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서울 은평갑)은 변호사 출신이다. 법조인이 금배지를 다는 일은 우리 정치 풍토에서는 흔하다. 그러나 박 의원은 법정 보다는 거리가 더 익숙한 ‘거리의 변호사'다. 밀양 송전탑 피해주민, 제주 강정마을 주민,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 국가, 혹은 자본의 폭력에 눈물 흘리는 약자 곁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바로 유가족들의 곁으로 달려갔다. ‘세월호 변호사'란 별명도 이때 얻었다.
원내 입성한 지금 여전히 박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을 돕기 위한 활동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마침 정부는 지난 달 30일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활동을 강제 종료시키고 예산도 배정하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또 다시 거리로 나왔다.
박 의원은 원내에서는 특조위 활동기한 보장을 뼈대로 하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한편, 거리에서는 유가족들과 농성을 함께 했다.
아래는 박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Q : 아무래도 쟁점은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일 것이다. 의원께서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지난 달 17일 세상을 떠난 고 김관홍 잠수사의 뜻이 반영됐다고 들었다. 그러나 의원 한 명이 움직인다고 해서 입법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함께 하는 의원들이 많은가? 세월호 유가족이나 민간잠수사의 바람대로 개정안이 입법 되리라고 보는가?
20대 국회에서 대표발의한 법안중 특별법 개정안은 총 2건이다. 저의 1호 법안은 ‘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건설등을 위한 특별법일부개정법률안'인데, 본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전원과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전원이 공동발의에 참여해 주셨다. 이 법안은 해수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특조위의 활동기한을 법에서 보장하도록 해서 독립성을 강화하고, 선체인양 후 선체에 대한 조사권한 등을 명시했다.
그리고 세월호 특조위 활동 종료와 관련, 이석태 위원장은 정부가 활동비를 지급한 지난해 8월을 시작으로 해 내년 2월까지는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과 별개로 특조위 입장 30일 종료된다 하더라도 백서를 작성해야 하는 기간은 3개월이고 그 동안 특조위는 존속 된다. 그 사이 특별법 개정안 통과가 이뤄지면 된다.
또 다른 특별법 개정안이 바로 ‘김관홍 잠수사 법'으로 불리는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이 법안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그 희생자와 피해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게 규정돼 세월호 참사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의 권익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개정안을 발의했다.
특히 이 법은 고 김관홍 잠수사가 제가 후보시절 때 제안해준 법으로 개원직후 곧바로 성안작업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그 법이 성안되어 의원들의 공동발의 작업이 시작되던 날, 김 잠수사가 세상을 떠났다. ‘김관홍 잠수사 법'의 주인공이 법안 발의를 지켜보지 못하고 떠난 것이 여전히 가슴 아프다.
세월호 특별법과 김관홍 잠수사법(지원특별법)이 통과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질문한 대로 혼자 힘만으로는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같이 해주시는 의원들이 의외로 많다. 지난 5월 국회 등원을 하루 앞두고 초선의원들과 팽목항을 다녀왔다. 이때 함께 해준 의원님들이 많았고, 저의 1호 법안인 특별법개정안을 발의할때도 김종인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등 많은 의원님들이 함께해 주셨다. 그리고 국민적 공감대는 지난 총선에서 이미 확인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개정안들이 빠른 시일에 통과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갈 계획이다.
Q : 고 김관홍 잠수사가 숨졌을 때, 고인의 빈소를 지켰다. 그와의 특별한 기억이 있다면 말해달라.
고 김관홍 잠수사는 우리의 영웅이다. 정작 본인은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는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깊은 고민을 남겨줬다. 내겐 동갑내기 친구이기도 했다. 처음 치루는 선거에서 매일 마주하는 냉혹한 정치현실에서 그는 나에게 든든한 ‘내편'이었다.
다시 생각하면,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의미있고 소중했다. 그가 선거에서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며 찾아왔을 그 순간부터 그를 떠나보낸 지금까지 말이다. 선거 기간 중 하루는 그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이랬다. "오히려 몸이 힘든 요즘이 더 편하다"고
그동안 그는 눈을 감으면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선거운동기간 동안에는 오히려 몸이 피곤해 잠이라도 잘 수 있다는 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피곤한 몸이 더 편하다는 말이었다. 힘든 선거 운동이었지만 그는 나 만큼이나 나의 당선을 절실하게 원했다.
친구 김관홍에게 부끄럽지 않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의무가 생겼다.
Q : 지난 달 25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범국민대회를 갖고 7월2일까지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노숙 농성을 했다. 이에 앞서 유가족과 시민들은 홍대 정문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그러나 소속당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에서는 오로지 의원께서만 집회에 참석했다. 이를 두고 스스로 페이스북에 해명을 하기도 했는데, 여전히 여론은 곱지 않다. 이에 대한 입장은?
이후 농성장에 송영길 의원님,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 김한정·손혜원·우원식·김태년·박홍근·김영진 의원님 등 많은 의원님들이 다녀가셨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박남춘 의원님 등은 가족들이 안전하게 농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경찰청에 협조를 구해 주시기도 했다.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많은 의원님들이 세월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는 중이다.
Q : 국회 입성 이전에도 세월호 진상규명을 돕던 목회자들과 가까이 지냈다고 들었다. 세월호 변호사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세월호 활동에 적극적이었는데, 종교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종교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았든 사람의 행동에 내재되어 발현된다고 본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 희생당한 아이들의 부모와 가족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박 의원은 인터뷰 도중 자신이 기독교인이며, 집안 역시 기독교의 영향이 강해 어린 시절 신앙 관련 서적들을 선물로 받았다고 밝혔다.
Q : 세월호 외에 다른 쟁점에도 관심이 많아 보인다. 특히 12.28 한일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 지원 중단을 협상 내용에 포함시켰다는 내용을 알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월호, 위안부 합의 말고 앞으로 염두에 둔 쟁점은 무엇인가?
지난 10여년 동안 인권변호사 또는 공익변호사 활동을 해왔고, 강정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쌍용차 해고노동자 문제 등 수많은 일들에 관여해왔다. 사실 요즘은 이런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해결해보고자 토론회도 개최하고 법안도 발의한다.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 같이 국가가 조약을 체결함에 있어 국회에 동의를 얻어 국민의 허락을 받도록하는 조약체결 절차 관련 법이라든지, 밀양·강정 등 갈등을 양산하는 문제를 사전에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등을 연구하고 있고 곧 실천에 옮길 것이다. 즉 우리 사회에 여러 곳에 내재해 있는 갈등을 예방해서 국민이 길거리에 나서는 일이 좀 없도록 하고 싶다는 말이다. 국민들에게 저와 같은 거리의 변호사가 필요 없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Q : 마지막 질문인데, 너무 성급한 질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인은 ‘표'를 의식할 수 밖에 없어 질문드린다. 향후 재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의정활동에서 이루고 싶은 바가 있다면 말씀해 달라.
난 정치하고 싶어서 국회의원이 된 것은 아니다. 해야할 일이 있고, 그 일을 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됐다. 생계를 위한 직업 정치인은 안될 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동안 열심히 일해 나갈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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