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마치 아닌 것처럼

나성향린교회 곽건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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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유투브 화면 갈무리 )
▲나성향린교회 곽건용 목사

나성향린교회 곽건용 목사가 성령강림 셋째 주일이던 5월29일(일) 행한 설교문. 곽 목사는 설교 중에 한신대 학내갈등을 잠깐 언급하며 ‘아닌 것처럼' 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곽 목사의 양해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성령의 바람 속에서

오늘 설교는 ‘성령의 바람 속에서'라는 주제로 5월 한 달 동안 해온 설교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설교입니다. 한 달이라고는 하지만 어머니주일과 5.18 기념주일이 있었으므로 정작 성령에 관해서는 모두 세 번 설교한 셈이 됩니다. 오늘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지난 설교들을 요약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설교에선 성령은 ‘예수 없는 예수'라고 말했습니다. 본회퍼는 현대세계에서 기독교신앙은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없이'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이와 비슷하게 부활 승천하시어 예수님이 더 이상 곁에 계시지 않은 이 세상에서 제자들이 신뢰하고 동행할 예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곁에 없지만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살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란 얘기입니다.

두 번째 설교에서는 일시적으로 경험한 카리스마로서의 성령체험이 매일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변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성령체험은 이제 병자를 고치거나 귀신을 내쫓거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 등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게 됐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성령은 어려움과 박해를 이겨내는 인내를 주시는 분이고 인격을 단련해서 희망을 갖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바울은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사랑을 부어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5장은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라고 말했던 겁니다.

믿는다고 믿는 것과 실제 믿는 것의 차이

사실상 이것으로 성령에 대해 제가 하려던 얘기는 다 한 셈입니다. 게다가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7장은 성령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고 ‘성령'이란 말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이 장은 전체적으로 혼인과 부부에 관한 얘기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바울은 이 얘기가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생각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은 결혼한 사람은 그대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미혼인 사람은 가급적 결혼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혼한 사람은 다시 합칠 수 있으면 합치되 억지로 하지는 말라고도 말합니다. 재혼은 권장하지 않고요. 이런 얘기를 하는 도중에 바울은 약간은 뜬금없게 들리는 말을 하는데 오늘 읽은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29-31장).

이러저러한 사람은 마치 그렇지 않은 사람처럼 하라는 겁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왜 아내 있는 사람은 아내 있는 사람처럼 하지 말고 아내 없는 사람처럼 살라고 말할까요? 왜 우는 사람은 우는 사람처럼 하지 말고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을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라고 말할까요?

대답은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라는 대목에 있습니다. 첫 기독교인들은 곧 세상의 종말이 올 거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게 언제일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종말이 오리라고 믿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을 모두 팔고 내 것 네 것 할 것 없이 나누며 살았던 것도 이런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배우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별 차이가 없으며 울고 웃는 것도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많은 재산을 가진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말입니다. 죽을 때 싸갖고 갈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첫 기독교인들이 가졌던 삶의 태도를 폄하하거나 가볍게 보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분명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머지않은 장래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의 생전에, 곧 여러분의 생이 끝나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고 종말이 올 거라고 믿으십니까? 아마 여러분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중에서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 모릅니다. 개신교 교파 중에 예수님의 재림을 가장 간절히 기다리는 교파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일 겁니다. 하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그들 중에도 예수님의 재림이 곧 일어난다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도 다 노후 걱정하고 생명보험과 은퇴연금에 가입해 있고 손자손녀 걱정한다는 겁니다.

요즘 이런 식의 얘기를 하면 현실에 어둡다는 말을 듣기 십상입니다. 예수 재림이라고? ‘아직도 그런 걸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냐?'고 말입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교회와 기독교인에 대해서 이런 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조롱하는 형편입니다. 기독교인 스스로도 마찬가지죠. 기독교인 스스로도 예수님이 재림할지 안 할지 여부보다는 요즘 기독교인들 중에서 진정으로 예수님에 관심 있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되는가, 예수님이 하셨던 하느님 나라 사역을 진지하게 실천하려는 교회가 얼마나 되는지를 걱정합니다. 하긴 이런 일은 비단 기독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불교인들 중에서 정말 진지하게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그대로 살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제가 불교인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그런 불교인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숨은 신

한 종교학자는 "요즘 한국 종교에는 ‘숨은 신'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돈이다. 불교에서는 부처, 기독교에서 예수는 모두 2인자에 불과하다. 돈이 모든 종교의 1인자인 실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든 부처든 모두 그 종교에서 1인자가 아니라 2인자라는 겁니다. 최고의 자리에 않아 있는 것은 종교의 다름과 상관없이 돈이라는 겁니다.

이런 현실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는 기사 하나를 얼마 전에 읽고 씁쓸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 때 가장 잘 나갔던 교회는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소망교회였다고 합니다. 그때는 그 교회에 정부의 고위관료들과 대기업 임원들이 우글거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어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자 사정이 달라졌답니다. 지금은 고위관료들이 가장 많이 출석하는 교회는 사랑의교회라고 합니다. 적지 않은 관료들과 고위층 인사들이 그 교회로 옮겨갔다는 얘기입니다. 현재 화제의 중심이 된 전관비리 사법비리의 주역들이 모두 사랑의 교회 교인들입니다. 얼마 전에 그 교회 목사가 저지른 비리가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죄로 결론 내려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전혀 근거가 없는 추측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죽을지도 모르고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기독교인들이 권력을 쫓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이런 짓이 대체 예수님과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삶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이렇게 행동하는 집단은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들을 기독교인라고 부르는 게 옳을까요?

