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덥습니다. 더위를 피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고 싶습니다. 마침 휴가철이라 많은 이들이 더위를 피하고, 또 일상의 분주함을 잊고자 산으로, 바다로 떠났습니다. 기자 역시 휴가를 얻어 잠시 펜과 카메라를 내려놓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마냥 그럴수는 없었습니다. 마침 휴가를 떠나려던 즈음, ‘라이즈업무브먼트'라는 청소년 사역단체를 운영했던 이동현 목사가 단체 소속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늘 그랬듯 목회자의 성범죄가 불거지면 여론은 발칵 뒤집힙니다. 이 목사의 성범죄 사실도 역시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더위에 지치고 가뜩이나 정치·사회적인 어려움으로 또 지치는데 교회가, 목회자가 사이다처럼 시원스레 노곤함을 달래주기는커녕 짜증만 더 증폭시키고 있으니까요.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제 생각을 밝히고자 합니다.
또 하나, 이 무더위에도 가족들과 함께 피서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충남 아산에 위치한 자동차 공조시스템 부품제조업체인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그렇습니다.
갑을오토텍, 첨예한 갈등의 현장
지난 해 6월 이곳에서는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경영진들은 이 회사 노동조합, 정식 명칭으로는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아래 지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회사에 우호적인 노조(이를 기업노조라 합니다)를 세우고 신규 인력을 채용했습니다. 이들 가운데엔 경찰과 특전사 출신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회 소속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가했고, 이로 인해 여섯 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법당국은 이런 행위를 벌인 경영자에게 철퇴를 가했습니다. 올해 7월 관할 법원인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청은 당시 갑을오토텍 박 모 대표이사를 법정 구속했습니다. 이에 앞서 아산시는 기업노조에 대해 ‘노조아님'을 통보하고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측은 지난 달 26일 돌연 직장을 폐쇄하고, 경비용역을 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관할인 아산경찰서는 회사 방침을 허용했고, 지회 조합원들은 이에 반발해 공장에 집결해 경비용역의 진입을 막아섰습니다.
‘노조'니 ‘파업'이니 하는 말만 들으면 많은 이들이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또 머리에 붉은 띠 묶고 하늘 향해 주먹을 치켜 올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면 ‘빨갱이'와 동일시합니다. 이런 경향은 교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심지어 서울 강남의 모 대형교회에 출석하던 모 그룹 경영주는 ‘성경엔 노조가 없다'는 희대의 망언을 내뱉었을 지경이니까요. 이 경영주는 계열사 노동자들의 파업을 탄압해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바로 ‘기독교기업' 이랜드 박성수 회장입니다.
그러나 붉은 띠 묶고 선전구호를 외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가장들입니다. 문제는 ‘왜 평범한 가장들이 머리에 붉은 띠를 묶고 선전구호를 외치게 됐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갑을오토텍 경영진들은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짰습니다. 노무법인과 ‘김&장'이라는 대형로펌이 이 시나리오에 가담했습니다.
노조와 파업엔 늘 ‘불법'이란 수식어가 붙습니다. 이 나라에서 노조와 파업이 불법이 아닌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하고 단체 행동을 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제 주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입니다. 헌법에서는 이를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라고 하고, 이 세 권리를 ‘노동 3권'이라고 부릅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노동 3권을 보장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노동자들이 사측에 비해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사측은 얼마든지 노동자를 부속품처럼 쓰고 버릴 수 있기에 헌법이 아예 노동자 권리를 명시해 놓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갑을오토텍 사측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헌법 정신을 거스르는 중대 행위입니다.
노조 파괴는 반헌법적 범죄 행위
그렇다면 갑을오토텍 사측이 헌법 정신마저 어기며 노조를 파괴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지회는 대법원으로부터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는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통상임금이란 실제 근무일수와 지급한 임금에 상관없이 고정적이고 평균적인 일반임금, 즉 기본급과 이에 준하여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수당의 1일 평균치를 말합니다.
통상임금은 시간 외 근로수당, 휴일 근로수당, 연·월차 근로수당, 해고 수당, 생리 수당 등 각종 법정수당을 계산하는 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임금 외 수당이 자연스럽게 인상되는 효과가 생깁니다.
갑을오토텍 사측이 이 같은 판결을 달갑게 여길 리 없습니다. 재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법원 판결 7개월 전인 2013년 5월 경영자들의 모임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자신들의 기관지 <경영계>에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38조 5,500여억 원의 비용부담이 생긴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저간의 사정을 짚어 본다면 갑을오토텍 노사 갈등은 단순히 해당 사업장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어 보입니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아산 지역사회는 물론 모든 노동계가 갑을오토텍 사태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앞서 지적했지만 한국 교회엔 노동문제 하면 불법파업과 동일시하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또 조그마한 기업체를 운영하는 분이 교회에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와 친분을 맺고자 치열한 물밑 경쟁이 공공연히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제라도 이런 일그러진 인식을 벗어 던지고 노동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왜냐면 이 문제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금수저'인 그리스도인이 신도들 가운데 얼마나 될까요? 오히려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노동자로 살아가지 않나요? 갑을오토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크고 작은 사업체 어디서든 벌어지는 일들 아니던가요? 보다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선 중산층 노동자(목수)였고, 자신과 비슷하거나 못한 처지의 약자들 편에 서셨던 분 아니던가요?
휴가 기간 동안 간간이 시간을 내어 갑을오토텍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현장에서 든 생각을 아래 한 줄로 요약해 보려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첨예한 사회갈등의 현장, 그리고 약자들이 고통 받는 현장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