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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창조된 존재라는 인식의 중요성

댄 델젤(Dan Delzell)

댄 델젤(Dan Delzell)은 최근 크리스천포스트에 싣는 정기 칼럼에서 "창조된 존재라는 인식의 중요성"이란 제목의 글을 실어 주목을 모았습니다. 전문을 아래와 같이 번역해서 나눕니다.

로봇이 자기인식을 갖고서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상상해보라.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인가? 사실 그렇다. 완전한 허구이지 않은가? 로봇들은 결코 그런 인식을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로봇의 프로그램을 조작해서 "나는 내가 창조된 것을 안다"라고 말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로봇을 위한 자기인식 기능을 개발하지는 못한다. 그런 과업은 불가능하다.

자기인식이란 "성찰의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을 환경 및 다른 개인들과 구별된 개인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을 인식하는 능력을 갖게 되면 인간은 자신을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인식하게 되므로 자기인식을 확장시킬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환경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된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밀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기인식이 자신에게 드러내 보여주는 바를 부인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들은 동물들과 매우 다르게 사고한다. 그 문제 때문에 사람들은 동물이 정확히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동물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동물이 "영적으로 중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동물이 종교적 가르침을 숙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인간과 동물은 자기인식과 영적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의 차원에서 수백 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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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출처= 나무위키)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인간만이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다"라는 간단한 사실을 인식하고 확인할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다.

다윗의 시편 묘사를 보자: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편139편13-16).

특별히 이것을 부정하는데 오랜 세월을 들인 사람이라면 이것을 안다는 것이 계시에 해당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전제를 처음에는 완전히 끔직한 것처럼 생각한다. 누군가는 우스꽝스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 전제를 부정하고 그것을 고려하지 않으려고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확인하는 것은 쉽다.

죄 속에 있으면 인간은 통제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통제권을 하나님에게조차 양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벽을 건설하고 완전히 하나님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억압적" 개념으로부터 "벗어났음"을 경험한다.

타락한 상태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거부함으로써 더 잘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를 거역한 비극적인 결과 중의 하나이다. 우리 내부의 배선은 전부가 엉켜버렸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바라보듯이 세상을 보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진리"를 필요로 할 뿐이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에 제시된 실제적 진리를 따르기보다 우리의 개인적 기준과 계산을 따라 살게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주인 편람"이다. 하지만 인간은 종종 단독비행을 시도한다. 사람들은 멈추어 서서 어디로 갈지를 묻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본성상 주인 편람을 참조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편람은 우리의 창조주가 자신의 백성에게 준 것인데도 우리는 혼자서도 그럴싸하게 해낼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인식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자리를 고쳐 앉고서는 우리가 "신"이 아니며 무로부터 출현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창조된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 어머니의 자궁에서 스스로를 창조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적절한 하나님 인식을 갖지 못하면, 우리는 우주를 통치하는 "더 높은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말할 것이다. 그리고 신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적어도 통제되지 않은 이성을 따르자면 인간이 바로 자신의 신인 것이다.

동물들에게는 그러한 인식이 없다. 동물들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동물들은 책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나라를 가로질러 차를 몰지도 않는다. 동물들은 직업 목표를 설정하지도 않고 종교적 결정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는 현격하게 다르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그런 생각을 억누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실을 명백히 알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알고 있고 느낀다. 우리는 이러한 자기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영역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가 자신에게 반역함으로써 죄를 범한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한 일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창조주를 거역한 죄의 대가를 그리스도께서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행한 일에 의존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반역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지었다(롬3:23). 우리 모두는 구세주가 필요하다. 그러니 우선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기인식은 죄가 우리의 생각 속에 불러일으킨 혼란상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두려워 말라. 일단 우리가 이러한 인식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형질변화가 일어난다. 이 점도 동물들이 경험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동물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하나님께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달라고 요청하라. 믿음을 통해 예수를 우리의 영혼 속으로 영접해야 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위해 확보해놓으신 은혜를 받게 된다. 알다시피 성경은 우리가 창조된 존재라는 것을 선포만하고 있지 않다. 성경은 현세와 내세의 평안뿐만 아니라 어떻게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지도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 14장27절).

이런 평화를 오늘 누리고 싶은가? 아니면 자기통제력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발걸음을 내딛고 믿어보게 할 결심보다 더 큰가? 두려움은 창조된 존재가 자신의 창조주를 인정하지 못하게 할 때 제일 끔직한 것이다.

이제 단순한 자기인식을 넘어설 준비가 됐는가? 벽들이 무너질 시간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진리도 당연히 배우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불안한 과도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진리를 배우고 받아들이는 것은 궁극적으로 평안을 가져오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는 사실과 그분이 창조한 우리가 자유의지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실제로 놀랄만한 자유를 준다.

인간은 긍휼의 고원지대로 오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잔인함의 계곡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자유의지는 선과 악을 선택을 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놓았지만 우리를 창조한 창조주를 자기인식을 갖고서 지향할 수 있게도 한다.

오늘 일어서라. 그리고 우리를 만드신 분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배워라. 그러면 우리 또한 우리의 창조주에게 이렇게 솔직히 말할 수 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편 139편13-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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