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성령 사역으로서의 메시아 사역
1. 성령 사역자로서의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었다.
1) 하나님의 본체인 나사렛 예수
나사렛 예수는 지극히 낮은 신분으로 초라한 나사렛 시골에서 성장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 유대교 종교지배층으로부터 초라한 지역의 출신으로 무시를 당했다. 그러나 그는 영적 원천은 하나님의 본체셨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구속을 위하여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인간이 되셨다. 초대교회 그리스도 찬가는 이러한 예수의 모습에 관하여 노래하고 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 2:6). "하나님의 본체"(μορφῇ θεοu/)란 하나님의 형상(form)으로서 보이지 않는 성부의 보이는 모습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동질적 존재를 나타낸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제자 빌립에게 그가 행하시는 사역(병 고침과 축사와 이적과 기사)을 인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이심을 말씀하신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요14:10-11)
예수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14:9) 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 체험은 그의 인격 안에서 주어졌으며, 그 안에서 신적 본질의 충만함이 드러나 있다고 가르치신다. 앞서 주의 가시는 길을 알지 못한다고 질문하는 제자 도마에게 예수는 이와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14:7).
2) 와그너의 신성유보설은 비성경적이다
신사도 운동가 와그너(Peter Wagner)의 신성유보설은 성경적이 아니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사용하신 유일한 본성은 바로 예수의 인성이다"(정윤교 역, 『제3의 바람』 [나눔터, 1993], 124; Peter Wagner, How to Have a Healing Ministry Without Making Your Church Sick [Ventura, Cal., USA: Regal Books, 1988]). 와그너는 예수가 지상적 삶에서는 신성을 내려놓고 인성만을 사용했는데 이 인성은 성령의 권능에 의하여 초자연적 능력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은 성자의 케노시스(kenosis)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와그너는 성령 충만을 강조하기 위하여 신성을 대체하는 것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는 신사도 운동을 정당화하는 신학적 편견일 뿐이다(김영한, 『영적 분별』 [용인: 킹덤북스, 2014], 500-504). 지상적 삶에서도 예수는 신성을 유지하셨다. 예수가 신성을 유지하였다는 증거 중의 하나가 그가 하나님을 "아바"(abba)라고 부르신 것이다. "아바"(abba)라는 호칭은 구약의 모세나 선지자도 부르지 못한 것이요, 당시 신약시대 대제사장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라는 메시아적 자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는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신 신인으로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이다. 성령은 공생애 동안 예수의 모든 능력의 근원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메시아적 사역을 감당하는 성령의 사역자가 되신 것이다.
2. 겸손한 복음 전파자요 치료자로서의 성령 사역자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셨다. 이 복음 증거를 하시는 가운데 예수는 자신에게 오는 모든 병자들의 모든 질병을 다 치유하셨다. 예수의 사역가운데 38.5%가 치유사역과 관련되어 있다. "치유와 기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그분의 은혜와 권능을 나타내시는 특별한 순간이다"(Ralph W. Neighbour, Jr., Where Do We Go from Here? 2nd ed. [Houston, TX: Touch Publication, 2000], 164-5). 예수의 치유와 기적은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을 전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외면적으로는 하나님 나라 도래라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징표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께서 병든 자들을 고치신 것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9:36). 많은 사람들을 고쳤었으나 예수는 교만하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셨다. 예수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경계하셨다. 제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셨다. 심지어 더러운 귀신들까지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것을 금지하셨다: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막3:11-12).
마태는 이사야에 의해 선포된 야웨의 종 노래(사42:1-4)에서 온유하면서도 능력 있는 종의 실현이 예수의 인격 안에서 이루어짐을 말하고 있다.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12:18-21)
마태는 예수를 떠들썩하게 크게 나팔부는 권능 치유자가 아니라 평온함과 인내심 가운데 상하고 꺼져가는 자의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시는 성령 권능의 사역자로 그리고 있다(나채운 역, 『성지에서 보는 예수 사역의 발자취』 [서울: 성지출판사, 1994], 117; Enrico Galbiati, The Gospel of Jesus, 1992).
3. 하나님의 성령의 공급을 무한정으로 받으셨다
성령 사역자로서 예수는 인성 자체로부터 영적 능력이 나오지 않고 그의 신성을 통해서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통하면서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았다. 예수의 인성은 그의 신성과의 불가분적인 소통 가운데 있었으며 그의 신성은 끊임없이 성부와의 인격적 관계에 의하여 성령의 충만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 기도하시며 시험을 받으신 것도 성령에 이끌리어 하신 것이다(마4:1).
예수는 공적 사역을 위하여 요단강에 나아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라는 공적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고 성령이 충만한 강림으로 인간 예수에게 사역자로서의 권능을 부여하신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3:21-22).
예수께서 광야 시험을 이기시고 나사렛에서 메시아 사역을 공식적으로 시작하실 때 회당에서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으면서 주의 성령이 자신에게 임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예수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밤에 자기를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도리를 가르치시면서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공급받고 계심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3:34). 예수는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이상의 복음서 증거를 보면 인간 예수는 비록 온전한 신성을 지녔으나 인성적으로는 육신적 제한과 연약함 속에 있었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통 속에서 성령의 권능으로 항상 채우심을 받아야 하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