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발제문은 강호숙 박사(전 총신대 교수)가 지난 2일 교회2.0목회자운동이 주관하고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주최한 '여성 리더십에 대한 신학적 모색' 포럼에서 발제한 강연문입니다. 강 박사는 이 발제를 통해 남녀파트너쉽의 필요성을 성경/신학적으로 연구하여 남녀평등 사상이 한국교회에 둥지를 틀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여를 했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발제문을 싣습니다. 내용의 분량상 나누어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
남녀파트너십의 필요성과 실천과제
Ⅰ. 들어가는 글
본 연구는 보수교단의 '여성안수 반대'가 야기하는 성 혐오와 성차별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교회 안의 평등적 가치 실현을 위한 실천적 접근으로서 남녀파트너십의 필요성과 실천과제를 제안하려는 것이다.
21세기는 개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개인이 지닌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회이며, 또한 지식기반 사회로의 전환, 국제적 정책 환경의 변화와 함께 여성의 역할과 여성적 가치에 대한 인식전환과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좀 더 바람직한 사회실현을 위한 남녀파트너십의 형성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교회 내에서도 성 평등의 흐름에 따라 여성안수가 이뤄지면서 기존의 리더십에 대한 재해석과 아울러 남녀 모두를 위한 목회환경에로의 시도로서 여성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과는 반대로 본 연구자가 소속했던 합동 총신에서는 "여성들에게 안수를 주지 않는 게 성경적이다,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개혁신학의 보루이다"라는 가부장적 신념과 교단 신학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결과적으론 신학교육과 학교운영, 진로와 리더십에서 고질적인 성차별 문제와 인권은 물론 성정체성과 성역할, 직위와 처우, 성문제 등 불평등과 부당함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보수교단 내 여성들은 남성 목사와 남성 교수에게 순종해야 하며, 목회와 설교, 교육과 상담 등에서 여성을 비하, 희롱, 혐오하는 성차별적 대우와 발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이 외친 중요한 교리 가운데 '만인 제사장설'과 '여성본성 논쟁' 교리가 있다. 이 교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은 성별을 떠나 모두가 평등하여 복음을 전할 사명자로서 역할을 감당하며, 여성도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라는 진리를 회복시켜 교회 여성에게 혁신적 선포를 하였다. 그러나 이 교리가 사회문화, 이데올로기, 교회 혹은 신학의 어떤 영역에서도 평등관계를 이루지 못하여 여성들이 가정에 길들여지는 역할을 하게 된 점은 아쉽다. 그런데 20세기 말에 이르러 "종교개혁은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종교개혁의 역사, 신학의 재검토와 특히 여성과 관련해 종교개혁의 의미를 찾으려는 연구가 일어났다. 복음주의학자 John Stott는 여성리더십은 교회의 세속에 편승하는 세속적 기류로서 볼 게 아니라, 창조와 구속, 사랑과 정의, 인류애와 사회적 책임에 관한 긴급한 도전 즉, '종교개혁의 제3의 길'이라고 제안하였다. 또한 Robert K. Welsh는 남녀파트너십이야말로 주 안에서 교회의 통일성을 이루는 새로운 접근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종교개혁자들이 외친 만인제사장설과 여성본성 논쟁교리를 이 시대에 맞게 여성입장에서 재해석하는 실천신학적 논의가 필요하며, 아울러 남녀파트너십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본다. 왜냐하면 교회 안의 가부장적 질서에 의한 성차별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비인간성을 유발하며, 남성과 여성을 '성'(聖)과 '속'(俗)의 영역으로 이분화시킴으로써 비윤리적이며 정의롭지 못한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의 목적은 첫째, 보수교회의 가부장적 질서에 의한 성차별의 문제를 드러내고자 하며 둘째, 남녀파트너십의 필요성을 성경신학적으로 찾고자 하며 셋째, 성 평등하고 윈윈(win-win)할 수 있는 남녀파트너십의 실천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제 2장에서는 교회공동체의 성격과 리더십과의 관계, 남녀파트너십의 신학적 의미, 남녀파트너십의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며, 제 3장에서는 합동 총신의 "여성안수반대"가 야기하는 성차별적 사례들을 열거해보고자 하며 제 4장에서는 여성리더십의 특성과 여성성, 여성의 소명과 은사, 목회관점, 교회 갱신적 차원에서 여성리더십의 장점을 알아보고, 제 5장에서는 총신 신대원 여원우와 여동문을 대상으로 실시한 남녀파트너십에 관한 설문을(2013) 통해 합동 총신의 여성사역자들의 현주소와 바램들을 수렴한 후, 성 평등하고 윈윈(win-win)하기 위한 남녀파트너십의 실천과제를 제안하면서 본 논문을 맺고자 한다. 합동 총신에서도 속히 '여성안수'가 이뤄져 남녀 간의 조화와 균형 속에서 정의롭고 평등한 전인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한다.
