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유난히 뜨겁다. 특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 배치 예정지로 ‘정해진' 경북 성주는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운 여름을 나고 있다.
성주 하면 사람들은 얼른 참외를 떠올린다. 실제 성주로 접어들자 참외 재배 비닐하우스와 집하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 주민들 대부분이 참외 농사로 한 해를 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맛 좋은 참외를 거둬들이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성주 참외는 7월이 절정이다. 8월은 한 해 농사를 마무리 한 다음, 산으로 들로 여행을 떠나는 시기다. 그러나 성주가 사드 예정지로 결정되면서 이 같은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지난 달 30일 200여 명의 농민들은 트랙터 30대를 동원해 참외 비닐하우스 2개동과 그 안의 참외 넝쿨을 갈아엎었다. 이곳 농가에 따르면 비닐하우스 1개동 설치에 약 400~500만원이 든다고 했다. 또 1개 동 당 연수익은 많게는 1천 만원까지 가능하다고도 전했다. 이렇게 따지면 당시 농민들은 3천 만원 가량의 비용손실을 감수한 셈이다.
참외 농가가 반발하는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성주 참외 가격이 예년의 60~70%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기자는 현지 주민의 안내로 막바지 출하준비에 한창인 농가를 찾았다. 농장주인 박 모 씨와 그의 아내는 능숙한 솜씨로 물 오른 참외를 골라내고 있었다. 그러나 표정이 그다지 밝지만은 않았다. 박 씨는 "사드 배치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고 말문을 열었다.
"경기도에 출가한 딸이 사는데, 사드 배치 결정이 나면서 농사 접고 오라고 하더라. 사실 지금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하나 고민이다. 그러나 사드가 정말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함께 일하던 박 씨의 아내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동안 1번만 찍어줬는데 앞으로 계속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사람이 나오면 모를까, 아무래도 이 지역에서 새누리당은 물 건너 간 것 같다."
발걸음을 돌려 군청으로 향했다. 군청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 ‘사드 반대'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띠었다. 군청 앞 이차선 도로는 아예 현수막으로 뒤덮이다시피 했다.
현수막엔 현지 분위기 고스란히 담겨져
정당,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 초등학교 동창회, △△ 학부모회, 성주미술문회인협회 등등 현수막을 내건 단체들도 현수막만큼이나 다양했다. 심지어 골프동호회와 유흥주점도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동안 인터넷이나 SNS, 방송 등은 성주군 일대에 걸린 현수막을 자주 비춰줬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막상 현장에 와 보니 분위기는 대단했다.
현수막엔 사드 배치 반대 격문만 있지 않았다. 간간히 특정 언론을 질타하는 내용의 현수막도 눈에 들어왔다. 특히 조선일보, 연합뉴스, KBS, MBC 등 이른바 ‘주류' 언론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은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이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드 배치 결정이 나고 학생들까지 술렁였다. 학생들이 격앙된 나머지 수업도 마치지 않고 집회 가겠다고 나섰다. 학교에서는 할 수 없어 외출증을 끊어 줬다. 그런데 기자들은 학생들을 붙잡고 누가 시켰냐고 캐묻고 다니더라. 전에는 손님 오면 종편TV 채널 틀어줬는데, 이제는 꺼버린다. KBS, MBC,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기자와도 취재 못하게 쫓아 버린다."
성주 군민들의 거세게 반발하자 정부는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성주 내 다른 부지를 물색할 것을 지시했다. 14일엔 국방부가 성주 롯데 스카이힐 골프장 인근을 답사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한 성주 군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주민 B씨는 "정부에서 다른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성주 군민들은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못 박았다.
기자가 찾은 13일 저녁, 성주 군청에서는 사드 반대 촛불 집회가 열렸다. 이날은 집회 32일째라고 했다. 집회는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특히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할머니들이 ‘사드배치 결사반대'란 구호가 적힌 머리띠를 하고 집회 맨 앞좌석을 차지했다. 15일엔 대규모 결의대회와 함께 1,000명이 삭발에 나서기도 했다. 이 모든 장면들은 성주 군민이 너나 할 것 없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음을 드러내준다.
성주 군민들의 눈뜸, 연대로 이어져
더욱 고무적인 건, 성주 군민들이 밀양 송전탑·강정 해군기지 건설·세월호 등 다른 아픔에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군민들은 사드 배치 이후 정부와 언론의 태도를 보면서 밀양·강정 주민과 세월호 유가족들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지난 달 23일 사드 반대 집회 참석차 서울을 찾은 성주 군민 다섯 명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기도 했다.
사실 사드는 미국의 글로벌 패권전략의 산물이다. 그래서 사드 반대 투쟁은 한국은 물론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상대해야 한다. 2016년 4월 기준 4만 4천 인구의 성주군이 감당하기엔 버겁기만한 싸움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손 놓을 수는 없다. 아무리 정부라도, 그리고 강대국이라도 자신의 의사를 소수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식민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였다. 프랑스가 떠난 뒤 이번엔 미국이 베트남 개입을 본격화했다. 이러자 당시 드골은 케네디에게 이 같은 충고를 남겼다.
"민족이라는 것이 한번 눈을 뜨고 궐기한 다음에는 아무리 강대한 외부적 세력도 그 의사를 강요할 수는 없다. 당신은 스스로 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주 군민들은 눈을 떠가고 있다. 그리고 연대의 손길을 뻗치려 한다. 사드 배치 결정이 나고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이 성주에 내려갔다가 성난 군민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이러자 일부 친정부 성향의 인사와 언론들이 ‘외부세력' 운운하며 군민들의 여론 차단에 앞장섰다.
‘외부세력'이란 딱지가 단지 성난 민심을 왜곡, 호도하려는 수사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성주 군민들에게 공감하는 국민들이 늘어가는 상황이 두렵고, 그래서 사전에 연대의 싹을 자르기 위해 정부는 ‘외부세력'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이런 맥락에서 성주 군민들의 사드 반대 투쟁은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외부세력이란 딱지에 주눅들지 말고, 부지런히 외부에 손 내밀어 주기 바란다. 맞잡은 손이 하나 둘 늘어갈 때 투쟁의 결실이 맺어지는 시기도 앞당겨질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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