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개, 돼지로 비하한 나향욱이 결국 파면됐다. 그의 파면을 보면서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먼저 참담하다. ‘행정'을 뜻하는 영어단어 ‘Administration'의 어원은 ‘존경하다'는 뜻의 ‘admire'다. 문제는 존경의 대상이다. 일찌감치 공화주의를 정착시킨 서구 국가들의 경우, 존경의 대상은 국민이다. 공화주의란 바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체제이기에 자연스럽게 공직자들은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사고를 발전시킨 것이다.
명목상 대한민국 역시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화제다. 이 나라의 영문 국호 ‘The Republic of Korea'에 이미 공화제를 명시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나라 공직자들은 꼭대기만 바라 본다. 나향욱이 국민을 개, 돼지 정도로 보는 이유도 기실 존경하는 대상이 국민이 아니라 꼭대기 권력이어서다.
어디 나향욱 뿐일까? 경찰 공권력이 자식 잃은 부모에게 독극물을 분사하는가 하면, 집회에 나온 국민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해 죽음의 지경으로 몰아 넣었음에도 사과 한 마디 없다. 경찰의 수장이 최고 권력자의 심기만 바라봐서 벌어지는 일이다. 검찰, 국가정보원 등 국민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할 기관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한편으로 이 사회의 자정과 감시 기능이 그래도 작동하고 있어 다행이다. 처음에 교육부는 나향욱의 발언을 취중 실언 쯤으로 몰아가려 했다. 그러나 여론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파면이란 징계로 귀결됐다. 그럼에도 여론은 잠잠해지면 나향욱이 행정소송 등의 절차로 다시 복직을 꾀할 것이라며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세상은 자정기능이 작동한다
이 지점에서 교회로 눈을 돌려보면 세상이 부럽기만 하다. 목회자들의 비리나 몰상식한 행태는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는 문제를 일으킨 목회자들이 자신들이 속한 교단 노회나 총회에서 제대로 된 징계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징계는 커녕 징계를 가해야할 노회가 범죄를 저지른 목회자와 한통속이 되 제식구를 감싸는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다.
더욱 경악스러운 건, 기독교계 언론은 물론 사회 언론이 목회자들의 범죄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문제를 삼아도 거의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든 전 목사 사건은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교계나 일반 언론을 통해 쟁점화된 문제들 대부분이 답보 상태이거나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는 지난해 10월 특별 선교비 600억 횡령 및 퇴직금 200억 부당 수령 혐의로 고발당했으나 최근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또 18년 전 미국에서 동거하던 한인 유학생에게 가혹행위를 가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불거지며 공분을 산 오 모 목사는 슬그머니 교단을 탈퇴했고, 그 뒤로는 행적이 묘연하다. 이 목사가 속한 기하성 교단이 징계 의지가 있다면 그를 불러내야 하지만, 교단 역시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다.
교회가 세상의 어둠을 밝혀야 하거늘, 세상 보다 더 음침하고 더 썩은 냄새를 피우니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건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이제 세상은 공직자들이 국민을 개, 돼지 취급하는 지경까지 타락했다. 그리고 교회는 그보다 훨씬 앞서 타락의 모범을 보였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죄악을 그냥 보고만 계실까? 머지 않은 장래에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에 임할 것 같아 그저 두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