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목사다. 지난 5월27일(토) SBS 시사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선 18년 전 미국 코네티컷에서 벌어졌던 한국인 유학생 학대 및 성폭행 사건을 파헤쳤다. 사건 발생 당시 가해자는 전도사였고, 지금은 한국에서 목사로 활동 중이다. 방송이 나가자 가해자 ㅇ목사의 설교 동영상은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교회 홈페이지 역시 폐쇄됐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폭로한 학대 내용은 경악스러웠다. 피해자인 김 모 씨는 ㅇ 전도사가 처음엔 회초리로 때리다가 차차 목검, 골프채 등 점차 수위를 높여갔다고 증언했다. 그뿐만 아니다. 김 씨는 "2~3일 간 굶은 어느 날은 수프 한 그릇을 대가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가해자인 ㅇ목사를 찾아가 사실확인을 했다. ㅇ목사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미국 검찰 및 법원, 현지 변호사으로부터 수사자료를 확보했다. 모든 자료들은 ㅇ목사가 가해자임을 가르키고 있었다.
목사가 폭행이나 성폭행 따위의 강력범죄에 연루돼 여론의 질타를 받는 광경은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네티즌들 사이엔 조롱섞인 어조로 ‘교회를 19금 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말도 공공연히 오가기까지 할 지경이다.
문제는 처벌이다. 그동안 목회자들은 일반인이 저지르기 힘든 중범죄에 연루됐음에도, 거의 예외없이 처벌은 비켜갔다. 심지어 교단이 범죄 목사와 한통속이 돼 무죄방면을 해주기도 한다.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번에 <그것이 알고싶다>에 보도된 가해자 ㅇ목사 역시 미국 경찰의 수사를 피해 해외로 도주했고, 한국 사법당국이 그를 붙잡아 미국에 넘기지 않는한 단죄는 요원한 상태다.
피해자인 김 씨는 사법처리 보다 ㅇ목사의 사과를 바랬다. 그러나 ㅇ목사는 너무나 당당했다. 그는 자신의 ‘스펙'을 내세우며 "배울만큼 배울 사람이다. 나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그의 스펙은 놀랄만큼 탄탄했다. 미국 명문 예일대학에서 목회학 석사를 거친 뒤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신대(예장통합), 한세대(순복음), 아시아연합신학대 등 유수의 신학교에 외래교수로 출강한 전력도 있다.
사실 ㅇ목사의 변명은 귀에 익숙하다. 전두환 씨가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말을 떠올려 보자. 전 씨는 5.18광주민주항쟁 당시 발포 명령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때 그가 내세운 변명은 이랬다.
"그때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도 비슷한 논리를 내세웠다. 전 목사는 여성도들의 성추행 피해사실 증언이 잇다르자 이렇게 주장하고 나섰다.
"(목사의 여성도 성추행은) 경험칙상 있을 수 없다"
명문대 나왔다고, 목회자라고, 장로라고, 사법고시 패스해 판검사로 재직 중이라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인간 존재 자체가 죄성을 지닌 존재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이를 원죄라고 부른다. 꼭 신학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은 명문대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는 법이다.
ㅇ목사의 범죄는 충격적이다. 그러나 그가 아무런 단죄도 받지 않고 버젓이 목회활동을 하는 건 더 충격적이다. 방송이 나가면서 ㅇ목사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당연히 소속 교단이 문제해결에 앞장서야 할테지만, 얼마만큼 의지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한국교회가 지옥을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