭇잎들의 '소리잔치'로 끝날 위험이 많다. 오늘 주제의 심각성은 거기에서 부터 유래한다. 만인사제론의 신학적 근거와 그 주장의 참 목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만인사제론이 거론된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내용분석

주지하다시피 마틴 루터(1483-1546)는 단순히 기독교라는 역사적 종단 안에서의 개혁자가 아니라, 인류세계사 안에서 '역사적 대변혁'을 일으킨 개혁자였다. 그의 사상과 신념은 인류사회에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비진리에 저항의 자유, 한마디로 <개인의 존엄성과 공동체 일원으로서 공동책임성>이라는 근대이후 인류문명의 기본골격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우리는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의 본질은 신학적으로 말하면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 재발견이며, 그 천명이며, 그 실천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틴 루터는 기독교사상사 2,000년 동안 출현한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의 교부, 교회의 박사' 칭호를 받기에 걸맞는 10명의 대사상가에 들어가지만 오리겐, 안셀름, 아퀴나스, 칼빈, 칼 바르트등 대신학자들처럼 그의 신학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종합정리한 신학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루터연구 학자들은 종교개혁과정에서 분수령을 이루는 1520년에 루터가 쓴 3대 논문 곧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1520년 8월), 「교회의 바벨론 감금」(1520년 10월), 그리고 「크리스챤의 자유」(1520년 11월)는 '종교개혁의 영원한 기념탑'이고 '루터가 공헌한 빛나는 보배'로서 종교개혁정신의 본질을 명료하게 천명하는 논문들이라고 본다.

위에서 언급한 루터의 3가지 논문중에서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안에서 루터이전 1천년간 로마바티칸 중심의 서방세계를 지탱해오던 3가지 권위주장 곧 ①영적질서 세계에서 교황은 불가침적 최고권위를 지닌다는 주장 ② 성서해석에서 교황과 성직자만이 유일한 해석권한을 가진다는 주장 ③ 교회의회, 곧 공의회 소집권한은 교황에게만 있다는 주장을 루터는 비판하였다. 왜냐하면, 이 세가지 배타적 주장은 루터당시 그리스도교 교회의 온갖 타락과 비진리를 개혁하려는 열망이나 시도를 근원적으로 제약하고 억압하고 은폐하는 '로마의 3가지 담'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루터의 '만인사제론'은 위 세가지 잘못된 허위적 권위를 성서신학적으로 비판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나타나게 된 주장이었다.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 루터신학자 지원용박사는 다음같이 말한다.

루터는 이 논문에서 직업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신자간의 근본적인 차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첫째와 둘째담을 파괴하였다. 하나의 세례와, 한 분 하나

님과, 하나의 신앙을 가진 평신도들은 사제나 감독과 마찬가지로 성별(聖別)을 받았

다고 하였다. .... 셋째담은 첫째와 둘째담이 붕괴되면 자연히 허물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세가지 분야에 걸친 담들이 로마교황권을 중심으로 하여 깊이 뿌리박고 있었던

것이다.

저명한 역사가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는 루터의 이 논문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을 가리켜 "미래의 발전을 준비함과 동시에 예언하는 세계사적 내용을 지닌 책자"라고 평한바 있다. 루터의 이 논문은 논문이라기 보다는 오늘날 책분량으로 130여 페이지 분량의 저술물인데, 그 내용은 크게 신학적-종교적 기본문제를 다루는 전반부와 실질적으로 개혁되어야 할 과제와 해결할 수 있는 제안들로 구성된 후반부로 나눌수 있다. 전반부에서 앞서 언급한 '세가지 담(성벽)'을 비판하고, 후반부에서 개혁해야할 구체적 사항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루터가 지칭하는 '로마교도들'(Romanists)이란 바티칸의 교황권을 절대옹호하고 그 성직질서에 근거하여 세속적 이익을 탐하는 종교개혁 당시 부패한 카토릭교회 기득권자들을 칭하는 것이다. 루터는 이 논문 첫장 처음문장에서 문제와 논제를 다음같이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다.