2. 교회공동체와 남녀파트너십의 신학적 의미
1) 교회공동체의 성격과 리더십과의 관계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다. 로버트 클린턴(Robert Clinton)은 "리더십이란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능력을 갖고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그룹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영향을 끼치는 역동적 과정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요즘 개신교의 타락은 중세 로마 가톨릭보다 더 심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필자는 목사들의 특권의식이 주된 원인이라고 판단한다. 목사들만 하나님 가까이에서 말씀을 전할 권리와 능력을 지녔다는 의식이 팽배해지면서 차별과 분열, 탐욕과 다툼, 맘몬과 성적타락의 온갖 죄악이 난무하게 되었다. 목사의 특권화는 성경적 리더십이 아니다. 성경은 어떤 리더십을 말씀하는가? 교회리더십은 첫째, 하나님의 뜻과 목적으로부터 나오는 '권위'(authority)와 '섬김'(serving)에 대한 반응을 살펴봐야 한다. 권위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뜻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고후 10:8), 리더십은 섬김을 위한 도구가 되어'사람을 위하는'권위로 사용될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또한 섬김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이"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4-45)라는 말씀에서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교회리더십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섬김의 리더십이어야 한다. 이는 교인들을 돕고 섬기기 위해 권위가 필요한 것이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위를 교회리더 자신을 위해 오용, 남용, 악용하라고 주어진 게 아닌 것이다.
둘째, 교회리더십이 교회공동체의 성격과 관련되는가이다. 이는 교회의 본질적인 강조와 함께 세상 속에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교회리더십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교회론에 나타난 특징을 보면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그리스도교 발전 초기에 유대교의 방해와 이단, 분파의 난립 등 어려운 여건 가운데 형성된 것들로서 교회가 지켜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의 이러한 특징들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오히려 남성리더십 체제가 교회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면서 상대적으로 교회 여성리더십이 배제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현대 신학자 Hans Kȕng의 말을 빌려보면,"초대교회는 권력기관이나 재판소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람들의 친교공동체였고, 계층이나 인종, 목사의 교회가 아니라 동등함을 원칙으로 하는 공동체였으며, 가부장적 조직이 아니라, 형제들과 자매들의 공동체였다"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암브로스와 같은 초대 교부들이 교회를 생명의 '어머니'또는 '신자들의 진정한 어머니'로 표현한 것에는 포용성(inclusivity), 평등성(equality), 돌봄과 섬김(caring and serving), 그리고 성령 충만(Fullness of the Holy Spirit)의 성격들이 내포되어 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조직과 법, 제도가 사람을 차별하고 위계시키는 공동체가 아니라, 주 안에서 하나로 연합하는 공동체이다.(갈 3:28) 그러므로 기존의 교회리더십이 남성 직분중심의 위계적인 접근이었다면, 이제는 포괄적이고 전인적 성격을 지닌 남녀파트너십에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2) 남녀파트너십의 신학적 의미: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다양성 가운데 통일성을 이루는 파트너십/ 남녀 왕적파트너십/ 친교파트너십/ 청지기 파트너십
