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퀴어 문화축제가 열리는 즈음이면 기독교계, 특히 보수 개신교계는 들썩이기 시작한다. 올해도 어김 없이 보수 개신교계는 대규모 퀴어 문화축제 반대집회를 여는가 하면, 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에 몰려들어 축제 참가자들을 자극했다.
퀴어 축제 개막날인 지난 6월11일(토) 오후 백발의 중년 남성이 확성기를 들고 공사 자재 더미에 올라가 축제 참가자들을 향해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이 남성이 말하는 이야기는 차마 공식적인 지면에 옮기기 힘들 정도로 원색적이었다. 이 남성 주위에 있던 축제 반대 시위자들도 갖가지 혐오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이 남성을 거들고 나섰다. 이들이 들고 있던 손팻말엔 이런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동성애 지구 종말"
"흡연은 폐암을, 음주는 간암을, 동성애는 에이즈를"
"동성애 조장, 에이즈 확산, 세금 폭탄"
십계명 가운데 아홉 번째 계명은 "네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이다. 현대적인 의미로 바꾼다면, 주변이나 혹은 불특정 다수를 향해 허위사실을 퍼뜨리지 말라는 계명이다. 이 계명에 비추어 볼 때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구호는 명백한 계명 위반이다.
성소수자 혐오, 십계명 위반
후천성 면역결핍증, 즉 에이즈는 동성애 보다는 문란한 성생활, 그리고 낙후된 보건의료 체계로 인해 생긴 질병이라는 게 정설이다. 특히 아프리카는 에이즈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 국가들 대부분은 독재 정권이 집권 중이고, 이들은 동성애를 강력하게 탄압한다. 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베니가 대표적인 사례다. 아프리카에 에이즈가 만연한 이유는 남성 중심의 성문화와 빈약한 보건의료 체계, 그리고 가난이 어우러진 산물이다. 동성애가 에이즈 확산의 요인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찾기 힘들다. 동성애가 세금폭탄을 불러오며, 급기야 지구 종말까지 가져온다는 발상은 너무나도 어이없다.
문제는 한국 교회, 특히 보수성향이 강한 교회들에서 이런 거짓 증거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올바른 신앙관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 교회의 실패를 본다. 지금 한국 교회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기준 자체를 상실한 것 같다. 차라리 가만히 숨죽이고 있다면 모르겠다. 억울하게 아픔당하는 이웃은 홀대하고, 성소수자나 이슬람 같은 사회적 약자를 향해 거짓 증거와 비방을 일삼으니 잘못되도 단단히 잘못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퀴어 축제 반대집회의 세가 지난 해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올해 반대집회 참여 인원은 경찰 추산 1만 2,000명 수준으로 지난 해(1만)에 비해 살짝 웃도는 수준이다. 전년 대비 참여인원이 늘어났다고 해서 안도할 일이 아니다. 올해 퀴어 축제 참가인원수와 비교해 보자. 축제 개막식에 이은 행진 참가인원은 5만으로 전년 대비 2만 명이 증가했다. 즉, 반대집회 참여인원은 정체 수준인데 비해 축제 참여인원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한국 교회엔 지금 교단이고 교회를 막론하고 이대로 가다간 소수 종교로 전락할 것이란 위기감이 팽배하다. 그러나 적절한 처방을 내리기 보다 마녀사냥에 헛심을 쓰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