로마교도들은 퍽 교묘하게 자기들 주위에 세가지 담(성벽)을 쌓아 놓고 그 뒤에서

이제까지 자신들을 방어해왔다. 그리하여 아무도 그들을 개혁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전그리스도교계를 통하여 번진 무서운 부패의 원인이 되어왔다. 첫째로, 로마

교도들은 속권(俗權)에 의하여 억압을 당하면 법령들을 만들어 속권은 그들에 대하여

아무 지배권도 없으며, 오히려 영적인 권능이 속권 위에 있다고 말해왔다. 둘째로, 로마

교도들을 성서에 의거하여 책망하려 하면, 그들은 교황 외에는 아무도 성서를 해석

할 수 없다고 이론(異論)을 제기한다. 로마교도들이 공의회에 의하여 위협을 받으면

교황 외에는 아무도 공의회를 소집할 수 없다는 거짓말로 답변을 한다.

루터는 교황, 주교들, 사제들 및 승려들을 '영적계급'이라고 부르고 군주들, 영주들, 직공들 및 농부들을 '세속적 계급'이라고 부르는 당시 통상적인 '영적-세속적 직업의 이분법적 신분구별'과 후자에 대하 전자의 상위질서론을 순전히 거짓, 조작, 위선이라고 비판한다. 비판근거는 고린도전서 12장 바울사도의 '성령의 은사'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론에 근거한 각 지체들의 동등성과 기능적 분담과 상호유기적 협조론을 통해 주장한다(고전 12:1-12). "모든 크리스챤은 참으로 '영적계급'에 속하며 그들 가운데는 직무상의 차별이외는 아무것도 없다...세례와 복음과 신앙만이 우리를 '영적으로' 되게하고 같은 크리스챤이 되게하기 때문이다" 라고 선언한다.

바로 여기에서 루터는 만인사제론의 성서적 근거를 제시한다. 특히 베드로전서 2장에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벧전2:9)이라는 성경말씀과 요한계시록 성구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계5:10)를 성경구절로 제시하면서, 로마교도들이 '교회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성직질서의 특권계급을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같은 페이지에서 주교나 성직자의 특별한 임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주교가 성별(聖別) 할 때에, 그것은 모두가 동등한 권능을 가진 모든 회중을 대신하여 그들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여 그에게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이 권능을 행사하도록 맡겨주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그리하여, 루터는 세속적인 정치적 통치자, 관리, 구두수선공, 대장장이, 농부도 각기 자기들의 일과 직무를 맡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다 성별받은 사제와 주교와 같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루터의 만인사제론과 세속직업의 신성성이라는 신학적 근거가 있다.

바로 이어서 루터는 당시 바티칸 교황청을 중신으로 하는 또다른 하나의 굳건한 자기방어의 성벽이 되고 있는 것 곧 최종적 성서해석자인 교황권과 교황무오론을 반박한다. 이것은 교황개인의 특권과 도덕적 우월성을 비판하려는데 그치지 않고 교황으로 상징되는 '성직질서'의 특권과 비판불가성 주장을 이데올로기적 독단과 독선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려는 것이다.