"파트너(partner)"라는 단어는 앵글로-불어'parcenter'의 상속동반자(co-heirship)의 뜻을 가리키는 말에서 파생되었는데, 이는 인간발달사에 있어 재산권리, 소유권, 신분과 위엄뿐 아니라, 힘, 부, 견제, 논쟁적 권리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남녀파트너십의 신학적 기초는 남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그분의 신적인 것을 반영하는 영적 존재라는 것에 있다(창 1:26-28). 또한 남성과 여성을 하나님의 "오이쿠메네"즉, 하나님의 가족, 혹은 동료라는 의미로 해석할 때 파트너십의 의미가 보다 넓어질 수 있다. Johannes Nissen은 하나님의 집인 오이쿠메네(oikoumene)와 생태학(ecology)과 경제(economy)라는 단어의 어원은 모두 헬라어 'oi=koj'에서 나온 것으로서 이 세 단어들은 하나님의 창조(creating), 화해(reconciling), 구속(redeeming)이라는 신학적 의미로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할 사명을 지닌다고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남녀파트너십의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첫째, 하나님의 창조에서 나타나는 남녀파트너십의 의미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다양성 가운데 통일성(Unity with Diversity)을 이루는 파트너십이다. 남성과 여성의 창조에서 고유성(uniqueness), 다름의 위엄(the dignity of diversity), 그리고 연합(union)이 나타난다(창 2:18-24). 여기엔 흡수합병(merger)이나 획일화, 배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으며(고전 11:11), 오히려 평등성(equality), 상호주의(reciprocity), 조화(harmony), 하나됨(oneness)이라는 인격적인 성격들이 내포되어 있다. 둘째, 피조세계를 위한 남녀의 왕적파트너십(kingship partnership)이다. 왕이신 하나님을 대표하는 남성과 여성은 신적 왕의 명령을 받은 지시의 수납자로서, 그리고 피조세계와 하나님의 백성의 영혼을 돌보는 왕적 지도자로서 이 두 가지 역할을 감당해야 할 파트너들이다. 셋째, 하나님께 응답하는 남녀 모두는 친교파트너십의 의미를 지닌다(fellowship partnership). 남녀는 인격적인 관계들로서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나란히'(side-by-side) 교제(fellowship), 화해(reconciling)를 실천하며, 성찬에 참여(engaging)하는 자들이요, 하나님께 예배(worshipping)하며 삶으로 반응(responding)하는 파트너들이다. 넷째, 종말론적 관점에서 보는 청지기 파트너십이다(stewardship partnership). 하나님께서는 남녀모두에게 동일한 계명(commandment)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령의 은사(고전 12:4-30)를 주셨으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위해 동일하게 부르심 받았다. 남성과 여성은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반영하고, 주님이 주신 사명과 달란트를 맡은 청지기로서 온 세상에 주님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지닌 파트너들이다.
