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게이트'로 온통 난리법석이다. 지난 달 초 어버이연합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떠들썩하더니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화장품 회사 ‘네이쳐 리퍼블릭' 정운호 대표발 법조 게이트까지 터져 나왔다. 각 사건마다 성격은 판이하다. 그러나 세 사건 모두 국가, 그리고 법 질서의 존재의미를 묻는다는 점에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가운데 법조 게이트는 들여다 보면 볼수록 억장이 무너진다.
사건의 줄기는 간단하다. 정운호 대표는 화장품 사업으로 성공해 1천 억원대의 자산가 반열에 올랐다. 그런 그가 100억대의 원정 도박을 벌여 사법 처리를 당하게 되자 전관 법조인을 기용해 법망을 피해가려 했다. 정 대표와 부장판사 출신의 최유정 변호사 사이에 오간 돈은 무려 50억원. 최 변호사는 정 대표에게 보석이나 집행유예를 받게 해주겠다고 제안했고 정 대표는 솔깃해 그 큰 돈을 선뜻 ‘쾌척'한 것이다. 그러나 둘 사이의 거래는 원만하지 못했다. 정 대표의 바람과 달리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했고, 이 과정에서 분쟁이 벌어졌다.
정 대표 사건엔 또 한 명의 전관 법조인이 등장한다. 바로 검사장을 지낸 홍만표 변호사다. 복수의 언론들은 홍 변호사는 정 대표가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조사를 받을 때 변호를 맡아 두 차례나 검경의 무혐의 처분을 끌어냈다고 전했다.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홍 변호사는 단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았고 준비서면 등 서류 한 장 제출하지 않았다고 하니, 검사장 출신이라는 후광이 막강하긴 한가보다. 더구나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연 90억의 소득을 올렸고, 확인되지 않은 재산은 더 많다는 전언이다. ‘뜻 있는' 부모들이 자식들을 법조인으로 키우려는 이유를 대충 알겠다.
'돈'과 '빽' 앞에 무력한 법망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만약에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사회라면 그곳은 사람사는 곳은 아닐 공산이 크다. 그러나 적어도 법 앞에서 모든 사람은 공평해야 한다. 돈이 많건, 뒷배경이 든든하건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합당한 죄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퍼 리는 자신의 대표작 <앵무새 죽이기>에서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의 입을 빌어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창조되지 않았음을 압니다. 물론 몇몇은 그렇게 믿을 수도 있습니다만, 어떤 이는 보다 더 영리하고, 또 어떤 사람은 태어난 환경 덕분에 더 많은 기회를 갖습니다. 어떤 이는 돈을 더 많이 벌기도 하고, 어떤 여성은 더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표준 이상의 능력을 선물받고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안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 한 곳이 있습니다. 가난뱅이와 록펠러를, 백치와 아인슈타인을, 무식쟁이와 대학총장을 동등하게 하는 인류의 공공기관이 있는 것입니다. 신사 여러분, 그 기관은 바로 이 법정인 것입니다. 그것은 미 합중국의 최고 대법원이거나 가장 초라한 지방법원이거나 간에 여러분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존경받을 만한 법정인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법은 공평하지 않다. 돈많고 배경이 든든하면 법망은 우습게 피해갈 수 있다. 역으로 돈도 없고 배경도 없으면 안 지은 죄도 뒤집어 쓰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정운호 발 법조 게이트는 이런 추악한 민낯의 단면일 뿐이다.
이렇게 적고 나니 세상에 훈수를 두려는 것 같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독교계 역시 사법정의를 오염시킨 장본인 중 하나다. 신도 수만을 ‘거느린' 대형교회 담임목회자들이 특히 그렇다. 이분들은 논문표절이나 성추행, 공금횡령, 반사회적 발언 등등으로 물의를 일으켜 놓고도 그에 합당한 죄값은 치르기 싫은가 보다. 아마 목사 체면에 속된 말로 이리저리 ‘까이면' 가오(?)가 살지 않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언제부터인가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법에 기대기 시작했다.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 혹은 SNS에 자신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네티즌을 ‘색출'해 무더기로 고소하는가 하면, 자신의 부정이 탄로나면 유력 법조인들을 내세워 재판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억대의 민사소송을 제기해 본질을 흐린다. 법조인들도 한 패다. 대형교회 마다 출석 교인 가운데 법조인이 모인 ‘법조 선교회'가 담임목회자의 법조 전위대로 나선다.
마침 홍만표 변호사는 서울 서초동의 한 대형교회 집사임이 확인됐다. 이 교회는 지난 몇 년간 담임목사와 갱신위 신도 사이에 법적 분쟁을 겪었고, 법원과 검찰은 결정적 국면에서 자주 담임목사의 손을 들어줬다. 홍 변호사가 이 교회 집사라는 점만을 근거로 그가 담임목사를 위해 모종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정 수준 담임목사 측이 그가 가진 영향력에 기대려 했으리라 의심은 가능 하다.
뿐만 아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관련된 일만 전문으로 맡아 처리하는 로펌도 왕성히 활동 중이다. 특히 ‘기독법조인'으로 진용이 짜여진 L로펌은 힘 없고 돈 없는 신도들을 많이 울려왔다.
돈이 법을 주무르는 세상인지라 곳곳에서 가진 것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사회에 편재한 악을 답습하니, 가뜩이나 암담한 현실이 더욱 암담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