루터는 평신도들 중에도 성서에 대한 참된 이해와 더 깊은 영적해석을 가질 수 있으며, '베드로에게 주어진 열쇠'는 베드로 개인에게 주어지 것이라기 보다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전체 교회공동체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루터는 사도신조 제3항에서 고백하는 "하나의 거룩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진정이라면, '하나의 거룩한 그리스도 몸으로서 교회공동체의 지체들' 곧 평신도들도 거룩하며, 교황과 성직자들처럼 진실한 신앙, 성령의 감동감화, 성경의 바른이해, 그리스도를 닮은 말씀과 정신을 담지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루터는 이어서 당시 로마교황청의 교황과 부패한 성직자들을 방어하는 인위적 성벽 3번째의 부당성을 비판하는데, 그것은 공의회 소집권한이 교화에게만 속해있다는 당시 교회법의 잘못에 대한 비판이다. 이것은 당시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공의회가 소집되고 진지하게 비판적 성찰을 해야하는데, 도리혀 교회개혁을 주장하는 교권비판 세력을 견제하고 기피하기 위하여 자유로운 공의회 소집을 저지하거나, 교황의 권위를 악용하는 것에 분노를 하는 것이다. "주께서 주신 권세(권위)는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교화하기 위하여) 하신 것이니"(고후 10:8)를 인용하면서 교회개혁과 죄로 불타고 있는 교회를 불구덩이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평신도들이 공의회소집을 주장해야 하고, 그것이 권리이자 의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바 처럼, 마틴 루터의 소위 '만인사제론'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직을 갖고 있다는 일반적 종교철학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챤 평신도들이 특별한 전문직 훈련과 공동체의 위임을 받고, 그리고 그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소병을 받아 훈련받고 사제직으로 서품 받아 성실하게 직무에 충실하는 '참 성직자들'의 권위와 기능을 무시하고 평신도들이 모든 것을 관여하고 지배하겠다는 이론이 아니다.

교회개혁의 제일차적 책임자들인 성직자 집단이 그 책임을 직무유기하고, 도리혀 은밀하게 교회부패와 타락의 원인제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살려내기 위하여 평신들이 들고 일어나야 된다는 것과, 그 권한과 책임을 강조하는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지론이 '만인사제론'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루터의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의 제2부에 해당하는 서론에서 루터 자신이 그 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제는 공의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일들에 대하여 고찰하려고 한다. 이것은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모든 학자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밤낮으로 전심

해야 할 일들이다. 그러나 만일 이 의무를 도외시 한다면, 파문과 위협에 개의치 말고

평신도들과 세속적인 당국자에게 이 일을 행하게 하라.

그러므로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의 제2부 내용은 교회를 이루는 신도공동체가 소집을 요청하여 회집될 공의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16세기 당시 기독교계(Christendom)에 만연한 비성서적이고 반신앙적인 적폐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그 개선책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주로 교황청과 성직자들의 근거없는 특권과 사리사욕과 불필요한 교회법령들을 폐기하거나 개혁할 것을 요청한다.

교황권에 관한 개혁만이 아니라 형식화되고 신앙의 본질이 변질된 탁발수도단, 수도원제도, 성직자들의 독신주의, 미사의 남용, 대학교육과 신학교육의 부실화, 경제개혁과 사회개혁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주제들과 구체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그 개혁을 주장한다. 루터시대의 사회와 교계의 상황이 오늘과 다르며, 구체적 개혁의제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루터가 말하려는 근본정신은 그 때나 오늘의 한국교계의 개혁을 위해서 동일하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첫째, 루터는 위 논문 제2부에서 그가 로마교도들이라고 통칭하는 당시 교횡권을 정점으로하는 성직자들의 권위 부풀리기를 비판한다. 한마디로 성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는 종으로서 대리직'을 지상에서 수행하는 것이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황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아니라 지상에 걸어다니신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지금은 로마교도들이 이것을 뒤엎고 그리스도에게서 하늘의 지배자의

형태를 빼앗아서 교황에게 주고, 종의 형태는 완전히 멸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루터의 위 언급은 교황권과 황제권의 상호견제 보완상태를 무시하고 교회의 황제권에 해당하는 세속권까지 독점하려는 작태를 비판하는 것이지만, 신학적으로 보면 관활지배권에 대한 문제보다는 교황으로 상징되는 성직자들이나 총회, 노회, 당회등 직무와 기능의 본질에 관한 종교개혁자 루터의 견해가 중요한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지상에 걸어다니신 그리스도' 직무의 대행자 곧 자기비움과 낮춤, 섬김, 수난, 천국복음 선포, 치유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행자 일 뿐이라는 것이다.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主)로서 영광가운데 높여지신 '영광의 그리스도 주권'을 대행한다고 착각해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그런 자세나 태도는 '적그리스도' 혹은 '반(反)그리스도'가 된다고 경고한다.