3) 남녀파트너십의 성경신학적 근거
(1) 구약에 나타난 남녀파트너십의 근거
① 여성들은 가정 내에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을 위해 도전하고 헌신한 자들이었다. 보수교단에서는 구약의 사라(창 18:15), 하갈(창 21:11-12), 리브가(창 25:22-23), 레아와 라헬(창 29:31-30:24; 35:16-20), 마노아의 아내, 요게벳(출 2:2-3), 한나(삼상 2:1-10) 등을 자녀출산과 관련한 '현모양처'에 둠으로써, 교회여성의 역할 또한 가사일의 연장으로 해석하여 이를 고정시켜왔다. 그러나 구약의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을 위한 계시수납자요 전달자였다. 구약의 여성들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만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가운데 계시 받은 전달자로서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을 받았으며(하갈, 리브가, 마노아의 아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가정과 민족을 세웠고(룻, 한나, 아비가일), 위험과 전쟁에 처한 민족과 나라를 건지기 위해 헌신한 자들이었다(야엘, 에스더, 아벨의 한 여인). 특히 다말, 라합, 룻은 이방여인임에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른 여인이 되었다(마 1:1-5). 아울러 슬로브핫 네 딸들이 그 당시 남자에게만 허락되었던 땅의 분배를 포기하지 않고 모세를 위시한 족장들과 제사장들 즉 남성리더들 앞에 당당히 나아가 여자라서 배제당할 수도 있을 억울함을 호소하며 권리를 주장하여 이스라엘에서 '상속권'을 획득한 일은 용기 있고 도전적인 행동이다(민 27:1-11). 이스라엘 가부장 사회에서 남자들만 취한 상속권을 슬로브핫 딸들이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하여 얻어냈다고 한다면, 오늘날 남녀평등과 인권을 중요시 하는 21세기 현대교회에서 여성리더십을 주장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구약의 여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섭리에 있어서 남편과 동일하게 리더십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이 남성족장 중심의 공동체로서 여성들이 종속적이었다 해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로서 능동적으로 결정하기도 했으며(창 21:10-12; 삿 13:23; 삼상 2;1-10), 남편과 자신을 동등하게 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나는 하나님의 지혜로 남편에게 지도력을 발휘하였으며(삼상 2:1-10),남편과 동일하게 율법의 모든 도덕적 가르침을 준수해야 했고(신 31:12-13), 독자적으로 제물과 헌물을 가져갔으며(레12:6; 15:29), 남편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존재이며, 계시의 전달자로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통찰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삿 13:3-23; 삼상 1장).
② 성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성윤리를 중요하게 여기심을 알 수 있다. 가부장적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여성의 인권이나 성윤리에 대해 침묵함으로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족장들의 일부다처제, 롯이 천사들을 지키기 위해 이미 정혼한 두 딸을 내주는 사건(창 19:8), 레위인의 첩에 관한 사건(삿 19장), 다윗의 밧세바와의 간통(삼하 11장), 암논이 다말을 강간하였음에도 다윗이 이를 무시한 사건(삼하 13장), 여성혐오증의 기원이 된 레위기 12장 등이다. 하지만 여성들을 성적으로 함부로 취급한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이었으며, 인간성을 훼손하는 일로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예를 들어, 룻이 하나님의 천사를 보호하려다 정혼한 두 딸을 성적 노리개로 내준 행위는 나중에 두 딸들이 아비를 범하는 근친상간의 죄악을 낳았으며(창 19:30-38), 모압과 암몬의 탄생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족속이 되었다(왕하 1장-3장). 또한 족장들의 일부다처제는 하나님이 묵인하신 부분으로 볼 게 아니라, 가정 내 긴장과 많은 문제를 야기했으며, 다윗과 암논의 성추행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행한 악이었음을 보게 된다(삼하 12:9-12, 삼하 13-19장). 따라서 오늘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여성들에게 성적자존감을 갖게 하고 성적권리의 주체자로 세움으로써 성적으로 평등하며 거룩한 교회공동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③ 하나님께서는 남성리더와 함께 여성리더를 세워 이스라엘 공동체를 살리셨다. 칼빈은 구약시대에 리더십을 발휘한 드보라와 훌다에 대해서"하나님께서는 분명 남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서 드보라와 훌다를 높이 들어 올리셨다"고 함으로써, 여성리더십을 남성 대신에 임시적인 것으로 해석하였다. 합동 총신의 일부 교수들은 여성 드보라 사사를 "단회적인 사례"로 치부하여 여성리더십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비록 수는 적었어도 미리암, 훌다, 드보라를 감동시켜 세운 분은 하나님이시며, 남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 세운 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세우셨음 간과해선 안 된다. 하나님은 남성보다는 백성이 더 우선이신 분이시다. 