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홍정수 칼럼] 목회 이야기①

예수: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1980년대를 서울에서, 그것도 대학 캠퍼스에서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었다. 경제적으로 상위 계급에 속해 있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 뉴스의 중심, 현장에 근접해 있었다는 것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 기간이, 광주항쟁 희생자를 제외하고도, 417명의 젊은이들이 아우성치다 결국 목숨을 잃는 시간이었다. 신학대학에서 편히 강의만 할 수 있는 형편이 결코 아니었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 중 목숨 잃은 자는 당시 없었지만, 옥살이 정도는 여럿 했으며, 산 자나 죽은 자나 뜻이 서로 통하면, 청년도 노인도, 하나임을 체험하던 시간이었다. 군중의 함성이 능히 무력의 성을 함락시킬 수도 있음을 느낌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조직신학자로서의 나, 나에게 깊이 파고드는 질문, “너는 저들과 한패가 아니냐?” “그러면 너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조직신학의 과제가 예수 이야기를 말 되게 전달하는 것이라 배웠지만,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가르침은 힘이 없다는 게 나의 근거 없는 고집이었다. 

내 평생 가장 큰 축복은 좋은 스승 몇을 만난 것이요, 심각하게 슬프고 또 허망한 일 중 하나는 엉터리 선생들(실력 면에서든 책임 면에서든)도 많이 만났었다는 아이러니이다. 좋은 선생, 나쁜 선생, 그들의 가르침 내용은 쉽게 동일할 수 있다(베낄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함에 있어서는 사뭇 다를 수 있다.

예수, 나에게는 언제나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이시다. 92년 전후 종교재판으로 파문, 면직을 당하게 된 것도 나의 스승 예수 때문이요 예수의 은덕이다. 수많은 청년 동지들이 피를 흘리는 데, 나는 겨우 평생 준비한 직장과 직업을 잃는 것으로 매듭되었으니, 은덕이 아니고 무엇이랴?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다면, 교회에서 파문당한 자는 호적 없는 자, 살해 당해도 무방한 자의 신세였었는데..
 
80년대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천명을 받드는 자, 죽음의 길을 알고도 갈 수 있으며,” “사후, 육체의 부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메시지가 아니며, 그것은 오히려 ‘신의 정의’에 대한 관심이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당시 교회, 당시 정부(김영삼 장로 행정부)는 나를 추방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싫지만 인정해야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는 “그들과는 한패”일 수 없었던 몸이었음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결국 1994년, 5월, 전혀 준비 없이,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LA에 당도하였다. 세월은 가는 데, 가족은 본국에 남아 있는데, 예상 밖의 일을 당한 나는, (먹고)살 궁리도 잊은 채 그냥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같은 모임만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교회”를 시작하면 어떨까요? 내가? 파문당한 자가 설교를 할 수 있는가? 파문당한 자가 세례를 베풀 수 있는가? 나는 책을 뒤적였다. 가톨릭 자료를... 교회의 전통, 무시할 수도 있지만, 알고 나서 무시해야 할 게 아닌가? 결국 교회의 모든 의식은 행정적 정당성과 영적(신앙적) 유효성, 두 가지를 지니는데, 전자는 교회라는 조직체의 업무이고, 후자는 하느님의 고유한 업무라 했다. 나는 나를 파문한 적, 없으니, 결국, 교회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인도할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LA인근에 이미 1천개나 되는 한인교회들이 있는데 내가 드디어 밥벌이로 목회를 하자는 건가? 고객 유치 경쟁(전쟁)에 끼어야 한다는 말인가? 슬픈 일이었다. 하여 경영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또 다시, 이민자 사회 속에서 목회를 해야 하는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목회를 할 것인가? 해답을 얻기 위하여, Peter F. Drucker(1909 - 2005)의 경영학 책을 읽었다. 그의 질문은 명료했다: customer values를 알아라!

나는 이 말씀을, 황금률과 함께 읽었다. 하여, “내가 나가고 싶은 교회, LA 인근에 있는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나가고 싶은 교회의 기본 성격은 무엇인가?” 묻기 시작하였다. 그러기 위하여는 신학 공부를 핑계로 내 주변에 이미 모여 있던 몇몇 이민자 친구들의 삶의 정황을 깊이 알아야, 그들에게 필요한 교회를 그릴 수 있었다. 많은 세월, 관찰과 대화 끝에 도달한 잠정적 결론은, 이민자들은 “자존심 상실”의 큰 고통에 침잠해 있음을 발견하였다. 대학 시절의 전공을 살리면서 밥벌이 하는 이들 많지 않다. 젊은 날 꿈꾸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 많지 않다.

그리하여 사회적 정의, 평등, 평화, 통일, 민주화를 소리치던 한국 80년대와는 (거의) 전혀 딴 판인 세상, 자괴감에 시달리는 신부르주아 목회를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기도 했다.

이제 우리들(교회에 나오는 이민자들)의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 주변의 거의 1천개나 되는 한인  교회 중, 하필이면 우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고객들)에게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무엇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1천 교회를 질타하는 게 아니다, 단지, 내가 그런 교회에 속하기 싫다는 주관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학교에서 줄곧 우등생을 해 왔다. 따라서 교회의 비전, 가치가 세상(지배 문화)의 그것과 동일하다면, 나에게는 교회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세속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하여 교회를 이용하는 어리석음은 나의 자존심을 심히 상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는 못한다. 세상과 동일한 가치를 꿈꾸고 있는 교회에 나가면 나는 조금도 편하지 못하다. 이 때문에 황금률에 따라 “내가 나가고 싶은 교회”를 교우들에게 증거하자는 것이 내 목회이다.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교인들을 참깨 볶듯이 들들 볶으면 “잘 된다”는데, 나는 그런 교회를 나가고 싶지 않다. 나는 가만히 나를 내버려 두는 교회, 그랬다가 내가 잃어버린 본래의 질문을 가끔씩 상기시켜 주는 고마운 자명종 같은 교회에 다니고 싶다. 그래서 노동의 거룩함을 배우되, 계획적으로 휴가를 즐기는 법도 적극 권장한다. 교회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가정 중심의 신앙생활(한국에서는 위험할 것으로 생각됨)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제 가정 단위의 안식일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가정 단위의 안식일 운동의 핵심은 이렇다. 일주일에 2시간, 온 가족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다.  외부와의 소통을 일체 단절한다. 그 날의 성경, 찬송, 기도를 올린 후 각 가족이 한 주간 동안의 희로애락을 말하되, 어떤 가치(목표 & 선택의 기준) 때문에 그리하였는지를 이야기한다. 성공이 성공이 아닐 수 있다. 실패가 실패 아닐 수 있음을 서로 확인한다. 가족들이 서로 비슷한 가치, 비전을 가지고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모습. 그 안에 임마누엘을 체험하지 못할 사람 있을까?



(LA 한아름 교회 홍정수 목사)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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