둘째, 루터는 당시 타락한 교계일반의 신령하고 경건한일들이라고 여기는 타성을 질타하면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않고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는 예수님의 사람생명 중심의 교회직제와 성직목회의 본질을 밝히고 있다.

사랑은 로마의 교황권보다 더 크고 더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랑없는 교황권은 있을

수 없고 사랑은 교황권 없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교황이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는 그의 교황권과 모든 소유물과 명예를 마땅히

저버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오만한 권위를 조금이라도 양보하기 보다는

오히려 세계를 멸망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장 거룩한자'가 되려고 한다.

위에서 인용한 마틴 루터의 진지한 탄식과 비판의 목소리가 단순히 중세기 타락했던 당시 로마교횡청 산하의 성직자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말 할 수 있을가? 오늘날 한국개신교의 타락과 교회권위의 몰락책임은 일차적으로 기독교 목사들에게 있다. 일부목사들은 자신들의 '오만한 권위, 소유물, 명예'를 지키려고 목양의 양들을 자기양이나 소유물처럼 생각하며,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유능한(?) 목회자 개인의 종교기업체라고 생각하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직매매, 목회직 자녀승계, 심지어 교회당과 교회공동체의 명의변경을 팔고 사는 기막힌 현실을 이해 할 길이 없다.

셋째, 대학교육과 신학교육에서 개혁의 필요성을 루터는 구체적 개혁대상의 사항으로 적시하고 있다. 루터시대와 우리시대가 계몽주의 시대이후 본질적으로 달라지게 되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므로 대학교육에서 기독교신학을 가르치라거나 성경을 가르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루터가 말하려는 본질은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으로 대별되는 오늘날 대학교육에서 '리성'이라는 이름으로써 '궁극적 관심으로서 종교'(틸리히)문제를 '사적인 일거리'로 퇴출시키고, 소위 합리성 능률성 실용성 위주의 대학교육이 되어버렸다는 비판이다. 심지어 신학교육에 있어서도 저명한 신학자들의 전문서적들이 주(主)텍스트가 되고 성서가 부(副)택스트로 전락하여 본말이 전도된 것을 비판한다.

교황과 황제의 대학교들은 문학박사, 의학박사, 법률학박사, 명언집 박사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박사는 하늘에서 오신 성령 외에는 아무도 만들지 못하리라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평신도이건 사제이건, 결혼한 자이건 처녀이건 간에 이러한

박사들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되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바란다.

루터가 강조하려는 것은 진정한 '신학박사'는 신학 박사학위 상징인 붉은 가운이나 학위모자 곧 '형식적 학위증'이 담보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가르침과 내적조명에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본질'을 바르게 파악하고 증언과 삶으로 나타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진정한 '신학박사'는 직업교수의 독점물이 될수 없다는 것과, 검소한 목사직 예복보다도 박사학위 가운입기를 더 즐겨하는 목사들을 경고한다. 더욱이 진정한 '신학박사' 능력은 모든 평신도들에게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만인제사직론이 담겨있는 마틴 루터의 저술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의 중요내용과 그 논문이 추구하려는 근본적 목적지향성을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과제는 루터의 그 논문이 오늘날 한국기독교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추동력이 되고 발판의 근거과 되기위해서 특히 어떤 신학적 주제를 붙들어야하며, 구체적 개혁사항과 방법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루터는 16세기에 살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크리스텐돔(Chrlstendom)에서 살았고 우리는 종교다원사회와 '세속화된 성인사회'를 살고 있는 한국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3] 만인사제론의 신학적 의미: '그리스도의 몸' 교회론과 교직론

오늘 우리의 관심은 16세기 루터의 논문을 교회사적으로, 기독교 사상사적으로 공부하자는데 있지 않고, 그것이 지닌 오늘의 '신앙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고자 하는 것이다. 전자의 연구는 전문적 교회사가, 기독교상상사 연구가, 조직신학자들의 몫이다. 오늘 우리의 과제는 중세말기의 서방기독교 처럼 '부패와 몰락위기'에 처한 한국 기독교를 어떻게 다시 개혁해낼 것인가 사명의식을 가지고 마틴 루터 박사의 논문을 참고하여 지혜를 얻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루터의 3대논문중 특히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 안에서 '그리스로 몸으로서 교회'라는 교회론, 그리고 성직자들의 사제직과 교직의 본질파악, 그리고 평신도신학의 바른 정립에 우리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1) '그리스도의 몸'과 '성도의 교제'로서 교회

