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하마드 알리 타계 추모 애도
미국의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3일(현지시간) 타계했다. 향년 74세. 그의 죽음에 세계적인 추모물결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생전 그의 활동이 새삼 주목을 모으고 있다.
무하마드 알리는 링 안팎에서 인권운동가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프로 무대에 데뷔하게 된 것은 그가 페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려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게 되면서부터다. 당시 로마올림픽(1960년)에 출전해 라이트해비급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었던 그는 뿌리 깊은 미국 사회 내 인종 차별을 몸소 겪으면서 인권의 개념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저항의 의미로서 그가받은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물에 던져 버린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극단적인 진보 사상으로 이름을 떨친 말콤 엑스로부터도 영향을 받은 그는 챔피언이 된 후에는 이름을 캐시어스 엑스로 바꾸기도 했다. 이어 이슬람교 지도자 엘리야 무하마드에게 받은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줄곧 사용했다.
무하마드 알리는 특히 1967년 베트남전 징집영장에는 "베트남과 싸우느니 인종차별에 맞서겠다"고 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그는 징집거부 대가로 챔피언 벨트를 빼앗기는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이후 3년 이상의 공백을 거쳐 복귀한 그가 1974년 조지 포먼과 명승부를 펼친 '킨샤사의 기적'은 복서계에서 늘상 회자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또 1990년 걸프 전쟁 당시에는 이라크 후세인 대통령과 직접 만나 미국인 인질 석방에 성공했으며, 1996년에는 파킨슨 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로 등장해 주목을 모았다.
한편 무하마디 알리의 죽음에 세계적인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알리는 스포츠를 뛰어넘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운동선수"라며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성화를 점화하면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