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돈을 사랑하는 건 만악의 뿌리

영국 성공회 피터버로 교구 도널드 알리스터 주교

* 영국 성공회 피터버로 교구의 도널드 알리스터 주교는 지난 25일(일) 오전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주교좌교회를 찾아 설교했다. 설교본문은 디모데전서 6:6-19, 그리고 루가복음 16:19-31이다. 아래는 설교 전문.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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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영국 성공회 피터버로 교구의 도널드 알리스터 주교가 25일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 설교하고 있다. 오른 쪽은 통역을 맡은 주낙현 신부.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대성당에서 여러분들과 다시 함께 자리하게 되어서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이 저에게는 네 번째 서울 방문입니다. 서울교구와 피터버러 교구가 자매결연을 맺은 지는 올해로 여섯 해째가 됩니다. 올해 저희의 목표는 피터버러 교구 지역 교회들과 서울교구 지역 교회들 사이에 관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올해는 지역교회를 섬기는 세 분의 신부님들이 저와 함께 왔습니다. 지금 그 한 분 한 분이 서울교구에 속한 각각의 교회에서 강론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제 비서역할을 맡고 계시는 알렉스 트롤리님도 오늘 저와 함께 자리했습니다. 올 가을부터는 이분이 피터버러 교구에서 양 교구의 자매결연과 관련한 일들을 담당할 것입니다.

한국방문은 언제나 저에게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방문을 통하여 무엇을 보고 무엇을 도모하든, 그 모든 일들의 중심은 함께 예배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드리는 예배와 저희가 드리는 예배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같은 성찬을 나눕니다. 같은 성서에서 복음을 선포하며 그 내용을 오늘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 연결하려고 똑같이 고민합니다. 제가 한국어를 모르지만 언제나 교회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때면 고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분에게 고마운 인사를 드릴 일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은 부자'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아이쿠! 혹시 예수님께서 자주색 옷을 유니폼으로 입는 주교들을 힐난하시려는 걸까요? 물론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에서 부자가 입은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는 주교가 입는 옷과는 다릅니다. 적어도 저는 그러길 바랍니다! 신약성서 시대에 자주색은 염색하는 데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값비싼 색이었습니다. 오직 부자들이나 로마의 통치자들만이 입을 수 있는 색이었습니다. 이 자주색을 후대에 들어서는 재산보다는 권위의 상징으로 주교들이 입었습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에서 요지는 공적 사적 영역 모두에서 드러나는 부자의 사치스러운 삶입니다.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그는 가진 돈을 마음껏 쓰며 자신의 재산을 뽐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부러워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따르면 그리고 오늘 2독서의 바울로 사도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은 부러워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실, 저들은 갇힌 이들입니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리고 어리석고도 해로운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서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는 자신이 소유한 부에, 안락함에 화려함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대문 밖에 누워있는 나자로의 끔찍한 가난과 고통도 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소유한 부와 안락함과 화려함에 눈이 먼 나머지 영원한 생명을 위해 쌓아 올려야 할 일은 도외시합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나머지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는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돈을 벌고 쓰는 데 너무 바빴습니다. 최신 유행하는 자주색 옷을 탐닉하고 사들이는 데 너무 바빴습니다. 최고의 주방장을 고용하고 가장 진귀한 음식들을 들여오는 데 너무 바빴습니다. 너무 바쁜 나머지 성서를 읽는 일, 강론에 귀를 기울이는 일, 하느님의 뜻을 구하고 실천하는 일을 잊었습니다.

그가 고통받는 이유는 부자여서가 아닙니다. 그의 부가 하느님의 말씀에, 굶주리는 이웃의 울부짖음에 귀를 먹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돈과 돈이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한 나머지 하느님과 그의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무시합니다. 재산을 축적하고 그것을 뽐내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쓴 나머지 하느님과 다른 이들을 위해 쓸 시간이 없습니다.

심판의 날이 그에게 다가옵니다. 회개하기에는,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습니다. 그에게 삶의 우선순위들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부를 예배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종국에는 그 부가 그를 사로잡아 옭아매고 파멸에 이르게 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로는 신앙인들에게 경고하고자 의도적으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난" 사람들을 사도 바울로는 말합니다.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돈, 그리고 돈이 가져다 주는 안락함, 오직 지금 이 세상의 삶만을 위한 간교한 안락함과 사랑에 빠져 하느님과 이웃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신앙인들입니다. 오늘 성서의 말씀들은 부를 축적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영국, 그리고 한국에서는 부를 축적하는 것이 분명히 가능합니다. 물론 자신이 부자라고 인정할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최근에 저는 단지 제가 영국에 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소득을 계산하기도 전에 제가 세계에서 상위 10프로에 속하는 부유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무상 교육, 무상 의료, 연금, 깨끗한 물, 잘 정비된 도로들, 대중교통수단, 상점에 있는 식료품들, 우리 영국인들은, 그리고 제 생각에는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로 이 세계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부를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레스토랑이 있고 영화관이 있고 즐길 수 있는 문화와 스포츠가 있고 자유롭게 말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심지어는 우리가 원한다면 정부를 갈아치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음악과 예술이 있습니다. 단정한 복장과 캐주얼한 복장, 일할 때 입는 옷과 놀러 갈 때 있는 옷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멋진 것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돈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옭아매고 신앙에서 멀어지도록 하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할 우리의 으뜸가는 의무를 도외시하게 만들 수 있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자유, 안락함, 삶의 질, 첨단 기술과 의술, 이 모든 것들에는 가격표가 따라 붙습니다. 그 가격들은 경제가 성장하기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합니다. 경제성장이란 계속해서 올라가는 삶의 질을 뒷받침할 작지만 꾸준한 정도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즉, 다른 말로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성장은 사람들이 매년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구매하고,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하는 일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지금 가지고 있는 새 옷, 새 휴대폰, 새 TV, 새 차, 우리가 끊임없이 이것들을 구매하기를 이 사회는 바라고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의 일자리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국가성장도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자족할 줄 아는 이에게 신앙이 가져다 주는 유익"과 같은 그리스도교의 오랜 가르침은 언제나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하는 현대사회의 현실과 긴장관계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우리에게 다시 기억해내라고 말합니다. "이런 것들을 멀리하고, 정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시오. 믿음의 싸움을 잘 싸워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오.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대를 부르셨고 그대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훌륭하게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대가 맡은 사명을 나무랄 데 없이 온전히 수행하시오. 그분만이 홀로 불멸하십니다."

부탁합니다. 여러분이 성전을 나설 때 피터버러에서 온 주교가 부와 자본주의에 대해서, 좋은 음식과 스마트폰에 대해서 부정적인 설교를 하고 갔다고 기억하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여러분들에게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이 성당을 떠나 다음 한 주를 살아갈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모든 것들 보다 훨씬 더 값지고 귀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가장 우선에 두는 것이 이 세상이 우리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첨단의 값비싼 귀중품을 소유하는 것보다 훨씬 값지고 좋은 일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건네는 모든 것은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은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불멸함 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두 개의 독서말씀은 이를 분명히 합니다. 사도 바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한 분이시고 복되신 주권자이시며 왕 중의 왕이시고 군주 중의 군주"이시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이야기를 통하여 모든 것 중에 가장 훌륭한 것,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을 가리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자동차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멋진 옷이 있습니다. 종종 맛있는 음식을 즐깁니다. 그렇기에 저는 매일 다시 기억해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나의 주님,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아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이것이 여기 모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실이 되기를, 그리고 언제나 진실로 남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아멘.

통역: 주낙현 신부(서울) / 전문 번역: 김병준 신부(피터버러)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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