마틴 루터의 교회론은 핵심은 '성도들의 공동체'로서 교회개념인데 이것의 성경적이고 보다 유기체적 은유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론이다. 루터의 만인제사작론은 이 교회론 위에 서있고, 그 교회론 위에서 타당성을 갖는다. 루터신학자 파노마는 다음같이 말한다.

(루터에게 있어서) 교회는 언제나 '성도들의 교제'(communio sanctorum)였다. 그에게 있어 늘 주된 것은, 거룩하고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내적 본질이었다. 루 터는 그의 중요한 논문 「공의회들과 교회들에 관하여」(1539)에서 외적인 제도로서의

교회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룩한 사람들의 통일체 인 교회의 내적 본질에 대해서만 논했다.

루터는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속에서 평신도들의 '보편적 사제직'을 언급할 때 그 성경적 근거로서 시도바울의 서신에 나타난 '그리스도 몸'으로서 교회론과, 사도신경 고백의 제 3항에 나타난 "거룩한 교회(공회)를 믿으며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고백문 구절을 신학적 근거로 제시하였다. '성도의 교제'란 세가지 의미를 갖는데 사귀임, 참여, 나눔이다. 교회의 본질이해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몸' 교회론은 루터에게 있어서 핵심을 이루며, 현대신학에서 20세기 순교자 본훼퍼가 강조한 이후로 특별히 새로운 재조명을 받았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져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것이 아니니,

이와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롬 12:4-5)

"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12,27)

교회의 본질과 핵심기능을 이해하는 교회론에서 등장한 여러 가지 다양한 은유들이 있다. 예들면, '노아의 방주', '새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 '미시오데이(missio Dei)에서 선교의 전진기지', '그리스도의 몸' 등이다. 각각 강조점과 교회기능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지만, 현대신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중요성을 가진 교회본질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라는 것인데 루터의 논문에서 가장 강조되는 교회론이기도 하다.

교회의 그 기능은 '설교와 성례전이 올바르게 수행'되는 복음운동이다. 복음운동은 곧 '하나님의 나라'운동과 동일개념인데, 하나님의 나라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방식과 그의 뜻을 체현(體現)하는 양태를 지니며 요즘 언어로서는 '생명, 정의 평화'가 온누리에 실현되도록하는 예수닮음이요 예수살이 이다.

만인사제직론을 신학적으로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론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론은 단순한 '은유'를 넘어서 신령한 실재로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말하면 사람의 몸은 시공속에서 구체적 형태를 지니고 존재하는 유기체적 생명체이듯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시공속에서 구체적 형태를 지니고 나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구체적 현존체(現存體)'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몸으로서 교회론'은 "너희는 그리스 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부분이라"(고전12:27) 말씀으로서 압축되는 바울의 은사론에서 '다양한 은사의 그 유기체적 통일성및 동등성'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몸은 살아있는 세포들의 유기체적 통일체이다. 세포는 모여서 심장, 폐, 오장육부, 두뇌, 신경조직, 피부, 그리고 얼굴에 집중된 시각 청각 후각 기관을 이룬다. 그런데, 각각의 신체기관들은 다른 기능과 독특한 모양을 갖지만 각기관을 이루는 기본세포는 동일한 유전자(DNA)를 그 세포핵 안에 지닌다. 현대 분자생물학과 의학에서 실현한바처럼 유전자복제와 줄기세포이식수술이 가능한 것은 하나의 세포는 전체를 그 안에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깊은 은유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적용된다. 교회란 교회당 건물, 성직자 위계질서, 총회 노회 당회등 행정조직체, 단순한 종교인들의 무리가 아니다. 교회는 각자의 생명 속에 '예수그리스도의 영적생명체 디엔에이(DNA)'를 지닌 성도들의 유기적 집합체이다. 여기에서 성직자와 평신도는 심장기능, 간기능, 근육골격기능이 다르듯이 기능이 다를 뿐,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세포들이며, 서로 뗄수 없이 유기체를 이루는 기관들이다. 줄기세포이식수술이란, 기능이 상실된 병든 신체기관에 이식하여 해당기관의 세포기능을 되살려 내듯이 평신도는 줄기세포 기능을 실행 할 수 있다.

