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철학자들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제22차 세계 철학자 대회에서 동·서양을 넘어 철학자들의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씨알사상. 이 씨알사상을 보다 더 심화 연구·발전시키기 위해 씨알학회가 20일 창립된다.
씨알학회의 창립 주체인 재단법인 씨알은 창립과 관련해 “재야의 철학자나 사상가로 알려졌던 유영모,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지난해 (세계철학대회 기간인)8월 2-3일 이틀간에 걸쳐 발표장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참여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며 세 가지의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로 동서 문명의 만남을 통해 20세기에 이루어진 창조적 사상가의 사례로서 동아시아 정신문화 토양 속에서 서양사상을 통합해 꽃핀 씨알사상이 한국철학을 대표할 만큼 손색이 없고 독창적이라는 점을 들었고, 둘째로는 ‘씨알사상’에서 ‘씨알’이라는 말이 우리시대의 인류가 직면한 근본문제 ‘생명과 평화’라는 주제가 재확인되고 철학적 담론의 중심으로 강조되었다는 점.
셋째는 역사적으로 시민이란 개념이 특정 계급, 계층을 말하는 개념으로 표현되어 왔지만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그 창조적 문명형성의 역동성을 상실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풀뿌리, 참여자치, 생태평화 등 새로운 가치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시민들이 그물망처럼 재 조직화 되어가는 흐름 속에서 ‘씨알’의 역할과 위상이 핵심적 철학적 주제어로서 각성되었다는 것을 들었다.
세계철학대회 이후 씨알사상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됐고, 재단법인 씨알은 지난해 10월 10일 씨알사상포럼 1부 행사로 씨알학회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기에 이른다.
이규성 교수(이화여대)가 준비위원장으로, 김상봉 교수(전남대), 김수중 교수(경희대), 박재순 소장(씨알사상연구소), 서유석 교수(호원대), 이정배 교수(감신대), 허우성 교수(경희대) 등이 씨알학회 준비위원이 뽑혔다.
또 지난달 20일엔 씨알학회 준비모임에서 3월 20일자로 씨알학회 창립 학술마당을 개최하고, 학술대화마당 후 창립총회를 열기로 결의했다.
창립총회에 앞서 진행되는 학술마당에는 이화여대 철학과 이규성 교수, 씨알사상연구소 박재순 소장이 각각 ‘현대한국철학에서의 두 가지 변증법과 사상의 혁명’, ‘씨알철학의 역사적 맥락과 철학적 성격’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한다.
준비위원장인 이규성 교수는 미리 배포한 자료에서 “신남철, 박종홍, 함석헌의 변증법적 세계관(비극적 변증법과 생명변증법)을 우주관과 인간관 그리고 정치사상을 중심으로 고찰해 본 내용을 발표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발제문에서 그는 이 같은 발표를 통해 입증하고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할 주제를 알리기도 했다. 그가 말한 네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 세 사상가들은 우주를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변증법적 자기발전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생성과정은 필연이라는 중력이 내려 끄는 힘과 그것의 제약 하에서도 필연을 넘어 서고자하는 자유의 힘과의 변증법적 타협과 분열을 통한 부단한 진화의 과정이다. 이러한 자연의 노력은 인간의 단계에 이르러 자각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둘째, 인간의 본질은 우주를 다양의 통일이라는 하나의 생의 통일성으로 이해하고, 이 생명이 분투하여 현실화하고자하는 자유의 의미를 사유하고 실현하는 데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궁극적인 지고의 자유는 개방적 전체로서의 자연(생명, 존재)과 이를 향한 열망을 가진 사유와의 일치를 동경하고 실현하는 데에서 주어진다.
셋째, 사회적 인간의 정치적 삶은 우주의 변증법적 전개에 대한 이해와 우주에서의 인간존재의 의미에 대한 성찰에 기초할 때 진실성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와 성찰은 인간관계를 개체의 독특성(차이성)에 기초한 자유와 모든 개체들의 평등성(동일성)을 의미하는 연대성을 향하여 변혁해나가는 사유와 실천으로 전환된다. 진정한 근본적 민주주의는 이러한 전환에서 출발하며, 그것은 언제나 자유를 위해서는 평등을, 평등을 위해서는 자유를 실현하는 분투하는 노력을 필수적 조건으로 갖는다. 그리고 그 방향은 억압적 국가의 윤리화를 통한 그 소멸을 지향하고, 사회내의 경제적 착취와 문화적 특권이라는 기계적 타성을 파괴하는 새로운 습관을 지향한다.
넷째, 이러한 습관은 자본주의의 특징적 속성인 개인주의와 전체주의를 넘어서 도래하는 민중이 생의 한 가운데에 서는 그래서 민중이라는 이름도 지워버리는 근본적 민주주의를 창조할 것이다. 따라서 이 습관은 '덩어리'를 골라내고 '부스러기'를 날려버리는 키질이나 채질이 아니라, 버려진 씨알들을 줍는 이삭줍기이며 그것을 재배 양육하는 원예의 기술이다.
한편, 20일 오후 2시 이화여대에서 열리는 이 학술마당이 끝난 뒤 씨알학회 창립 준비위원들은 같은 장소에서 곧 바로 학술마당창립총회를 가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