미리암은 모세와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해 선지자 역할을 감당했으며(대상 6:3; 미 6:4), 드보라는 여사사요 선지자로서, 옷니엘, 에훗, 기드온, 입다, 삼손과 함께 대 사사에 속하였으며, 훌다는 그 당시 예레미아, 스바냐와 같은 탁월한 남성 선지자가 있었음에도,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에서 말씀의 진정성을 확증하는 자로 쓰임 받았다. 따라서 남녀파트너십 관점에서 볼 때, 미리암은 모세를 돕고, 바락은 드보라를 돕고, 훌다는 요시야 왕을 도우면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파트너십을 인정하면서 남녀가 상호보완적으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신약에 나타난 남녀파트너십의 근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성육신 탄생, 생애,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태동한 신약교회는 동등함을 원칙으로 하는 은사공동체요, 친교공동체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신부들의 공동체요,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 모두 하나인 공동체(갈 3:28)이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공동체의 성격에 입각하여 남녀파트너십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
①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하신 사역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한 복음이라는 것에 근거한다. 주님의 복음은 남성 뿐 아니라, 특히 사회적으로 남성에게 눌렸던 여성들을 자유하게 하였고(눅 4:16-19),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의로운 주체로 세운 복음이었으며(마 5:1-16), 여성들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포괄성을 드러낸 복음이다(마 12:50). 또한 예수님의 여성관은 유대사회와는 달리, 간음(마 5:28)과 이혼에 대한 가르침(마 19:4-9; 막 10:10-12; 눅 16:18),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요 4:3-26),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과의 대화(요 8:9-11), 마르다와 마리아와의 대화(눅 10:38-42) 등에서 볼 때, 그 당시 열등하게 취급받던 여성들을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하신 복음이었다.
② 남성제자와 여성제자들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에서 증인의 역할을 감당했음에 근거한다. 주님은 남녀 모두를 하나님 나라에 초청하시려는 종말론적이며 우주적인 구원사역에 남성 제자뿐 아니라, 여성 제자를 세워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인 성육신 탄생, 어린 시절과 생애의 목격자가 되게 하셨고, 남성 제자가 부재된 상태에서 십자가 사역의 유일한 증인과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워 남녀파트너십의 사역을 이루게 하셨다.
③) 오순절 성령 충만과 은사공동체였던 신약교회는 남녀모두 은사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데에 근거한다(고전 12장, 14장).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남녀 제자들은 오순절 날 성령 충만을 통해 주님의 증인으로서 세움을 입었으며(행 1:8). 그 후에 성(性)의 구별 없이 믿음의 증인으로서 함께 사역하였다.(행 16:5, 18:24-26;롬 16:1,7; 빌 4:2;)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공동체는 모든 사람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여러 가지 은사를 통해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기뻐하는 남녀파트너십 공동체였다(고전 12:4-31).
④) 신약교회는 지상명령 위임과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공동체로서 남녀파트너십이 요구되는 공동체이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전, 교회를 향해 "세상 끝 날까지"(마 28:20) 복음을 전파하라는 지상명령을 남녀 제자에게 위임하신 후에, 예언자인 빌립의 네 딸들, 바울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행 18:2), '여 제자'인 다비다(행 6:7), 사도인 유니아(롬 16:7) 등 많은 여성제자들이 복음전파 사명에 동참하였다. 또한 교회는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 공동체이다((마 25:1-13; 고후 11:2; 계 19:7; 21:2, 9; 22:17). 교회의 신부성은 여성 이미지와 여성성이 반영되어야 할 공동체를 요구한다. 교회의 이미지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영성이다. 둘째, 교회의 여성이미지는 순결의 영성이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교회는 성적으로나 영적으로 모두 거룩해야 하는 공동체이다. 셋째, 교회의 신부성은 창조본래의 독특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성의 이미지이다. 따라서 신랑 되는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교회는 사모함과 깨어있음, 정절과 순결, 여성의 독특함과 아름다운 이미지를 반영하기 위한 여성리더십의 활성화가 요구된다.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에서 남녀 모두는 성령 충만과 은사에 따른 자유적이며 주체적이고 역동적인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온전한 제자로서의 자격은 남성이냐 여성이냐는 성(性)의 구분이거나,'여성은 이래야 한다'라는 성역할 구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사랑하며 그분께 헌신한 자들에게 주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