(2) 교직론; 목사직의 고유한 위상과 한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비판이론중 우리가 경청할만한 지론은 다음같다: "모든 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기존의 사회구조를 옹호하며 지배계급의 관심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가진다". 그리스도교회의 성직질서가 비판이론이 적용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닌단 말인가라고 성직자와 경건한 신도들은 강하게 저항 할 수 있다. 물론 본래 성직은 이데올로기 초월적 이지만, 현실적 교회직제와 제도도 하나의 땅위에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경고를 경청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안에서, 성직자가 담당하는 교직(敎職)의 본질과 고유한 직책이 무엇인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김균진은 그의 다섯권으로 집대성된 최초의 한국신학자가 쓴 완결된 『기독교 조직신학』제4권 교회론에서 다음같이 분명하게 절정리해 주었다.

교직은 공동체를 지배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섬기기 위하여 존재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는 그리스도만이 머리이다. 그 밖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평등한 지체들이다. 이 몸 안에는 교직자 혹은 성직자 계급이라

고 하는 특별한 지배계급이 있을 수 없다. 그것(교직, 성직)은 교회법, 교회전통, 성례전 을 집행 할 수 있는 권리에 근거한 지배 혹은 통치에 있지 않고 섬김 혹은 봉사에 있 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거룩한 성도공동체' 교회 안에서는, 목사나 신부가 맡은 특별한 전문직으로서 교회회중에서 위임받은 특별직능 곧 설교, 성만찬 집레, 성경교육등을 맡지만, 그 교직의 직책은 평신도들과 신분상의 차별을 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수받은 목사나 신부가 없거나 특별한 경우엔 평신도들도 설교, 성만찬 집례, 성경교육등을 담당 할수 있다는 주장이 개신교의 '만인사제론'이 갖는 의미한 한가지 이다.

그러나, 개신교교회의 출발을 견인한 루터자신이 전문적 성직자나 심지어 교직의 존재의미와 그 기능을 부인한 것 아니다. 목사가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관계에서 받은 소명의식과 교회공동체로부터 위임받은 구별된 교직자로서 특별기능과 권위를 부정하거나 평신도들이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다.

가톨릭 교회론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이후, 교회란 성직자와 평신도로 이뤄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규정하여 평신도의 위상과 권리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안수받은 성직자들의 '사목적 내지 지배적(교도적) 사제권'은 평신도들과 더불어 공유하는 '보편적 사제직'과 구별하여 안수받은 사제들은 '사제직의 본질과 등급'에서 평신도들과 구별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루터의 만인사제론이 말하려는 핵심은, "교회의 모든 직분들은 평등하며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그들은 단지 각자가 받은 은사와 기능에 따라서 구분될 뿐이다....사제계급과 평신도의 계급적 구분이 철폐되었고, 성속의 이원론적 구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신도의 권리만이 아니라 그만큼 책임이 더해진다. 교회부패와 타락에 성직자와 평신도가 모두 책임이 있다. 특히 오늘날, 개신교의 타락의 원인중 하나는 목사들의 성직자로서 자기의식이, 구약시대 제사장들의 자기의식에 사로잡혀 있거나 중세기 성직자계급 못지않은 특권의식, 사목적 권력행사, 전제적 지배체제 구축과 교회운영, 비판을 불허하는 신성불가침주장등의 허위의식에 있다.

