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 “야당이면 야당답게 제대로 하라”

야당 당사 점거한 국가폭력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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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4.16(가족협의회와 백남기대책위에 속한 농민들이 25일부터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25일(목) 오전 4.16세월호참사피해자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와 백남기대책위원회(백남기대책위)에 속한 농민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당사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정권으로부터 부당하게 억압당한 이들이 격분해 여당 당사를 점거해 농성하는 경우는 있었다. 더구나 세월호 유가족과 백남기 농민은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정부·여당이 아닌 야당 당사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왜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 야당에게 날을 세우고 나섰을까? 4.16세월호참사피해자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 대외협력분과장을 맡고 있는 ‘경빈엄마' 전인숙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죽했으면 여기 왔겠나? 그동안 진상규명에 힘 보태 달라 요구해 왔는데 야당은 회피하기 바빴다. 또 유족들에게는 일언반구 없이 여당과 합의하고, 유가족들은 이를 언론을 통해 접했다. 급기야 단식농성에 들어갔음에도 야당은 또 힘을 보태달라고 한다. 27일 전당대회가 끝나고 새 지도부가 농성장을 찾는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이렇게 유가족이 단식하고 있으면 당장 찾아 와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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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4.16(가족협의회와 백남기대책위에 속한 농민들이 25일부터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결국 야당의 의지부족이 동기로 작용했다는 말이다. 마침 단식농성장엔 박승렬 목사(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상임의장)도 함께 하고 있었다. 박 목사 역시 야당의 미온적 태도를 강하게 질타했다. 박 목사의 말이다.

"세월호 특별법 개정은 9월 안에 이뤄져야 한다. 그러려면 야당이 강한 의지로 임해야 한다. 4.13총선 전에는 의석수가 부족해서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총선에서 다수를 만들어줬다. 그랬더니 여당인 새누리당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한다. 말을 안 들으면 듣도록 해야 하는데 야당은 늘 남 탓만 한다. 야당은 여론을 더 모아달라고 하는데 총선승리가 여론을 모은 것 아닌가? 의지가 없는 게 실망스럽고 화난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도 바로 이런 점에 화가 난 듯하다."

더민주는 점거농성 당일 의원 총회를 열어 1)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당 차원에서 노력할 것을 당론으로 의결했으며 2)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소관 상임위에 상정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3) 이후 가족-특조위-당 간 협의체를 구성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가족협의회는 "특별법 개정과 특검 의결, 특조위 선체조사 보장 등의 내용은 이미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가 해산 시점으로 주장하는 9월이 코앞에 있다. 이제는 당론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야 할 때"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불만, 그리고 더민주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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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4.16(가족협의회와 백남기대책위에 속한 농민들이 25일부터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백남기대책위도 야당에 실망하기는 매 한가지다. 여야는 백남기 청문회 개최에 합의했다. 백남기대책위로서는 일단 원하는 바를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여야의 또 다른 합의사항인 청와대서별관회의 청문회에서 최경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증인 채택 여부가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여당이 백남기 청문회를 수용하면서 최경환-안종범의 출석에 난색을 표한 것이다.

더민주당사에서 농성 중인 가톨릭농민회 소속 김 모 감사는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백남기청문회 개최는 환영한다. 그러나 서별관회의 청문회에서 두 핵심 실세인 최경환, 안종범이 빠졌기에 내용적인 면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았다. 그리고 백남기청문회가 열려도 증인 채택이 문제다. 무엇보다 중요한 자리에 있던 자가 빠지면 안 된다. 이에 대한 확답을 받으려 한다. 그 전엔 농성을 풀지 않을 것이다."

백남기대책위도 김 모 감사와 같은 입장이다. 백남기대책위는 여야 합의에 대한 성명을 내고 1) 서별관회의 청문회에서 볼 수 있듯이 진상규명은 고사하고 증인채택 조차 제대로 못하는 부실한 청문회가 되지 않도록 더불어민주당 새로운 당 대표의 확고한 약속이 있어야 한다 2) 특히 청문회 증인채택에 있어 백남기대책위가 제안한 인물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야당, 특히 더민주로서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게 됐다. 여소야대라고 하지만 새누리당을 건너뛰고 야3당 단독으로 의사결정을 하기엔 의석이 미묘하기 때문이다.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간 합의가 없는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려면 국회의원 60%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현재 우리 국회의 의석수가 총 300석이고 여기에 60%는 180석이다. 그런데 더민주 121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5석 등 새누리당을 제외한 야권 의석수는 170석에 그친다. 또 무소속 의원 가운데엔 여당 성향이 강한 인사가 포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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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4.16(가족협의회와 백남기대책위에 속한 농민들이 25일부터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결국 세월호 특별법이나 백남기 청문회를 제대로 열려면 여당과 어떤 식으로든 타협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정부 여당이 두 가지 의제를 껄끄러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민주 당사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이 같은 현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의석수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더민주 당사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한 시민은 이런 말을 건넸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야당이 의석수가 적었어도 탄핵도 하고 국회를 엉망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야당은 전혀 그런 모습이 없다. 여당이 완강하면 거래를 하든 설득을 하든 해야 하는데, 이 일을 세월호 유가족들 더러 해달라고 그런다. 가뜩이나 힘든 사람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고만 한다. 어느 의원에게 이렇게 말하니 역풍이 두렵다고 답했다. 야당이 몸을 너무 사린다. 이런 야당, 정말 못 믿겠다."

더민주는 내년 치러질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벼르고 있다.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도 정권교체를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모호함이 실로 한 시가 절박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는 기회주의로 비칠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백남기대책위가 야당에게 원하는 건 정교한 집권전략이 아니라 ‘야성'이다. 27일 전당대회를 앞둔 더민주가 기억해야 할 지점이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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