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5일 숨을 거둔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논란은 고인이 입원해 있던 서울대병원 백선하 신경외과장이 고인의 사인을 병사로 기재하면서 불거졌다.
병사라니, 참으로 어리둥절하다. 고인은 지난 해 11월14일 열린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고인은 이후 316일간 병상에서 지내다 끝내 생을 마쳤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병사라니, 그것도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의료기관의 신경외과장이 이 같은 결론을 내렸으니 그저 의아할 뿐이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서울대병원은 합동 특별조사위원회(아래 특조위)를 꾸리고 백 신경외과장의 사망진단서 재검토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병사란 결론은 뒤집히지 않았다. 오히려 논란은 증폭됐다. 특조위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급성신부전'의 원인, 즉 원 사인으로 ‘급성 경막하 출혈'을 기재하고 사망의 종류는 ‘병사'라고 한 것은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과 다르다."
특조위 이윤성 위원장도 사망진단서에 이상이 있음을 인정했다. 이 위원장의 아래 발언은 백 교수의 진단이 잘못된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내가 만일 뇌수술을 받으면 백 교수한테 가서 수술을 받겠다. 그러나 내 사망진단서를 백 교수에게 맡기지는 않겠다. 사망진단서는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특조위 결론은 다시 한 번 세상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과 다르게 작성된 것은 분명하나 담당교수가 주치의로서 헌신적인 진료를 시행했으며, 임상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사망진단서를 작성했음을 확인했다."
결국 결론은 지침은 어겼지만 사망진단서엔 주치의의 진정성이 담겨있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아무리 곱씹고 곱씹어도 진의를 잘 모르겠다.
또 다시 창궐한 '유족혐오'
사망진단서 논란은 엉뚱하게 고인의 유족에게 불똥이 튀었다. 백 신경외과장은 이렇게 주장했다.
"백씨는 사망 6일 전부터 급성신부전이 빠르게 진행됐지만, 유족 뜻에 따라 체외 혈액 투석 등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백씨의 직접적인 사인은 급성신부전 진행에 따른 심폐 정지로, 이는 병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백 신경외과장의 말은 유족이 연명치료를 원치 않았다는 뉴앙스를 풍겼다. 이 말이 나오기 무섭게 유족들을 겨냥한 비방이 곳곳에서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김세의 MBC 기자가 포문을 열었다. 김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정한 딸이 있다. 아버지가 급성신부전으로 위독한 상황에서 의료진은 투석치료를 하지 못했다. 바로 가족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차피 아버지의 사망일시만 바뀔 뿐이라고. 결국 아버지는 급성신부전으로 숨을 거뒀다. 사실상 아버지를 안락사시킨 셈이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위독한 아버지의 사망시기가 정해진 상황에서 해외여행지 발리로 놀러갔다는 점이다."
이러자 강원도 춘천이 지역구인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백남기씨 주치의 백선하 서울대 교수는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적었습니다. 고인이 사망하기 6일전 급성신부전증이 와서 가족에게 혈액투석을 권했는데도 가족이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지 않아 사망하게 됐다는 겁니다. 적극적인 치료를 했다면 물론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백남기씨 딸은 어디 있었을까요?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중이었습니다. 이 딸은 아버지가 사망한 날 발리에 있으면서 페이스북에 '오늘밤 촛불을 들어주세요. 아버지를 지켜주세요'라고 씁니다.
고인의 선행사인으론 급성경막하출혈이라고 돼 있지만 안와골절상도(눈 주위 뼈)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물대포로는 얼굴뼈가 부러질 수 없을 겁니다.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는데 머리와 얼굴에 두 군데 이상 중상을 입었다는 것도 쉽게 이해가 안 됩니다."
유가족을 향한 비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극우단체인 자유청년연합대표는 유가족을 형법18조(부작위범) 부작위에의한 살인죄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급기야 백남기투쟁본부는 비방에 대한 법적대응 방침을 천명하고 나섰다.
고인의 사인을 둘러싼 논란은 둘째 치고, 유가족은 슬픔 당한 이들이다. 가장 큰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사인 논란에 휘말려 오히려 마녀사냥 당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런 광경은 낯설지 않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자 이들을 향해 온갖 비방이 쏟아졌으니까 말이다. 백남기 농민 유가족을 겨냥한 여론몰이 역시 유가족들이 정부책임을 주장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에 오염된 사회, 인간 존중은 사라져
한 인간이 숨을 거뒀다. 의료진은 그가 어떤 경위로 생을 마감했는지, 자신의 전문지식을 동원해 명확히 규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사회 공동체는 한 인간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고, 슬픔 당한 유가족의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 무슨 거창한 대의명분 때문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신경외과장을 맡고 있는 의료인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어려운 주장을 고집한다. 더구나 그는 유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니, 의료인으로서의 자질마저 의심스럽다. 그뿐만 아니다. 사망원인을 병사라고 진단한 서울대병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엔 ‘외상성' 경막하출혈로 2억 2000여 만원의 보험금을 청구한 사실이 드러났으니, 도대체 진실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의아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정치 오염이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 세월호 참사가 그 지표다.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고인은 지난 해 11월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았다. 물대포를 맞을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궐기에 참여한 이유는 ‘쌀값 폭락에 따른 정부의 적절한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2015년 정부는 쌀시장을 전면 개방했다. 쌀 재고가 남아 쌀값이 떨어지는 상황이었음에도 이 같은 조치를 강행한 것이다. 쌀값은 꾸준히 떨어져 2013년 7월 17만 6000원대이던 80kg 한 가마니 가격은 2016년 10월 현재 13만 4000원대에 머물러 있다. ‘(정곡 한 가마니 80kg) 17만원 쌀값을 21만원으로'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공수표가 된 셈이다.
따라서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정부의 정책실패로 이어진다. 그러나 정책실패는 온데간데없이 고인의 사인 논란이 불거지더니 유가족 혐오가 창궐한다. 정부가 하는 일에는 토 달면 안 된다는 걸 본보기로 보여주고 싶은 건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한 인간의 죽음을 정치논리로 더럽히는 건 인륜과 천륜을 동시에 저버리는 처사다.
지금 이 나라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정치와 자본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의료인과 법조인들은 정치와 돈에 물들어 있고, 정부와 언론은 대립각을 세우는 모든 개인이나 시민사회단체를 불온시 한다. 역사는 이 시대를 어떻게 기록할까?
한 인간의 죽음 앞에, 산 자로서 면목이 없을 뿐이다.