줄여 말하자면, '만인사제직론'이라는 신학적 담론의 명제는 소극적으로 말하자면 루터당시 가톨릭교회의 부패한 성직자들의 특별사제직을 거부하는 논쟁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교직자(안수받은 성직자)에게 맡겨진 구별된 책임(설교, 성만찬 집례, 성경교육등)은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신도들의 공동책임이요 공동권리이지만, 그것을 교직자는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신도공동체를 '대리'하여 그리고 신도공동체의 '위임'을 받아 수행할 뿐이라는 것이다.

[4] 한국교회의 갱신과 개혁에 임하는 평신도 참여, 권리, 책임

이상에서 우리는 16세기에 활동했던 마틴 루터의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주는 글」을 중심으로하여 종교개혁 사상의 하나인 '만인사제직론'의 주장동기, 성경적-신학적 근거를 교회론과 관련하여 일별하였다. 그러나, 다시한번 루터의 '만인사제론' 담론이 성경박사로서 혹은 전문신학자로서 '교회론'을 집필하는 학술적 과업을 진행하는중에 등장한 신학담론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논문 서두에서 강조한바처럼, 매우 시급하고 실천적 관심에서 주장한 것이다. 그것은 당시 교회가 부패하여 절망적 상황인데, 개혁에 전념해야할 성직자들과 전문신학자들이 개혁임무를 방기하거나 도리혀 지속하려들고, 평신도들은 무력감과 자기책임이나 권리가 아니라고 체념하여 방관자 입장을 견지하는데 대한 질책과 일깨움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만인사제직론'이라는 종교개혁담론을 현대 한국기독교 현실에 대입하여 생각할 때, 시대는 다르나 문제의 본질은 동일하며, 개혁해야 할 구체적 과제목록은 시대에 따라 다르나 본질은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각종 여론조사에 나타난 한국기독교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비판의 핵심 5가지를 정리하면 무엇인가? ①교회운영의 성직자 독단과 비리부패 ② 목회자의 성적타락과 도덕성 피폐 ③ 교회대형화에 따르는 세습과 성직매매 현상 ④ 헌금으로 조성된 교회재정의 불투명성과 오남용 ⑤ 개교회중심주의와 교파분열및 배타적 선교정책등이다.

한국 기독교는 깊은 병에 걸려있는 중환자 같다. 근본적 시술이 시급하게 요청된다. 각종 집회에서 신앙적 회개다짐, 성경과 하나님 신앙으로 돌아가기, 성직자 맘 비우기등 원론적 이야기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 처방과 실천대책은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교회 개혁 가능성의 효율적-실천적 대안으로서 '만인사제직론'에 근거한 한국 평신도들의 적극적 개혁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아래와 같은 몇가지 점을 말하고 싶다.

(1) 교회개혁 주체로서 평신도 권리강화

평신도는 목회의 대상이거나 영적 교육의 피교육자만이 아니다.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핵심주체로서 보편적 사제직 혹은 공동사제직을 가지며, 교회의 개혁과 성장과 쇄신에 주인공으로 나서야 한다. 교회공의회 소집권도 포함되어야 한다.

(2) 교회조직구성의 평신도참여 제도적보장

평신도는 교회의 정치적 행정조직구조인 총회, 노회, 당회, 각종위원회에 형식적 대표성을 가지고 소극적으로 참여해서는 않된다. 성직자, 평신도, 청년, 여성, 남녀 성비에 따라 각회에 구성적으로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고 발언과 정책결정이 가능한 구조로 개혁되어야 한다.

(3) 평신도 지도자 교육과정 신설

만인사제직론은 안수받은 교직자(성직자) 평신도사이에서 권리다툼 이론이 아니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동반자이다. '만인사제직'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하여, 각 교단은 평신도 지도자교육과정을 제도적으로 강화하고 준비된 평신도들을 육성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하기는 일반교육의 '방송통신대학' 운영방식 처럼 KNCC 주관으로 '평신도 방송신학과정'이나 교단별 단기 평신도신학 교육과정을 개설함이 가능하다.

