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이 지금 제 정신이 아니다."
기자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1개월 전인 8월30일 자 본 지면을 통해 적은 문장이다. 1년이 지난 지금 공권력은 제 정신을 찾았을까? 불행하게도 답은 ‘아니오'다. 오히려 공권력은 더욱 흉물스럽게 변해가고 있다.
지난 6월 세월호 유가족들은 임시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고자 기자회견을 가지려 했다. 이때 경찰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마련해 간 손팻말을 탈취하듯 빼앗아갔다. 그리곤 방송을 통해 "국회에서 100m 이내 지역은 시위, 집회 절대 금지구역이다. 정치적 구호나 피케팅 없는 순수한 기자회견을 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이 언제부터 국민에게 ‘순수한' 기자회견을 하라고 으름짱을 놓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바로 어제, 그러니까 27일(수)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날 2시 ‘416세월호참사특별대책위원회'(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이 긴급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특조위 문을 닫으라는 정부의 위법하고 부당한 요구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힌 뒤, 곧장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렸다. 그래서 광장에 있던 활동가들은 비를 피하도록 비닐을 씌우려 했다. 바로 이때 경찰이 들이닥쳐 비닐을 씌우지 못하게 막았다. 세월호 특별법에 따르면 이 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 5명은 정무직 공무원 신분이며, 위원장은 장관급이다. 장관급 인사가 단식농성이란 극단적 선택을 취한 건 난항을 겪고 있는 특조위의 조사활동을 어떻게든 보장 받으려는 절박한 위기의식의 발로다.
이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정부는 지난 6월 30일로 특조위 활동기간이 끝났다고 하면서, 조사활동을 일방적으로 종료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조사활동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으며, 조사를 위한 출장비와 조사관들의 급여마저 지급하지 않는 등 조사의지를 꺾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 각 기관은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조사에 불응하는 등 조사 방해와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29명의 파견 공무원 중 12명을 원소속기관으로 복귀시키기도 하였습니다. 특조위 조사활동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현실에 직면한 것입니다."
공권력의 주인은 국민이다 !
공권력의 임무는 간단하다. 농성의 주체가 누구든 농성이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킴이의 역할만 다하면 된다. 그러나 경찰의 행태는 정반대였다. 비닐이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도구가 아님에도 들이닥쳐 비닐 설치를 막은 처사는 아무리 곱씹어도 납득하기 어렵다.
현장에 있던 경찰 대원들은 그저 ‘윗선' 지시대로 움직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 다시 기자의 1년 전 수첩을 들춰보자. 기자는 이렇게 적었다.
"잘못된 명령에 대한 맹목적 복종은 그 자체로 공권력의 존립 기반을 허무는 중대 범죄다."
지금 상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국민들을 섬기며 감시견의 역할을 해야 하는 공권력이 거꾸로 주인인 국민을 무는 형국이다. 어디 경찰뿐일까? 검찰, 국가정보원 등 국민의 안위를 가장 우선시 해야 할 국가기관들이 오히려 국민을 감시하고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표현을 탄압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서 이집트의 절대권력자 파라오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이스라엘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이 명령을 거역한다. 파라오 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지금 미처 날뛰다시피 하는 공권력에게 1년 전 경고를 다시 들려주고 싶다.
"구태여 기독교 전승을 들먹이지 않아도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를 거스른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징벌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고등 종교치고 인과응보의 징벌을 경고하지 않은 종교는 없다. 무엇보다 지시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공권력 구성원 모두가 수뇌부 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