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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적 유혹에는 절대로 경계를 늦추지 마라

"쉬운 먹잇감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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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Christian Post)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 있는 하비스트 크리스천 펠로우십 교회의 담임인 그렉 로리 목사.

그렉 로리 목사는 <크리스천포스트>지의 칼럼에서 다윗과 밧세바와 관련하여 우리가 성적 유혹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이 전문을 번역하여 나눕니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믿으며 무언가를 숭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고 싶어 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더러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명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형상으로 새롭게 빚어내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꾸기 시작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사용하기 편리한 신의 양태를 띠게 된다. "하나님께 새로 지은 옷을 입히자. 하나님이 정치적으로 엄밀한 태도를 취하게 하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자.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 내부에 있는 탐구욕을 만족시킬 종교가 필요하다. 그것이 또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양심을 달래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앞에는 성경의 하나님이 없어져버린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한 다른 신을 갖게 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실제로 잘 된 일이라고 주장하게 되는 일종의 우상숭배에 해당한다. 이것은 요원의 불길처럼 재빠르게 번질 수 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결국 통제불능이 되어서 완전히 괴멸되는 상태로 빠지게 되고 만다.

성경은 이런 일이 한 인간의 삶 속에 벌어졌음을 들려준다. 다윗 왕의 이야기는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경고로서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님과 매우 가까이 있었던 한 사람이 있다. 사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평가를 듣는 사람이다. 그는 또한 이스라엘의 감미로운 찬양 시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다윗과 하나님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시편만 읽어봐도 된다. 그는 주님께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42: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2),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63:3).

다윗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다정다감하게 사랑했다. 그런데 죄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길을 걷다가 사람들에게 "성경에서 다윗에 관해 무엇을 기억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대개 다윗과 골리앗을 언급할 것이다. 그리고 다윗과 밧세바를 기억해내기도 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다윗의 위대한 승리와 ... 그의 최대의 실패를 표시해주는 인물들이다. 엘라 계곡에서 다윗은 돌멩이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트려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그는 밧세바에 의해 쓰러트려져서 최대의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

밧세바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악녀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윗을 타락시키려고 유혹한 여성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실제로 다윗이 거의 일방적으로 이 일을 저질렀다. 분명 그녀도 협조하기는 했지만 다윗이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짧은 순간의 쾌락을 즐긴 대가로 다윗은 평생 후회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다윗이 밧세바가 언제 어디서 목욕을 할 것인지 알고서 그녀를 볼 수 있는 장소로 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떤 경우이든 다윗이 그 이후에 한 일은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

여기서 '보는'을 나타내는 그리스어는 그저 일상적으로 의도 없이 스쳐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행위, 의도적이며 반복적인 응시를 가리킨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보며 산다. 그것이 게시판이나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스크린이나, 혹은 당신 앞에서 가로질러 가는 누군가일 수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그냥 보는 것과 모종의 장소로 가서 당신이 보려는 것을 보는 것은 다르다.

다윗은 그렇게 보았다. 그런 뒤에 죄가 그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생각을 뿌리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뿌리면 습관을 거두며, 습관을 뿌리면 성격을 거두고, 성격을 뿌리면 운명을 거둔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욥이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욥31:1)고 말한 것이다.

다윗은 밧세바를 응시했고 욕망이 솟구치는 것을 허용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야의 아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거기서 멈추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죄의 사슬에 걸려서 계속 끌려가고 말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쉽게 죄를 범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우리가 선을 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앞에 장애물을 두신다. 그분은 모종의 일이 벌어지게 하신다. 그 일은 앞에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고의 신호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먼 채로 앞으로 가고 만다. "이것은 나와는 상관없어. 나는 다르잖아. 나는 괜찮아. 나는 처리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야고보서의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다윗에게서 이와 같은 양태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살펴보자. 첫째, 그는 옥상에 한가하게 앉아서 욕망에 이끌리다가 문젯거리를 만났다. 둘째, 그녀는 아름다운 여인에 의해 매혹 당했다. 셋째, 욕망이 잉태되었을 때 죄를 낳았다. 다윗의 경우는 미리 계획된 간통이다. 넷째, 죄가 자라도록 허용되면 죽음을 초래한다 - 밧세바의 무죄한 남편인 우리야의 죽음을.

다윗은 죄를 지었고 용서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뿌린 씨의 결실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바로 그 죄들이 자식들의 인생 가운데 반복되는 것을 보았다. 잠언6장32절이 말하는 대로,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한다.

한 사람의 간음죄는 널리 퍼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강력한 죄의 치명적인 영향에 대해 경고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강렬한 사랑과 당신의 배우자에 대한 사랑만이 성적 유혹의 거친 물결을 헤쳐 나가도록 도울 것이다. 다시 유혹을 당하지 않을 비책이 있는지는 나는 모른다. 유혹과 싸우는 것은 날마다 벌어지는 전쟁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매일 유혹과 더불어 산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하고 싶다: 당신이 멈추어서 경계를 늦추는 순간 당신은 쉬운 먹잇감이 되어버리고 만다.

글/ 그렉 로리(Greg Laurie)

가사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sexual-temptation-sin-lust-bible-psalms-david-bathsheba-regret-157320/#AWAsJzgr3ScXaTfk.99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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