(4) 목회자의 교회재정 관여 금지

만인사제직론에 입각한 평신도의 교회개혁은 현재 고착된 한국기독교의 교역자중심의 '전횡'을 견제하고 건설적으로 비판하여 보완하는 기능을 확보해야 한다. 교역자는 특히 복음증언의 설교, 성만찬의 바른 집례, 은혜로운 성경교육등 본무에 전념하게하고, 일체의 교회 재정운영과 헌금관리에 관여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대부분 대형교회 목회자의 타락과 불미스런 사건사고는 담임목사가 교회 재정운영구조에 직접관여 하거나 집행하는데 있다.

(5) 성직자 목위위임 7년제 재위임제도 정례화

교직자와 교회장로들의 7년마다 재신임을 묻는 교회법제정을 일반화해야 한다. 일부교단과 일부교회 규정으로서 목회자 재신임제도를 시설하고 있지만, 현재 개시교 대부분 교회는 70세 은퇴까진 종신제나 다름 없는 장기적 위임목회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크다. 성직자의 목회위임제도는 주님으로부터는 '대리'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는 '위임'의 성격이 짙은 것이다. 정치적 독재자의 무기한 장기집권이 문제이듯이, 교역자의 무기한적 위임제도는 목회자의 교권전횡, 도덕적 타락, 신학의 지속적 연구및 경건수련 태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6) 에큐메니칼 교회론 회복

만인제사직론에 기초한 평신도신학은 에큐메니칼정신에 투철한 것이라야 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논리에 '베벨론포로'가 된 개교회주의 종교왕국을 극복하고,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Credo in.....unam sanctam catholicam et apostolicam ecclesiam) 라는 교회의 본래표지 혹은 본래속성을 회복해야 한다.

(7) 70인 복음신앙 추밀원 구성

헌법적 '종교자유및 정교분리' 원칙을 오남용하거나 방편으로 내세워, 기독교 교회 전체명예와 신뢰성을 실추시키는 사이비 개신교 목사와 이단집단을 견제하고 발본색원하기 위해, 보수교단과 진보교단을 아우르고 평신도가 참여하는 '70인 복음신앙 추밀원(樞密院)'(가칭)을 발족시켜 '혼란과 무질서의 종교집단'으로 매도되는 오늘의 기독교계를 정화시켜야 한다. 사이비 기독교교파와 목회자 난립을 방임하고 아무런 공동대응하지 않으면, 한국개신교에 대한 일반국민의 신뢰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8) 잠재적 평신도 인적자원 활용

한국 기독교 교회안에는 지난 130년동안 순수한 예수의 복음정신에 의하여 거듭나고 따르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에 종사하는 귀중한 인적자산이 많이 있다. 그들은 모두 평신도들이다. 그들의 지식과 지혜와 능력을 동원하고 결합하여 '계몽시대 이전상태에 머물고 있는 한국 기독교'를 하나님나라의 '희망의공동체'(몰트만)로 변혁시키는데 공헌토록 만인사제직론의 현대적 의미를 실천해내야 한다.

[참고서적]

1. 지원용, 『말틴루터: 생애와 사상』(대한기독교서회, 1972)

2. 『루터선집』, 제9권. (컨콜디아사, 1983)

3. 지원용 , 『말틴루터의 종교개혁 3대논문』(컨콜디아사, 1993)

4. 지원용 , 『루터의 사상』(컨콜디아사, 1991)

5. 레나트 피노마저, 엄진섭 역, 『루터신학입문: 승리의 믿음』(컨콜디아사, 2009)

6. 김균진, 『조직신학』, 제IV권.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3)

7. 위르겐 몰트만지음, 곽미숙 옮김, 『세계 속에 있는 하나님』(동연, 2009)

8. 손규태, 『개신교윤리사상사』, 1:1. 마틴 루터의 윤리사상, 5:5.디트리히 본회퍼의 윤리 사상 (대한기독교서회, 1998)

9. 『제2차 바티칸 공의회문헌』(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1969)

10. W.D.J. 카질톰슨 지음, 김주한역, 『마르틴 루터의 정치사상 』(민들레, 2003)

11. 전경연, 『루터신학의 개요』(한신대학교 출판부, 2005)

출처: 혜암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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