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죽음 맞서 생명 지켜낸 두 분에게 뜨거운 박수를

명동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

정리해고 철회와 복직을 요구하며 1년 가까이 옛 국가인권위원회 전광판에서 농성 중이던 기아자동차 노조 노동자 최정명, 한규협 씨가 농성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있는 명동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가 <민플러스>에 칼럼을 보내 두 노동자의 투쟁을 격려했다. 그러면서도 인간성을 말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민플러스>의 양해를 얻어 조 목사 칼럼 전문을 싣는다. 조 목사는 <민플러스> 발행인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 사진=지유석 기자
(Photo : )
정리해고 철회와 복직을 요구하며 1년 가까이 옛 국가인권위원회 전광판에서 농성 중이던 기아자동차 노조 노동자 최정명, 한규협 씨가 농성을 중단하기로 했다.

1년 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부조리한 현실을 바꿔내고자 시청 옆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위 광고탑 위에 올라가서 농성을 하던 최정명, 한규협 두 분이 건강 악화로 인해 8일 농성을 마치기로 했다는 성명을 보았다.

나는 작년 여름과 올해 봄 두 번 향린교회 목사의 신분으로 이 분들이 있는 탑에 올라갔었다. 의사와 노조 관계자 외 3자로서는 유일하게 경찰과 광고탑 회사의 허락을 받아 올라갔었다. 첫 번째는 김경호 목사와 함께, 두 번째는 의사 홍승권 집사와 함께 올랐다. 그곳은 경찰 수십 명이 항상 상주하고 있는 곳이다.

광고탑은 대형화면 설치를 위해 만든 철골 구조물이다. 높이는 12층 옥상 위 20미터 높이로 계단도 꼬불꼬불하고 천장도 낮아 대낮에도 손전등의 도움을 받아 조심조심 올라가야 한다. 게다가 처음 방문을 하고 나서 한 밤중에 용역들이 침투를 위해 문짝을 뛰어낸 이후에는 별도로 방어철망을 쳐놓았기에 외부에서 들어가려면 이분들이 이를 제거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좁은 구멍으로 몸이 빠져 올라서면 길이 약 5미터 폭 약 2미터 정도 넓이에 앞에서 뒤쪽으로 한 10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 평면체가 눈앞에 나타난다. 여기에 햇빛 가리개 간이 천막을 쳐놓았다.

한마디로 말해 일반 사람은 높이로 인해 겁도 나거니와 여름에는 양철바닥이 화덕으로, 겨울에는 얼음바닥으로 변하는 웬만한 사람은 한두 시간도 버티기 힘든 곳이다. 게다가 바람이 심하게 불면 몸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 그래서 이분들은 암벽을 탈 때 쓰는 자일로 몸과 바닥을 연결해 놓고 산다.

이분들은 이곳에서 1년을 살았다. 목욕은커녕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변 소변은 상상에 맡긴다. 처음에는 겨울의 찬바람을 피할 옷도 침낭도 없었다. 이를 올려주기 위해 경찰, 회사측과 많은 싸움을 해야 했다. 고공농성은 언제나 이렇게 목숨을 담보로 한다.

시장경쟁 자본주의가 결국 인간성 자체를 말살해가

난 지난 주 안식년을 떠나기에 앞서 미안하고 죄송스러워 이분들을 다시 뵙고 싶었다. 그런데 경찰은 허락을 했는데 광고탑 회사에서 허락을 하지 않아 그것도 함께 간 동료 목사도 안 된다고 하여 혼자 옥상까지만 가서 음식만 전달하고 꼭 용기 잃지 말라고 당부를 하였던 것이다.

몸은 미국에 와있지만 마음은 저들과 함께 있었다. 사실은 건강 악화는 물론 저들의 마음이 약해질까 봐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내려오기로 한 것이다.

한편으론 다행이긴 했지만 해결된 건 하나도 없어 괴롭다. 불과 한 달 전 회사와 국가의 무자비한 압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 비정규직 한광호 열사의 추모천막이 바로 옆 시청광장에 설치되어 있지 않은가?

자동차 오른쪽 바퀴 끼는 비정규직과 왼쪽 바퀴를 끼는 정규직의 월급이 두 배 차이가 나고 받는 혜택도 엄청 다르고 들어가는 출입구마저 다르고 통근버스도 이용할 수 없다고 하니 도대체 말이 안 된다.

비정규직은 하청회사의 파견직이다. 노조가 없으니 불안 속에서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다. 회사는 이런 불안 경쟁심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노동법에 근거한 대법원 판결도 무시하고 정몽구 회장은 벌금을 감수하면서도 이를 계속 강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건 인간 사회가 아니다. 동물 사회도 이렇지는 않다.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시장 경쟁 자본주의가 인간을 편 갈라 결국 인간성 자체를 말살해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사회가 이분들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8억 원 이상의 벌금과 구속이 이분들을 기다리고 있다.

죽음과 맞서 생명을 지켜낸 두 분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분들을 위해 뒤에서 수고한 수많은 이 땅의 의로운 분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이 땅에 정의 평화 생명 넘치기를...

2016년 6월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조헌정 목사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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