물론 이런 모습이 한국기독교의 전부는 아닙니다.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조용히 묵묵히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기독교인들과 교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독교인과 교회의 숫자는 극히 적습니다. 한국교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흐름은 돈을 1인자로 섬기는 물신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이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요즘 제가 졸업한 신학교가 큰 내홍에 휩싸였습니다. 사태는 그 학교 총장이 임기 중에 교단을 대표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취임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것도 말이 많았는데 후임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그 학교의 전통은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총장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총장을 선임할 권한을 갖고 있는 이사회가 그 의사를 존중해서 총장을 선임해왔던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사회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3순위로 올라온 후보를 총장으로 선임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이사들에게 대화를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이사들이 긴 시간 회의실에 ‘감금' 아닌 감금을 당했습니다. 그러자 이사들은 학생들을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물론 이사들을 가둔 학생들의 행위는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사들이 학생들을 경찰에 고발한 행위는 있을 수 없는 행위입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세상은 떠들썩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 사태는 대수로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큰 사건이 일어나는 한국사회에서 작은 학교의 총장 선임이 대수로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이 일은 시저가 "브루투스, 너마저도!" 하고 외친 것처럼 "한신대, 너마저도!"라는 탄식을 일으킵니다.

제가 입학하기 전의 일이지만 유신시대에 이 대학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유신반대 데모를 하는 학생들을 문교부는 제적시키라고 학교 측이 압력을 가했습니다. 교수들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서슬 퍼런 유신시대에 문교부의 명령을 거부하긴 어려웠습니다. 이때 교수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깎았습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하나둘 머리를 깎음으로써 이들은 문교부의 처사에 대한 저항의 의사를 표현했던 겁니다. 결국 이 학교도 학생들을 제적시켰습니다. 학교 측에 정권의 명령을 거스를 힘은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소극적으로라도 저항했던 교수들을 비난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랬던 학교가 이사들이 학생들을 경찰에 고발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뜻 있는 사람들이 탄식하는 겁니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이렇게 될 조짐이 이미 있었습니다. 남가주로 유학 오는 이 학교 후배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들 대부분은 자유롭고 진보적인 학교로 유학을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보적인 학교로 오는 후배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여러분이 다 알만한 보수적인 학교로 유학을 오더군요. 저는 이걸 보면서 교단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한국교회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하곤 합니다. 한국교회는 대형교회와 대형교회가 되려는 교회,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겁니다. 이 자조적인 말이 지나치게 들리지 않습니다. 과거엔 선명하게 열려 있고 진보적인 교단과 교회도 지금은 무척 보수화됐다는 겁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저는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성령은 어디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성령은 예나 지금이나 싫다는 사람을 강제로 당신 뜻대로 이끌고 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무리 성령이라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손뼉도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한 손으로는 손뼉을 칠 수 없는 것처럼 성령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성령과 내가 손바닥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겁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일상적인 성령체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성령이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체험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적인 삶에서 체험되고 열매를 맺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맺어진 성령의 열매가 갈라디아 5장이 말하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라고 했습니다.

그럼 이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어떻게' 맺을 수 있을까요? 그저 사랑하며 살아야지, 기뻐하며 인내하며 살아야지, 친절하고 선하게 살면서 온유하고 절제하는 삶의 습관을 길러야지 하고 다짐하며 살면 그런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그런 추상적인 방법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제 매일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고린도전서 7장에서 바울이 말하는 ‘마치 아닌 것 같이 사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그런 권고를 한 것은 종말이 멀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종말이 가깝지 않더라도, 그렇게 믿지 않더라도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러저러 하지만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 무엇인가의 종이 되지 않고 내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악한 세력은 공포심을 자극하고 불어넣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지배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악마는 자기가 갖고 있는 초자연적인 힘으로 사람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악마가 더 똑똑해져서 공포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유혹합니다. 공포심은 내 밖에서 나를 억압하는 것임을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돈으로 유혹하면 내가 억압당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다. 억압당한다는 느낌도 주지 않습니다. 마약은 중독임을 어렵지 않게 인지하지만 도박은 그렇지 않은 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유혹을 이기는 길은 ‘마치 아닌 것처럼' 사는 겁니다. 우는 사람은 마치 울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뭐든지 가진 사람은 마치 그걸 갖지 않은 사람처럼 사는 겁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그 무엇인가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있지만 없는 것처럼 사니까 말입니다.

그럼 ‘마치 아닌 것처럼' 사는 구체적인 방법 두 가지를 말씀하는 것으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첫째는, ‘나' 보다는 ‘우리'라는 말을 입에 자주 올리자는 겁니다. 어떤 일에든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말고 ‘우리가' 어떻게 했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기르자는 얘기입니다. ‘내가' 뭘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이뤘다고 생각하고 ‘내가' 뭔가를 소유한다고 여기지 말고 ‘우리가' 소유한다고 생각하자는 겁니다.

둘째는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게 뭐가 됐든 그것이 나에게 머무른 시간을 짧게 하자는 겁니다. 세상 모든 것은 고여 있으면 썩게 마련입니다. 계란이나 치즈만 오래 되면 썩는 게 아닙니다. 지식도 흘려보내지 않고 머물러 있으면 썩습니다. 뭐든지 그렇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마치 아닌 것처럼'은 오래 머물지 않게 하는 겁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듯이 뭐든 흐르게 하면 썩지 않습니다. 뭐가 됐든 그게 내게 와서 내 안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썩습니다. 그러니 썩어서 못 쓰게 되기 전에 얼른얼른 내보내자는 겁니다. 저는 이렇게 사는 것이 바울이 말한바 ‘마치 아닌 것처럼' 사는 삶이고 곧 성령을 따라서 사는 삶이라고 믿습니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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